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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정 Aug 26. 2021

나의 우울증 치료기 07

재입원, 치료 치료 치료

 퇴원을 하고 9개월이 지났다. 퇴원 직후부터 정신건강사회복지사와  동안 상담을 했고, 상담이 끝날 무렵 가족들의 경계도 풀려 혼자 외출을   있게 됐다. 약을 꼬박꼬박 먹고 꼬박꼬박 부작용에 시달렸다. 속에서 미칠 듯한 불편함이 치밀어 몸을 가만두지 못했고,  버티겠다 싶을  벽에 머리를 박고 소리를 질렀다. 다리를 계속 떨어서 주변 사람들이 불평할 때마다  부작용이라는 말을 했지만  부작용으로 시작했어도 이제는 습관이라고  고쳐보라는 말을 들었다. 복학을 했고 코로나 판데믹이 다가오면서 개강이 미뤄지고 비대면 강의가 시작됐다. 나는 여전히 무엇도   없었다.


입원 권유를 받은 진료날, 상태를 적었던 메모.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나는 또다시 약을 모아서 한꺼번에 먹기를 반복했다. 위 메모를 들고 진료를 본 날, 의사로부터 재입원을 권유받았다. 동의입원이었던 전과 달리 자의입원이기에 언제든 내가 원할 때 퇴원을 할 수 있다고 했다. 9개월 동안 정신과 병동이 없어졌다가 일반병동 구석에 작게 다시 생기는 일이 있었다. 나는 병동 위치가 바뀌었다는 것만 듣고 입원했다. 병동 규모가 대폭 줄어 병실 2개를 합쳐 5개 병상이 고작이었고, 일반 가정집보다 면적이 좁아 무척 답답했다. 보호사도 없어졌고 충동적 행동이 적은 불면이나 우울 환자들 뿐이었다. 그나마도 환자가 나까지 넷을 넘은 적이 없었다. 운동 시설도 서고도 사라졌다. 상주 의료진도 한 분뿐이라 생활 규정이 대폭 느슨해졌지만, 첫 입원보다 훨씬 더 심심했다. 할 수 있는 게 더 없어졌으니. 다행히 며칠 지나 또래 환자가 들어왔고, 의외로 종이로 된 트럼프 카드를 반입할 수 있다고 해서 하루 종일 훌라를 했다. 하지만 심심한 건 변하지 않았다. 바깥세상은 코로나 판데믹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는 휴학을 하지 않고 매주 금요일마다 외출을 해 밀린 사이버 강의를 듣기로 했다. 저녁 8시 반 전에 다시 병동으로 돌아와야 해서 바깥공기를 느낄 새도 없었다. 그새 법이 바뀌어 환자들의 외박이 없어졌고, 코로나 때문에 산책 프로그램도 없어지고 면회도 횟수가 줄고 시간이 짧아졌다. 정말 답답해서 미칠 듯했다. 증상이 조금 나아지자마자 나는 퇴원을 요청했다. 퇴원 날 나를 맞이하러 온 언니가 새하얀 마스크를 건넸다. 이제부터는 밖에서 무조건 마스크를 써야 해. 메르스 때처럼 금방 지나가겠지 생각했던 코로나는 3주의 입원 기간 동안 더욱 심각해졌다.


 퇴원을 하고 면담치료를 권유받았다. 하라니까 했지만…… 솔직히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나는 오로지 죽는 것만 생각했으니까. 계속 약 부작용에 시달렸고 치료에는 눈에 보이는 진전이 없었다. 나는 나아가는 사람을 연기하면서 죽을 날을 잡고 있었다. 면담 치료는 비싸고 아무 의미 없었고, 대면 수업이 시작된 학교를 가고 또 병원을 다니면서 정해진 날짜를 기다렸다. 여름에 접어들며 병원에서는 또 입원을 권유했다. 어짜피 죽을 건데 무슨 입원. 나는 입원 권유를 거절했다. 가족들에게 댄 핑계는 그 비좁은 병동에는 입원하기 싫다는 거였다. 집 근처 대학병원에서 30년 넘게 일했던 엄마가, 그 병원은 병동이 크고 좋다고 병원을 옮기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동의했다. 죽지 않더라도 어짜피 입원을 해야 한다면 그 비좁은 병동보단 낫겠지 싶어서. 사실 첫 시도 후 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머문 응급실과 한 달을 보낸 병동이 집 근처 병원이 아닌 걸 보고 생각했었다. 나는 부끄러운 사람이구나. 엄마 입장에서도 30년 넘게 일한 직장에 자살시도를 한 자기 자녀를 데려오긴 부끄러웠겠지. 그런데 엄마가 본인 직장에 나를 보내겠다고 한 걸 듣고 뭔가 마음이 열린 기분이었다. 나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기분. 물론 그 전에도 최선을 다해 나를 돌보려 하신걸 알지만, 내심 불만을 가지고 있었구나 싶었다. 나는 그렇게 또 병원을 옮겼다. 여섯 번째 병원, 그리고 마지막 병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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