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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램프 혁명’ 이끈 지방
중소기업 연구원

-진학반 학업 성적이 꼴찌 수준이던 나카무라 슈지

by 물처럼

*나카무라 슈지(1954~ )= 일본 출신의 미국 전자공학자. 청색 LED 개발 및 실용화에 성공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



노벨위원회는 2014년, 그 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며 횃불, 백열전구, 형광등, LED를 차례로 언급했다. 그리고는 “청색 LED 개발은 램프 혁명”이라고 선언했다. 수상자는 나카무라 슈지, 아카사키 이사무, 아마노 히로시 등 3명의 일본인이었다. 대학 교수인 아카사키와 아마노가 청색 LED 개발의 이론적 단초를 제공했다면 나카무라는 실용화, 상용화의 돌파구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렇다. 청색 LED 개발은 토머스 에디슨의 백열전구 상용화에 비견할 만큼 중요한 빛의 혁명이다. 나카무라 슈지가 이의 실용화에 성공한 1993년 이전에는 적색, 녹색 LED만 개발돼 LED를 조명기구로 사용할 수 없었다. 빛의 삼원색인 적색, 녹색, 청색이 한데 섞여야 효율성이 보장되는 백색광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파장이 짧은 청색 LED의 경우 여러 기술적 난관에 부딪쳐 20세기 안에는 개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정설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지방 중소기업 연구원이던 나카무라 슈지가 연구 시작 4년 만에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전 세계 대기업과 연구소 구성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전문가들이 27년 동안 풀지 못했던 난제를 혼자 힘으로 해결한 쾌거다. 그가 개발한 청색 LED는 21세기 LED 조명시대를 활짝 열었으며, 노트북과 스마트폰 등 IT기기의 혁신을 통해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개발 당시 나카무라 슈지의 스펙은 별로 내세울 게 없었다. 1954년 일본 시코쿠 에히메 현의 시골 동네에서 태어난 그는 특별히 똑똑하거나 재능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학업성적은 좋지 않았다. 수학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역사와 지리 같은 암기과목 성적은 형편없었다. 역사나 지리 수업은 혐오감이 들 정도로 싫어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배구부에서 운동하느라 성적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비교적 성적 좋은 학생들만 모이는 진학반에 들어가긴 했지만 그 반에선 거의 꼴찌 수준이었다.


당연히 명문 대학엔 갈 수 없었다. 졸업을 앞두고 나름 열심히 공부했으나 반에서 중간 정도 성적에 머물렀고, 지방 대학인 도쿠시마 대학에 진학했다. 일본 내 40위권 순위의 이름 없는 대학이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졸업 후 취직에 유리하다는 담임교사의 조언에 따라 전자공학과에 들어갔다. 하지만 같은 대학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마쓰시타전기산업에 취직하고자 지도교수의 추천서까지 제출했으나 거절당했다.


직후 교세라에 응시해 합격은 했지만 지도교수의 권유와 추천을 받아 집에서 가까운 중소기업 니치아화학에 입사했다. 도쿠시마 현 내 인구 약 5만 명의 작은 지방도시에 소재한 회사로, 직원은 180명 정도였다. 이 회사는 형광등과 TV 브라운관에 사용되는 형광체를 주로 생산 판매하는 회사여서 전공과 무관하지는 않았다.


이처럼 나카무라 슈지의 사회 첫출발은 번듯하지 못했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이어서 후회하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개발과에 배치되자마자 특유의 자신감과 긍정 에너지, 끈기를 무기로 연구에 몰두했다. 중소기업이라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할 수밖에 없어 무척 고달팠을 뿐만 아니라 연구 과정에서 자주 폭발사고를 경험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잘 참아냈다.


입사 10년쯤 뒤 최고 경영자의 인정을 받게 되면서 그도 꿈의 청색 LED 개발에 착수했다. 3억 엔의 예산을 확보한 다음 미국 플로리다 대학으로 건너가 필수 지식에 속하는 ‘유기금속화학증착법’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회사 안에서는 성공 가능성도 없는 연구에 괜히 돈만 허비한다는 비판과 비아냥이 잇따랐지만 굴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쟁자들이 LED의 재료로 셀렌화아연을 선택했지만 그는 엉뚱하게도 성공 가능성이 더 낮은 질화갈륨을 택했다. 학계에선 무모하다고 입을 모았지만 밀어붙였다.


성공의 여신은 세상의 상식을 거부한 열정의 39세 연구원에게 성큼 다가섰다. 1993년 11월, 드디어 청색 LED를 제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무려 1000번 이상의 시행착오를 겪은 뒤였다. 그때까지 시중에 나와있던 제품보다 100배 더 밝은 신제품을 선보인 것이다. 2년 뒤에는 에디슨의 백열전구를 대체할 수 있는 백색 LED도 개발했다.


이후 일본을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타바버라 캠퍼스 교수로 재직하던 1994년, 세상은 그에게 세계 최고의 명예를 안겨주었다. 그의 성공 비결은 과연 뭘까? 자서전 ‘끝까지 해내는 힘’(김윤경 옮김, 비즈니스북스, 2015)에서 그는 끈기를 앞세운 장인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는 천재적인 영감으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며, 그 이론에 따라 신제품을 개발한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해낼 수 있다고 믿은 외고집으로 거침없이 나아갔을 뿐이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장인정신으로 ‘유기금속화학증착장치’를 개조하여 청색 LED를 완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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