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증 가진 학습 장애자 스티븐 스필버그
*스티븐 스필버그(1946~ )=미국의 영화감독. 드림웍스 공동 창립자. 그의 SF, 어드벤처 영화는 현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의 원형으로 꼽힘. 1993년 ‘쉰들러 리스트’와 1998년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2022년 개봉 영화 ‘파벨만스’를 본 적이 있는가? 난생처음 극장에서 영화와 사랑에 빠진 소년이 카메라로 일상을 촬영하면서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된 후 점차 영화감독으로 성장해 가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 스토리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의 주제는 단연 ‘꿈’ 아닐까 싶다.
영화감독의 꿈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는 주인공 새미 파벨만(가브리엘 라벤)의 어린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순간 화면에는 ‘영화의 모든 순간과 사랑에 빠진다’라는 카피가 스쳐 지나간다. 엄마 밋지(미셸 윌리엄스)가 아들에게 8mm짜리 카메라를 선물하며 “영화는 꿈이야, 절대 잊히지 않는 꿈 말이야”라고 말한다. 이 장면, 실제로 스필버그의 어머니가 영화감독이 되려는 어린 아들의 꿈을 지지하며 전폭적으로 도왔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소름이 끼친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와 ‘E.T.’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으로 일찌감치 20세기 영화계를 석권한 스필버그의 성공은 꿈을 빼고 설명하기 어렵다. 어릴 적 그는 공부하기를 무척 싫어했다. 반면 영화에는 남다른 호기심을 갖고, 카메라 만지는 데 능력을 발휘했다. 12세 때 이미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선물한 8mm짜리 코닥 무비 카메라를 사실상 가로채면서부터였다. 자기만의 확고한 꿈을 정하고, 그 꿈의 실현을 위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유능한 영화감독이 되어 언젠가 아카데미상 시상대에 서고야 말겠다.”
스필버그의 학창 시절을 살펴보면, 영화감독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심들 정도로 학습능력이 떨어졌다. 기본적으로 공부하길 싫어했으니 잘할 리 만무하다. 일종의 학습 장애자, 학습 지진아였던 것으로 보인다. 스필버그 연구자들은 그가 디스렉시아(dyslexia), 즉 난독증(難讀症)을 앓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독서를 매우 싫어한 것도 이 때문 아닐까 싶다. 거기다 체육과 수학 점수도 형편없었다. 체육의 경우 고등학교 3년 내내 낙제를 면치 못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수학에 낙제하지 않도록 억지로 공부를 시켰다. 아침 일찍 깨워 직접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나 별 소득이 없었다. 스필버그의 회고다. “나는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수학이 싫었다. 하나의 숫자를 다른 숫자 위에 쌓아 올리거나 서로 나누는 것 따위는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가 ‘4를 3으로 나눌 경우엔 딱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하면, 나는 ‘그야 당연하겠지요. 4라는 작은 구멍 속에 3이 잘 들어갈 리 없을 테니까요’라고 대답했다.”(평전 ‘스티븐 스필버그’ 프랭크 사넬로, 정회성 옮김. 한민사, 1997)
공부하길 싫어했으니 학교가 좋았을 리 없다. 몸이 아프다거나 촬영한 필름을 편집해야 한다는 이유로 수시로 학교에 가지 않았다. 당연히 학업에 대한 관심이 더 멀어졌다. 아버지는 자신이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 물질적 빈곤을 경험했기에 아들이 예술 대신 과학기술과 관련된 직업을 갖길 원했다. 하지만 도무지 학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니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스필버그는 영화감독의 꿈을 실현하고자 고등학교 졸업 후 UCLA(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에 원서를 냈다. 영화학과에 진학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고교 평균 성적이 C에 불과한 그에게 서부 최고 명문대학 입학이 허용될 리 없었다. 결국 명성이 낮은 CSU 롱비치에 입학한다.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독서를 싫어하는 청년이 문학을 전공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전공과는 담을 쌓고, 대부분의 시간을 영화 찍는데 할애했다.
대학 시절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의 기행(奇行)은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그의 꿈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알 수 있다. 또 그 꿈을 실현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강렬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본인 회고 내용을 정리하면 대략 이렇다.
20세 때,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유니버설 스튜디오 투어’에 참가했다. 여러 영화사의 스튜디오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관광 도중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일행에서 빠져나와 경내를 몇 시간씩 돌아다니거나 스튜디오를 드나들었다. 약 3개월 동안 매일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 경비원들에게는 유명 감독의 지인인 것처럼 행동할 수 있었다. 영화사 직원들이 모두 정장 차림에 서류가방을 들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자기도 아버지 양복에다 서류가방 차림을 했다. 가방에는 샌드위치와 사탕이 들어있을 뿐이지만 자연스럽게 감독, 각본가, 편집자, 녹음 담당자들을 만나 사귈 수 있었다.
어느 날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빈 사무실을 하나 발견하고, 거기에다 ‘스티븐 스필버그 사무실 23C’라는 플라스틱 명패를 갖다 붙였다. 전화기까지 달았다. 이곳에서 2년 동안 생활했으나 발각되지 않은 덕분에 영화 관련 업무를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이후 대학으로 돌아와 찍은 영화가 그의 첫 작품 ‘앰블린’이다. 23세 때의 일로, 22분짜리 무성영화였다. 스필버그는 영화사 중역들에게 주목받고자 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의도한 대로 일이 잘 풀려 7년간의 전속 계약을 맺게 되었다.
스필버그는 꿈을 먹고 자랐다. ‘할리우드의 제왕’이 되려는 인생 목표가 워낙 분명하고 간절했기에 그가 걷는 영화인의 길은 탄탄대로였다. 어릴 적 학습 장애는 한동안 부모를 걱정하게 했지만 본인 성공가도에는 별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꿈을 가진 자에겐 희망찬 미래가 있을 뿐 걱정이 없다. 꿈은 많이 꿀수록 좋다. 큰 꿈일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