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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Mar 19. 2024

<5> 사랑으로 고무되고 지식으로
인도되는 삶

<지식의 힘>

-지식이 없는 사랑은 무력하다

-쓸모없는 지식도 큰 쾌락일 수 있다


 “내 생각에, 훌륭한 삶이란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이다. 사랑과 지식은 둘 다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 더 나은 삶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지식이 없는 사랑도 사랑이 없는 지식도 훌륭한 삶을 낳을 수 없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소문난 사랑꾼이지만 인생에서 사랑 못지않게 지식이 중요하다고 했다. 저서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서 그는 사랑과 지식 둘 중 하나를 갖추지 못하면 훌륭한 삶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위 인용문이 그것이다. 


그가 든 사례가 눈길을 끈다. 중세시대 페스트가 발생하면 성직자들이 주민들을 교회로 모아 악령을 쫓아내 달라고 간청하는 기도를 올리도록 했다. 그 때문에 전염병이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었는데 이는 지식 없는 사랑의 대표적인 예란다. 반대로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대규모 죽음을 부른 것은 사랑 없는 지식의 표본이라고 했다.


러셀은 지식 없는 사랑은 무력하고, 사랑 없는 지식은 파괴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 평생 사랑을 갈망하면서 강한 열정으로 지식을 탐구한 이유라 생각된다. 그는 어릴 적부터 지식을 무척 동경했다. 다섯 살 때 지구가 둥글다는 말을 듣고 땅바닥에 구멍을 파 오스트레일리아로 빠져나가는지 확인해보려고 했단다. 


열한 살 때는 형으로부터 유클리드 기하학을 접하고 엄청난 지적 환희를 경험했다. “그것은 내 인생의 큰 사건 가운데 하나였고 마치 첫사랑처럼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세상에 그것처럼 감미로운 것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30대 후반, 스승이자 친구인 화이트헤드와 함께 ‘수학 원리’를 완성하면서 세계적인 수학자로 명성을 떨쳤다.


러셀은 또 수학을 매개로 케임브리지 대학 졸업 무렵부터 철학을 연구했다. 오래지 않아 논리학의 대가로 성장해 분석철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개척하기에 이른다. 과학적 인식, 천문학적 세계관을 토대로 현대 철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지적 편력은 실로 광범위했다. 수학과 철학 말고도 교육학, 역사학, 종교학, 사회학, 천문학, 정치학 등에 관심을 보여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20세기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이유다.


그의 지식 탐구욕은 노년에 쓴 자서전에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보고 싶었다. 또 하늘의 별들이 왜 반짝이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삼라만상의 유전 너머에서 수들이 힘을 발휘한다고 설파한 피타고라스(그리스의 수학자)를 알아보고 싶었다.” 철학, 자연과학, 수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표현한 대목이다.


러셀은 이 대목 말미에 “그리하여 나는 많지는 않지만 약간의 지식을 얻게 되었다”라고 회고했다. 지나치게 겸손한 표현이지만 스스로 만족할 정도라니 얼마나 행복한가. 그의 지적 성취를 자주 접하다 보면 지식의 힘, 지식의 효용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인생의 행복을 위해 멋진 사랑을 가꾸려 해도 일정 수준의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멋지고도 행복한 인생을 살다 간 철학자의 소중한 선물이리라. 


지식이란 앎을 말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대상에 대해 배움이나 실천을 통해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를 뜻한다. 지식이 세상살이에 만사형통이라 할 수는 없다.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도 있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나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아닐까? 성경에도 “아는 것이 많을수록 고통이 많다”라는 표현이 있다.


하지만 지식은 십중팔구 유익하다.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이는 러셀 보다 300년가량 먼저 살다 간 영국 사상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경험주의 철학을 대표하는 말이다. 라틴어로 ‘Scientia est potentia’ 영어로는 ‘Knowledge is power’이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함으로써 이익을 얻으려면 관찰과 실험으로 끊임없이 공부해서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게 베이컨의 지론이었다. 


이런 생각이나 주장은 부인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지식의 부작용이나 한계에도 불구하고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식을 찬미하는 이유다. “지식은 우리가 하늘을 나는 날개이다.”(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식은 사랑이자 빛이자 통찰력이다.”(헬렌 켈러) “조직적인 지식의 도움이 없으면 선천적인 재능은 무력하다.”(허버트 스펜서) “스무 살이든 여든 살이든 나이와 상관없이 배움을 그만두는 사람은 늙은이고, 계속 배우는 사람은 젊은이다.”(헨리 포드)


실제로 지식은 성장과 발전, 성공을 이끈다. 또 문제해결 능력이나 기술진보의 기초가 된다. 거기다 자기 계발의 원천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지평을 넓힘으로써 타인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지식에 대한 욕망이다. 남보다 먼저, 더 많은 지식을 획득하려는 욕심이 있어야 한다. 러셀은 기존 지식에 회의를 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식으로 알려진 대부분의 것들은 사실 합리적 의혹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므로 전통적 지식에 확실성을 바탕으로 마냥 믿을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의심을 품어야 지식욕이 커진다는 얘기다. 


“삶에서 확실성을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천성이긴 하지만 지적 해악이기도 하다. 철학이 타파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확실성이다. 지식의 확실성이든 무지의 확실성이든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실천적 지식은 구구단 셈법 같은 정확성이나 확실성을 거의 지니지 않는다.”


러셀은 특히 과학적 인식에 바탕을 둔 지식 획득을 중시했다. 과학적으로 사물을 보고 평가하는 경험주의 철학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과학적인 것이란 경험적인 것이며, 행동적인 것이며, 독단이 아닌 것이다.” 합리적 회의주의자답게 그는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관찰과 경험으로 얻는 과학적 지식이야말로 참된 지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가 관찰을 소홀히 여겼던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게으름을 비판한 대목이 재미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의 치아는 남성의 그것보다 개수가 적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을 두 번이나 했으면서도 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아내의 입안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단다.


뿐만 아니라 겸손한 태도가 지식 획득의 또 다른 지름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앎에 대한 교만은 배움을 거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찍이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곧 앎”이라고 했다. 또 조지 고든 바이런은 “나 자신의 무식을 아는 것이 지식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했다. 세상에 배우고 익힐 것이 얼마나 많은가.


어릴 적에 놓친 유명 동화나 청년기 때 흔히 접하는 세계 명작소설을 한참 나이 들어서 읽는다고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젊은 시절 경험해보지 못한 클래식 음악을 뒤늦게 찾아 듣는다고 남에게 숨길 이유 없다. 부끄러워하거나 숨기기보다 지금이라도 당당하게 경험해서 체득하는 것이 지식 탐구자의 바람직한 자세다. 


지식 예찬론자인 러셀은 무용한 것처럼 보이는 사소한 지식조차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쓸모없는 지식으로부터도 큰 쾌락을 얻을 수 있다.” 하찮은 지식이라도 그것을 몰랐을 경우 놓쳐버렸을 환희의 감각을 가지면 정신적 경험이 풍성해지기 때문이란다. 살구에 대한 작은 지식을 예로 들었다. 


러셀에 따르면, 살구는 원래 중국 한나라에서 생산되다 인도, 페르시아를 거쳐 기원후 1세기 로마에까지 이르렀다. ‘살구(apricot)’는 일찍 익는 과일이어서 라틴어 ‘precocious(발육이 빠른)’에서 유래했는데, 영어표현 맨 앞의 ‘a’는 실수로 덧붙여졌다. 그는 살구를 먹으면서 재배 경로와 이런 어원을 생각하면 정신적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럴듯하게 들리지 않는가? 물론 노력해서 얻은 지식이 아주 귀한 내용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러셀은 말한다. “진기한 지식은 불쾌한 것을 덜 불쾌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즐거운 것을 더 즐겁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지식은 학문적 성과나 과학적 발견 같은 거창한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별것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배워서 알게 되면 그것이 바로 지식이다. 남들 대부분이 아는 것이라도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것도 지식이라 할 수 있다. 


러셀은 인간미 넘치는 철학자다. 지식을 연마하는데 사랑이 없다면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사랑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지금 여기 지식이 있다고 치자. 그러나 사랑이 없다면 그 지식은 응용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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