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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gmagazine May 31. 2021

도덕의 유전자_정상원

_5월호 <도덕의 상대성과 지구화>


다양한 도덕관을 가진 인간들이 하나의 사회에 공존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물학도의 시선으로 본 유전자와 도덕, 공동체. 그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강아지는 사실 정신병에 걸린 늑대다.’ 뭔가에 홀린 듯이 클릭한 포스트엔 강아지는 유전 서열의 차이로 인해 상대방에게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내보이는 윌리엄스 보이렌 증후군의 결과라는 이론이 쓰여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헨리의 애교가 결국 유전적 결함에 의한 결과라는 걸 생각하면 조금 서글퍼지만, 우린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성격과 생각 또한 유전에 의해 결정되는가?

 

 성격과 유전자의 상관성은 은여우를 가축화하기 위해 시작된 실험. 드미트리 벨리예프의 은여우 교배 실험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사람들을 경계하는 수많은 개체 중에서 친밀감을 표하는 여우들을 선정해 교배시켰고, 40년이 지난 지금 연구소의 여우들은 마치 강아지처럼 사람들을 잘 따를 뿐 아니라 비싼 값에 애완동물로 입양될 정도로 변하였다. 더 흥미로운 점은 야생여우에선 관찰되지 않던 접힌 귀와 위로 말린 꼬리 또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처럼 선택적 교배에 의해 성격의 변화가 가능하다면,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도덕’또한 자연선택에 의한 결과는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다.     


 생물학과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상은 남들이 보는 세상과는 사뭇 다르다. 모든 행동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발버둥이자, 자연선택에 의한 도태를 극복하기 위해 끝없이 달리는 생존 경쟁일 뿐이다. 외모를 꾸미고, 돈을 벌며, 운동을 하는 모든 행동들 뿐 아니라 오늘 당신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도덕관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지금에야 지구를 지배했다 말하는 인류이지만, 과거 인류는 매우 나약했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근력도, 날카로운 손톱이나 이빨도 없는. 전쟁터에 아무런 무장도 없이 떨어진 군인이 바로 인류였다. 그렇기에 이들은 다른 피식자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랬던 것처럼 무리를 지어 생활해야만 했다. 난 이곳이 도덕의 시발점이라 생각한다. 도덕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류가 사회의 형성에 호의적이진 않았을 것이다. 자신 주위에 오는 모두의 두개골을 후려쳤던 개체도, 누군가 다가오면 나무 위로 도망가는 개체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배우자와 만나 가족을 만들었더라도, 마치 햄스터들처럼 위협이 닥치면 자신의 자손을 지키려 하기보단 도망치는 방법을 선택한 개체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인류들은 아마도 무리를 쉽게 형성하지 못해 다른 인류보다 쉽게 포식당했을 것이며, 이 과정에서 무리를 형성할 수 있었던 이들이 살아남아 ‘상대방에 대한 호의’를 가진 유전자가 후세로 전달되게 된다.  

   

 이번엔 그 무리 안으로 들어가 보자. 무리에서 더 많은 자손을 낳을 수 있었던 개체는 누구였을까. 강하다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었을까? 그것으론 부족하다. 강하지만,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이들이 더 자주 교배의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뭐.. 화려한 깃털을 가진 공작처럼 잘생긴 개체는 조금 달랐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런 과정들을 우린 진화라 부른다. 주어진 환경에 더 잘 적응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후세를 남길 수 있는 특성을 가진 개체만이 남아 가는 과정. 완벽이란 끝이 없는 도착점을 향해 터무니없이 느리게 걸어가는 것이 바로 진화이다. 이처럼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과정을 걷던 인류에게 새로운 국면이 닥치게 된다. 부족, 마을의 발생이다.     

 

 적은 수의 인원이 모여 살던 시대를 지나, 정착지를 찾고 그 주위로 인류들이 모이며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들은 산발적으로 각지에 생겨났으며, 인류는 포식자들 뿐 아니라 다른 마을의 약탈 또한 대비해야 했다. 강하고 많은 인원을 가진 마을을 만들기 위해선 이젠 불가피하게 인류는 비도덕적인(물론 지금의 개념에서) 개체 또한 품어야 될 필요가 생겼고, 난 이 과정에서 아마 종교와 이념이 생겨나지 않았나 생각한다.(최근 기존 이론과는 다르게 종교가 마을의 발생 이전부터 존재하였단 증거 또한 발굴되었지만, 이 부분은 내가 알고 있었던 대로 과감히 추측해보도록 하겠다.) 

    

 가상의 절대적 존재에 의한 결정. 이 개념이 생긴 순간 잘못에 대한 형벌에 정당성이 생기기 시작했고,  정당성에 대한 믿음이 퍼져나가자, 마을 안에선 수많은 약자가 무법을 행하는 강자를 견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부모는 자손에게 마을의 법칙을 가르쳤을 것이다. 법칙을 지키지 않은 자는 벌을 받고, 배제되었을 것이며, 당시엔 사회에서의 배제는 곧 죽음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생존을 추구하는 유전자와 생명체는 어쩔 수 없이 그 법칙들을 받아들여야만 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종교도, 권력도, 이념도 생겼을 것이며, 자연선택은 지체되고 수많은 형질의 유전자가 마을에서 혼재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각자의 도덕관이 달라지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인류의 도덕이 단지 유전자에 각인된 도덕뿐 아니라 사회에 의해 교육된 도덕에 의해 세워졌기 때문이다.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한 개체의 도덕관이 세워지게 되면서 모든 인류는 각자만의 도덕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던 도덕에 더해 어느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왔냐, 무엇을 느끼고 배웠는가 이 둘의 수많은 조합으로 인해 누군가는 카페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기도, 누군가는 음료를 마실 때만 마스크를 벗기도, 아예 카페를 가지 않기도 하는 차이가 생겨난 것이다. 그럼에도 모두가 마스크를 벗고 담배를 피우며 돌아다니는 아저씨를 욕하는 건 공통된 사회에서 유전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인류는 사회를 만들어 종을 보존했고, 체계를 유지하기 좋은 유전자들이 자연선택되었으며,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법과 종교를 만들어 다른 형질의 개체 또한 사회의 일부로 만들었다. 이렇게 형성된 도덕관은 각 지역과 환경에 따라 다른 교육과 관점을 거치며 보이진 않는 문화의 끈을 만들었을 것이다. 집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는 우리와 벗지 않는 외국의 차이처럼 말이다.       


 아직도 인류는 과거처럼 기본적인 도덕을 교육으로 가르치며, 어느 정도의 선을 넘는 문제들은 법을 통해 규제한다. 커다란 문명들부터 아마존의 소수 부족들까지 각자의 방법으로 사회를 유지하려 한다. 이미 각 사람들마다의 도덕관은 통일시키지 못할 정도로 달라져있고, 이는 나라, 지역뿐 아니라 각 개인에 이르기까지 너무나도 세분화되어있다. 우리의 도덕은 그럼에도 계속 새로운 환경 속에서 어울리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자연선택과 사회의 필요에 의해 말이다.  결국 나는, 우리는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도덕의 지구화와 급변하는 사회에서 구성원들의 견해 차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우리 인류는 그 과정들을 100만 년 동안 겪어왔고 지금 우리는 그들 중 가장 진화한 개체이니 말이다.      


 헨리가 잠이 들기 시작했다. 끊임없는 애교에도 내가 반응하지 않자 지친 모양이다. 내 행동과 생각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 성격이고 도덕이면 또 어떤가, 교육에 의해 만들어진 성격과 성향이면 또 어떤가. 오늘 난 헨리 덕분에 행복했고, 당신 덕분에 행복했으니. 나 또한 언젠가 인류 진화의 지나간 한 부분이 되어 생존경쟁에 도태될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그냥 코가 간지럽더라도 잠든 헨리를 껴안고 폭신한 침대에서 따뜻한 밤을 보내려 한다. 오늘 하루를 보내는데에는 그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굿 나잇 생존경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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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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