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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로드 Nov 23. 2022

함초롬한 울 엄마

   한글 날 생각난다


좋아하는 우리말 : 함초롬하다


한글날을 기념해서 순우리말 중에서 좋아하는 말을 명상 글쓰기에서 하게 되어 찾아보았습니다. 눈에 띄는 단어는 ‘함초롬하다’네요. 함초롬하다의 뜻은 ‘가지런하고 곱다’입니다.



좋아하는 말의 의미 소개 : 함초롬하다의 의미 


함초롬이라는 어감에서 오는 울림이 좋기도 하지만 아름답고 화려하지 않으면서 정갈하고 고운 느낌이 정말 예쁘게 느껴집니다. 함초롬이란 단어에 어울리는 함초롬한 여인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 함초롬한 여인이라면 자태에서 풍기는 인품의 향기가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글짓기


제목 : 함초로한 울 엄마


글 : 해피로드 꿈작가




이 단어에서 지금 안 계신 엄마가 떠올랐습니다. 엄마는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셨습니다. 노인이 되셔서야 한글학교에서 겨우 배우셨고 간신히 더듬더듬 읽으셨습니다. 머리가 아프다고 하시면서 오래 읽지는 못하셨죠. 그런 엄마에게 한글은 열등감이기도 했습니다. 농부의 아내로 자식 여섯을 고생하며 키우신 엄마는 47살에 혼자 되셨음에도 이 단어가 어울리시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일본유학 중에 오셨을 때는 일본 택시 운전사가 엄마를 ‘학교 교장선생님이냐’고 하셨을 정도로 함초롬하셨습니다.


엄마는 누구나 읽고 쓰는 한글을 모르셨음에도 외모에서는 풍기는 이미지가 마치 교육자인듯 느껴지는 함초롬한 자태이셨는데, 그건 엄마가 인내하면서 남을 위한 인생을 사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섯을 키우면서도 우리에게 욕을 하신 기억이 없습니다. 그만큼 저희를 존중해주셨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엄마가 살가운 분은 아니셨습니다. 깊은 사랑을 품고 계셨지만, 표현은 아이를 해친다며 참는 교육을 받고 자란 분이셨습니다.



엄마가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통지서가 나왔지만 양반집 가문의 외할아버지는 여자는 배우면 안된다고 생각하셨고 엄마 대신 외삼촌을 학교에 보냈다고 합니다. 노인이 되셔서 엄마는 한글학교에서 배워서 읽기는 하셨지만 쓰는 것은 잘못하셨기에 부끄러워하셨고 간신히 그리듯 쓰셨습니다. 일본에 올 때도 언니가 항상 동행하면서 비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엄마는 어디서나 대우를 받으셨고 함초롬하셨던 엄마는 미소만으로도 많은 분들이 가까이 하고 싶어했습니다.



어느 날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엄마는 그 많은 세월을 어떻게 인내하면서 사셨어요?"


“난 말을 많이 하면 무식함이 드러날 것 같아 말을 가능한 안 하고 주변에서 배우려고 신경을 쓰며 살았단다.” “힘들어도 나 하나만 조금 힘들면 주변이 다 좋은데 내가 굳이 불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엄마가 참는 경우가 많았어."


그 말을 듣고 엄마의 얼굴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그대로 인내의 세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의 마음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양반집 규수로 아가씨라는 호칭을 들으면서 자란 엄마는 양반의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하셨던 거 같습니다. 특히 옷차림에는 신경을 많이 쓰셨습니다. 항상 하시던 말씀이 "때깔 좋은 거지는 얻어먹을 수 있단다"하시며 옷에 신경쓰라고 저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옷을 잘 입지도 엄마처럼 함초롬하지도 못합니다?



함초롬하지 못한 엄마?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카페 에이바우트를 보니 더욱 엄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길거리 어딜 가나 영어로 된 팻말들, 한글의 자취는 오간 데 없는 여기가 외국인가 싶을 정도의 거리를 거닐 때면 엄마 생각이 납니다. ‘한글만으로도 열등감과 두려움이 있으셨는데 영어는 상상도 못 할 벽이겠구나‘ 하고요.


그런 엄마의 함초롬한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습성이 있으셨습니다. 화장실을 들어가면 문을 열고 들어가시는 것이었죠. 결혼하고 남편 보기에도 그렇고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엄마한테 “왜 문을 안 닫느냐. 문 좀 닫아라”하고 싫은 소리도 했지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어느 날 엄마한테 물어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 가슴 아픈 기억이었습니다. 엄마가 동네 분들과 해외여행을 갔는데 화장실 문이 안에서 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외국에서 말도 안 통하고 뭐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고 엄마 성격에 막 소리를 지르시는 분도 아니셨는데 간신히 소리를 질러서 나오셨을 테니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간신히 밖에 나오신 엄마는 그 이후로 화장실 문을 닫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공중화장실에 가면 엄마 생각이 납니다. 그때 불안에 떨었을 엄마를 생각합니다. 그 두려움이 느껴집니다.


요즘은 길거리 방송 어디를 가나 영어를 모르면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한국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럴 때면 엄마 생각이 납니다. 저도 영어를 공부는 했지만, 대학 이후에는 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멀리했기 때문에 잘못합니다. 그런데 요즘 영어를 모르면 마치 한글을 모르는 문맹인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정확한 의미 파악도 안 된 채 감으로 알 수밖에 없는 왠지 사회 일반사람들과는 분리되어진 듯한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어로 쓰여진 간판을 보면서 모르는 단어에 당황해하는 내 모습, 핸드폰 사용에 당황하고 모르는 컴퓨터 기능에 당황하는 저를 보면서 엄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처음엔 ‘한글 그것도 못 익히나. 엄마는 머리가 나쁜가?’라고도 생각했지만,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고 배우려고 하지 않는 내 모습은 엄마와 같을지 모르겠습니다.


엄마 나이를 향해 가고 있는 나


올해 들어 MKYU열정대학생이 되어서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제 2의 스무살을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나이에 접어들었음을 실감하고 나의 한계를 깨나가는 도전을 하고 있어요. 그 높은 벽이었던 영어도 배워보았습니다. 의외로 생활에서 접하는 많은 영어가 퍼즐이 맞추어지는 것처럼 되어 내 것으로 되었습니다. 그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미루기 미루기가 아니라 ‘할 수 있어. 더 늦기 전에 하자’라는 마음으로 못 해도 서로 응원하고 응원을 받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도전하고 있습니다. 배우는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지금의 나다움 찾기, 자기 계발이 현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교육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40, 50이 되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라고 누가 이야기했던가요? 이제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들어서면서 과연 내 얼굴에 책임을 지고 있는지, 돌아보며 함초롬한 여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576돌 한글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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