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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라 장 Jan 11. 2022

코비드 코모리 #8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코비드 코모리: COVID-19와 히키코모리를 합친 합성어로,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반 강제적으로 집 밖을 나가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결국 이민의 꿈을 접었다. 덤으로 얻은 기회까지 보너스로.


  시카고에서 공부를 하던 중 막연하게 '뉴욕에서 공부하고 싶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스치듯 먹은 마음이었으나, 타지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시킬 탈출구라는 명목 하에 나는 학업과 병행하며 조용히 편입을 준비했었다. 공부, 혹은 사람에서 오는 곤란과 난처함들이 쌓여 과부하가 걸릴 즈음 '힘들면 다른 길로 가면 되니깐'이라고 핑계 댈 수 있는 작은 구실, 도망칠 길을 하나 만들어 둔다는 심산이었다. 실제로 그 핑곗거리는 열심을 낼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기도 했다.


  락 다운 이후 한국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어쩔 수 없는 사이버 유학생활의 연속이었지만, 이미 준비해 둔 서류들을 보고 있자니 아쉬운 마음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식. 결국 나는 지원서를 제출하기에 이른다. 방구석 유학러의 한풀이 비슷한 투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학교로부터 합격 메일을 받게 된다.



  대책은 없었으나, 마음만은 행복했다. 뉴욕이라니. 맨날 노래만 불렀는데 말이야, 뉴욕이라니. 뉴욕이라니! 길어지는 코로나 사태에 편입을 해도 서류만 옮겨갈 뿐 정작 나는 뉴욕에 발도 못 붙일 확률이 높았고, 치솟는 물가와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연고 없는 타 도시로 들어가 다시 시작한다는 게 좀 막막하긴 했지만 뭐 어떤가. 일단 기분은 좋은 걸.



  코모리 생활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준 기쁜 소식을 곱씹고 나누고 또 곱씹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다니던데서 졸업이나 잘 하자'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으나, 포기한 일에 설명을 더해도 포기는 포기일 뿐이겠지. (주륵.) 그렇게 새로운 기회를 떠나보내고, 그 무렵 우리 부부는 미국 이민에 대한 계획까지 무기한 연장하게 된다. 길고도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조용한 시골마을에서의 생활은 이런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에는 안성맞춤이었고, 삶의 경로를 변경하고 재정비 하기에도 무리가 없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삶의 가장 조용한 시간 속에서 잠잠하고 차분하게 경로 이탈을 계획해 나가고 있었다. 


  몸은 쭈욱 갇혀있었으나 미래 계획이 이리저리 변하는 덕에 머릿속만큼은 분주하고 정신이 없었다. 코로나가 뭐길래 사람을 이리도 괴롭히나 싶다가도, 그 덕에 짝꿍과 오붓한 신혼을 즐기고 있다 생각하니 또 괜찮아지기도 했다. (편입 안녕, 영주권도 안녕, 촘촘했던 미국 정착 계획들아 모두 다 안녕.) 근 몇 년 내에 우린 국경을 넘어가 있을 거라 예상했다. 아이라도 태어나면 어찌해야 하나 싶어 미국 맘들의 육아 고충과 노하우까지 카페에서 찾아보기도 했었는데. (ExxJ) 이제는 다시 모든 초점을 한국으로 돌려놓을 때였다.

 


  잠시 잠깐 멈춰있는 시간들을 견디다 나오면 그만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긴 격리 생활은 쉬이 끝나지 않았고, 코로나는 변이의 변이를 거듭하며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어 내 앞길에 영향을 끼쳤다. 좋은 일도 있었지만, 곤란한 일들도 수두룩했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걸 잘 안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아는 만큼 마음이 다 따라주진 않으니 늘 문제다.  


  시간이 지나 지금의 격리 생활을 떠올려보면 그땐 무슨 생각이 들까. 다행일 수도, 아쉬워할 수도 있겠지. 어느 하나가 정답인 것은 아닐 테지만, 조용히 갇혀있는 동안에도 삶은 요동치고 있었음에 그저 감사하기로 했다. 어디든, 어떤 모양이든 뭐 어떠한가. 혼자 아닌 둘이니 그거면 충분할지도.




#코비드 코모리, #코로나, #히키코모리, #낯선 마을에서의 5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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