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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Apr 20. 2023

고양이는 무섭지만, 길냥이는 불쌍해

나는 평생을 사람 좋다고 달려드는 강아지나 키워봤지, 아무리 불러도 본체만체하는 고양이는 언제 봐도 낯설다. 개나 고양이나 온몸에 뽀송한 털로 덮여 까만 콩 3개로 이루어진 귀엽고도 귀여운 얼굴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홀린 듯 손을 뻗어 쓰다듬곤 한다. 강아지는 꼬리가 프로펠러가 된마냥 흔들어재끼면서 다가오는 손이 그렇게나 반가운지 콧물과 침범벅이로 만드려고 난리법석을 떤다. 그런데 고양이는 천천히 다가가는 내 손과 다르게 빛과 같은 속도로 냥냥펀치를 날리곤 한다. 피할 새도 없이 나는 분홍색 모찌 같은 고양이 발바닥 대신 그 위에 솟구친 바늘 같은 손톱으로 생치기가 난다. 무섭다.


부모님의 작은 과수원에는 자주 들락거리는 고양이들이 있다. 3년 전 처음 과수원을 인수했을 땐, 인중에 작은 동그라미 두 개가 콧수염을 연상시키는 무늬의 고등어무늬 어미(이름도 '어미'다)와 조금은 못생겼지만 같은 인중을 가진 삼색 고양이 '삼순이'가 왔다. 밥을 챙겨주니 자주 오기 시작했고, 언제부턴가는 우리가 농장에 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마중을 나왔다. 둘 다 암놈이었는지 그다음 해에는 각각 두 마리씩 새끼를 더 낳았다. 남편 고양이는 옆집에 노란 치즈냥이인 양 새끼들은 노랗기도 회색 고등어무늬이기도 삼색이기도 했다. 


그렇게 올해는 3년 전부터 우리 농장에 머물던 어미와 삼순이, 어미와 같은 무늬지만 아이라인을 짙게 그려 제일 예쁘게 생긴 이쁜이(수컷이다.), 몸집이 작아 귀가 갈기갈기 찢겼지만 고양이가족이 보호해 주는 노랭이, 얼굴 한가운데 검은색 세로선 때문에 조금 무섭게 생긴 삼색이 새끼 못난이, 이렇게 5마리가 오순도순 지내고 있다. 


고양이도 동물이라고, 밖에서 사는 야생동물이라고, 수컷들의 서열싸움과 짝짓기 싸움이 아주 치열한가 보다. 어디선가 나타난 표독스럽게 생긴 회색 수컷고양이가 우리 집애들보다 몸집은 두 배나 크면서 그렇게 쫓아다니고 공격하고 못살게 군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몸이 약한 노랭이가 안 보이기 시작했고, 이쁜이도 안 보이기 시작했다. 2년밖에 챙겨주지 않았지만, 새끼 때부터 봐온 터라 정이 붙었나 보다. 회색고양이한테 쫓겨났거나, 서열싸움에서 밀려 다쳐서 죽었거나, 어디서 차에 치여 죽었거나, 아니면 좋은 여자친구를 만나 떠났거나, 다 커서 떠났거나 했을 텐데, 서운하고 아쉽고 보고 싶었다. 사실 걱정된다는 게 더 가깝다. 꼴에 남자라고 훌쩍 떠나버리긴.


또다시 둘이 된 어미와 삼순이는 세상 평화롭게 한쪽다리를 하늘로 쭉 들어 올리곤 온몸 구석구석을 정돈하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에게 가까이 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멀리 가지도 않았다. 80cm 정도의 거리를 지키며 우리 곁은 맴돌았다. 가끔은 서로를 핥아주고 따뜻하게 내려오는 햇살이불을 덮고는 실눈을 뜨고 우리가 뭐하는지 구경하곤 했다. 자기들 새끼가 안보인지 3달은 다 되어가는데 저렇게나 느긋한 걸 보니 어딘가 살아는 있는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리고 며칠 전, 두세 달 모습을 보이지 않던 이쁜이가 갑자기 나타났다. 얼굴은 조금 지저분해진 상태로 냥냥 거리며 나타난 것이다. '닝겐아, 나 없이 잘 있었니?' 하는 것만 같았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도 아닌데, 이렇게나 반가울 수가! 고양이 가족끼리고 코인사를 하고 풀숲에서 뒹굴며 어쩐지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아들처럼 굴었다. 사람에게 가까이 오진 않았지만, 한동안 농장을 거닐며 고향을 추억하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터치도 없는 고양이에 정이 들진 몰랐다만, 다시는 어딘가로 훌쩍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죽지 않고 계속 우리 곁에 맴돌며, 가끔 등장하는 뱀한테 겁이 나 주고, 선물인 양 두더지를 물어나 우리 농막 앞에 주고 갔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변치 않고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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