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아모리라는 특정한 사랑의 방식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에는 조금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만든 책이었다.
폴리아모리의 연애 방식 중 하나인 ‘다중 파트너 관계’를 설명하며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각기 다른 매력을 지녔기에, 다양한 사람들과 연애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고.
나는 친구 관계를 떠올렸다. 다정함이 주특기인 친구 A에게는 진지한 고민을 자주 털어놓게 되고, 유머 코드가 같은 친구 B와는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다. 나는 두 사람에게 전혀 다른 매력을 느끼지만 A와 B 중 어느 한 명만 택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다.
곧 사랑과 우정이라는 감정의 차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폴리아모리의 다중 파트너 관계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지지만 같은 관계가 친구 사이에서는 당연한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이라는 가사처럼 사랑과 우정은 점점 더 옅거나 진해지는 스펙트럼 관계에 놓여있는 걸까. 사람들은 어떤 기준으로 감정에 이름표를 구분해 붙이는 걸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메울 때쯤 시작된 3장은 마치 이 고민을 해결해 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책 속 ‘사랑’을 ‘우정’으로 치환해 읽어도 무관한 이야기였고, 사랑의 본질적인 의미를 철학적 사유와 연결한 부분들은 다소 모호하게 느껴져 아쉬웠다.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우정은 사랑이라는 전체집합 속에 포함된 부분집합이다. 사랑이란 감정의 모습은 주체와 대상에 따라 너무나 다양하다. 엄마를 떠올릴 때 뭉클한 것, 친구를 진심으로 응원하거나 반려동물의 건강을 바라는 것도 다 사랑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결국 ‘여러 명을 사랑할 수 있어’라는 주장에 고개를 끄떡이게 되면서도 다중 파트너 관계에는 알 수 없는 거부감이 생기는 건, 우정에는 포함되지 않는 ‘성애적 사랑’ 때문이지 않을까. 섹슈얼한 텐션을 느끼고 관계를 맺는 상대가 여러 명인 것은 (과거 어떤 이유에서 출발했든) 분명한 사회적 금기이니까 말이다.
어느 정도의 질투를 애정의 척도로 여기는 보통의 연애 방식에 익숙한 만큼, 책에서 강조하는 비독점성의 개념도 흥미로웠다.
비독점적 ‘사랑’은 몰라도 과연 비독점적 ‘연애’가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기본적으로 질투 같은 소유욕은 선천적이라고 생각할뿐더러 책에서 언급된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애란 사랑의 감정만으로 작동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속 밑바닥 어딘가에 깔린 유한한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는 생각이, 상대의 일정 지분을 ‘소유’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책 자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풍부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주제인 것 같아 다음 모임이 기대된다 :)
책 | 심기용, 정윤아, 『우리는 폴리아모리 한다』2022.12.08 트레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