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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Mar 15. 2023

인사 안 받아주는 무뚝뚝한 아저씨

어쩐지 입술을 비죽거리며 울상을 한 표정인 도부 아저씨가 있다. (도축장에서 소돼지를 도축하는 아저씨를 도부라고 칭하곤 한다.) 초록색 셋업 작업복과 발목까지 내려오는 반질반질한 흰색 앞치마를 입고는 절뚝이며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닌다. 흰머리카락이 희끗희끗 비추니 50대는 되어 보인다. 그 아저씨는 아침마다, 그리고 마주칠 때마다 안녕하신지 안부인사를 하고 다니는 나를 못 본 척한다.


처음에는 못 들은 건가 싶었다. 머쓱했지만, 다음엔 더 큰소리로 하지 뭐-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아저씨는 나의 인사를 무시했다. 간간이 작업장에서 텃세를 부리는 직원분들이 있다. 본인은 20,30년간 같은 작업장에서 근무를 한 사람이고, 나는 도축장에 겨우 1,2년 파견온 어린 여자애니까 말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상대방이 어떻든 인사는 하기로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왠지 그 아저씨가 왜 무시하는지 알 것 같은 일이 있었다. 작업장 사무 부장님이 앞에 서계시길래, 없어진 물건을 요청하려 말을 걸었다.


"부장님, 안녕하세요! 다른 게 아니라, 저희가 쓰던 칼이 없어져서요. 혹시 남는 칼 있으세요?"


내 업무는 등급을 판정하는 일이지만, 이분할되어 나오는 돼지가 가끔은 덜 잘리기도 하고, 염증이 있다면 도려내기도 하기 때문에 옆에 칼을 두고 일한다. 근데 그 칼이 두 번 넘게 없어지니 (우리가 간수를 잘 못한 것도 있지만) 사무실에 남는 칼이 없어 부탁드리려고 한 거였다. 부장님은 바로 뒤에 계신 아저씨한테 남는 칼 좀 평가사님 주라고 말을 했다. 마침 내 뒤에 그 아저씨가 서계신 거였다. 


"모모,,몰라요! 우우리도 맨날 없어져..."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인상을 쓰며 말하는데, 자신감 없는 목소리였다. 왠지 말도 느리고 더듬기까지 했다. 1년 넘게 이곳에 있으면서 아저씨의 목소리는 처음 들었고, 그제야 수줍음이 많은 사람인 걸 알 수 있었다. 


나도 한때는 꽤나 소심한 성격으로 식당에서 주문도 못했었더랬다. 여전히 누가 말이라도 걸면 남녀노소 상관없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여전히 목소리가 작다고 되묻는 사람들도 많고, 당황하면 말을 더듬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는 '파워 당당'한 사람이 아니면, 누구든지 한 번쯤은 느껴본 증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소심한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저씨도 그만치 소심한 사람이었던 거다. 무뚝뚝한 게 아니라 나이를 먹어도 똑같이 소심한 사람. 그래서 내가 인사를 하면 당황했던 것 같다. 어떻게 받아야 하지 고민하다 보면 나는 쌩하고 지나가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찌글찌글한 표정의 아저씨가 귀여워 보이기도 한다.


앞으로도 나는 누가 뭐라든 인사는 하기로 했다. 겨우 1초짜리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데, 어색하게 무시하고 지나가는 건 내 마음이 불편하기도 해서지만 말이다. 안 받아주면 어떤가, 그 사람만의 사정이 있는 거겠지. 어쩐지 인사만 하는데도, 시간이 지나고 그것이 쌓이면 내적 친밀감도 생긴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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