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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an 15. 2024

사춘기 아들의 취미생활

마주이야기

"엄마, 나 갖고 싶은 게 생겼어"

"뭐?"

"희귀 다육이"


2022년 가을 무렵. 아들의 새로운 관심사가 생겼다.

'초6 남자아이가, 식물에 관심을?'

장난감도 아니고, 게임 재화도 아닌 것을 갖고 싶다 하니.

그 마음이 궁금하고, 신기했다.


"다육이가 갖고 싶은 이유가 궁금해.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

"크레이지 가드너. 그거 진짜 재미있어. 나는 동물을 키우고 싶은데, 엄마가 동물은 무서워하니깐 된다고 할 거고. 식물은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왠지 이유가 짠한 마음이 들어서, 아들의 요구에 흔쾌히 응했다.

<아이의 취미생활>


그런데 아들이 원하는 다육이는 동네 꽃집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주말마다 동네 식물 파는 곳들을 여러 군데 다녀봤지만, 아들이 원하는 것은 없었다.


"엄마, 조금 멀긴 한데... 다육이 파는 농장 같은 데 가고 싶어."

"꼭 가고 싶어?"

"응, 나는 그냥 다육이 말고 내가 키우고 싶은 아이들을 데려오고 싶어."


결국 외곽에 위치한 다육이 농장에 갔다.

'리톱스, 방울 복랑, 블랙 옵튜사'

생전 처음 본 다육이들의 이름은 생소하고 어려웠다.

아이는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마냥, 환하게 웃으며 만족스러워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이것이 시작이 될 줄 모르고......




"엄마, 다육이는 빛이 아주 중요해. 식물 조명이 필요해."


다육이를 구입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아들은 본격적으로 식물에 필요한 것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식물에 무지한 나는 아들의 요구를 수용해주지 않았고,

다육이는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정리하게 되자 아들은 매우 속상해했다.


"엄마, 빛이 중요하지 않은 새로운 식물을 사면 안 될까?"

"ㅇㅇ쪽에 희귀 식물 파는 정원이 있대."


또다시 처음 보는 식물들이 하나, 둘 입주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미니멀 삶을 추구한다.

식물에 관심도 없고, 지식도 없다. 더욱이 재능도 없어서... 간혹 선물로 받은 식물들은 오래 함께하지 못했다.


더 이상 식물이 늘어나 공간을 차지하는 게 싫었다.

오랜 고민 끝에 아들에게 식물은 이제 그만 샀으면 좋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아들이 잔뜩  애교를 부리며 다가왔다.


"엄마.... 나 미니 온실이 필요해."

"............"


더 이상은 수용해 줄 수 없었다.


그날 밤 아이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재활용품들을 오리고, 붙이더니. 미니 온실을 만들었다.

비를 맞으며, 온도 습도계까지 사 와서 온실 안에 넣어 완성했다.

<수제 미니 온실>


엄마, 내가 만든 미니 온실이야


그렇게 아이는 진심을 담은 식집사가 되었다.


아파트에 사는 우리는 처마 물받이를 찾기 어려운데,

비가 오면 1.5리터 생수 병을 가지고 나가서, 용케도 빗물을 가득 담아 온다.

그 빗물은 실온에 두어 온도를 맞춘 뒤, 정성껏 식물들에게 골고루 나눠 준다.


"엄마, 식물들한테 빗물이 최고의 영양제"


한겨울이 되자 실내가 건조해지고. 아이의 한숨이 길어진다. 이번엔 수제 비닐하우스다.


"엄마, 안 쓰는 지퍼백으로 내가 만들었어."

"비닐하우스 덮어 주니깐, 잎이 살아나는 것 같아"


신이 난 아이는 비닐하우스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상세히 설명하며, 싱글벙글이다.

<수제 비닐하우스>


2022년 가을에 시작한 아이의 취미 생활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릴 땐 공룡을 좋아해서, 그날의 공룡을 골라서 하루 종일 손에 쥐고 있던 아이였다.

지금은 책을 읽을 때, 그날의 식물을 골라서 옆에 놓아둔다.

가족 여행을 앞두고 식물 걱정을 하며, '3일 이상은 못 가'를 선언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 6시 30분이 되면 알람이 울린다.

아이는 새벽같이 일어나 식물 잎사귀와 흙을 만지며 컨디션을 확인하고 물을 준다.

잠깐의 호기심인 줄 알았으나 꽤 오래가는 취미 생활이다.




위의 내용까지 읽어 보면, 사춘기 아들의 매우 건강한 취미 생활이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매일 속이 부글부글이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나는 미니멀 삶을 추구한다.

아들의 취미 생활이 시작되기 이전까지.

우리 집 거실에는 벽걸이 TV와 소파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아이가 분갈이를 하는 날엔 거실이 온통 흙과 물로 가득하고.

(안타깝게도 아이는 일머리가 없다;;)

물을 주는 날이면, 싱크대와 거실 바닥 등에 물이 흥건하다.

어느 날은 진딧물이 생겨서, 거실 테이블 등으로 퍼진 일도 있다.


무엇보다.

나는 일하며 아이 키우며, 살림하느라 무언가를 추가로 더 돌 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어느 날은 엉망이 된 거실을 보며 나도 모르게 폭발한 적도 있다.

남편이 조용히 아들을 데려고 나갔다


나는 동물도 못 키우고,
게임도 마음껏 못 하고,
식물도 못 키우면 뭐 하고 살아?"
<나의 감정이 폭발했던 어느날>


아들은 그동안 서러웠던 감정을 쏟아냈단다.

그날 이후, 아들의 취미 생활을 존중하며 좋아해 보려고 노력 중이다.

날씨가 영하로 떨어진 날에는 미니 온실 주변을 담요로 덮어주고, 햇살이 좋은 날은 식물들의 위치를 바꿔주기도 한다.


"와, 아들! 꽃이 피었어."

"오~ 엄마가 얘네들한테 관심을 가져주니깐 좋다."

"가만 보면, 엄마는 츤데레야. 뭐라고 하면서도 은근 잘 챙겨준다니깐"



'산고'라는 말이 있다.

출산할 때, 산모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 말인듯하다.

나 또한 22시간 진통 끝에 아이를 만났다.

진통 중에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 물도 마실 수 없기에 바짝 마른 입안을 헹구고 뱉어내야 한다.

아픔도 아픔이지만, 힘줄 기운조차 없을 때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서 아이를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도 산모만큼 아프다는 말을 들었다.

산모만큼, 혹은 그 이상의 고통을 경험하고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다.


엄마도 아이 키우기는 처음인지라. 젖먹이는 것도 생소하고 어렵다.

아이가 먹기 편하게 자세를 수천번 바꿔 앉고,

아이도 엄마에게 맞추기 위해 온몸을 꿈틀거리며 맞춰나간다.


이렇듯 임신부터 출산, 육아 모든 과정은 어는 한 명의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육아란 아이와 엄마가 서로에게 맞춰가며. 신뢰관계를 쌓고.

안전한 관계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며 한 발짝씩 세상으로 나가는 연습 과정이라 생각한다.

 

아이가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양육자)들은 육아 연차가 쌓인다.

보통 회사에서 연차가 쌓이면 일이 수월해진다.

그런데 육아는 매번 새롭다.

영아기, 유아기, 아동기, 초등학생, 중학생.

매번 엄마(양육자)들에게 새로운 과업을 주고, 지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기나긴 시간 동안,

어른이라고, 엄마라고 매번 지혜로울 수 없다.

더욱이 몸이 힘들고 마음이 여유롭지 않으면 아이를 온전히 받아 줄 수도 없다.


나도 아이의 건강한(?) 취미생활을 존중하지만, 나의 몸과 마음이 힘들면 버럭 짜증이 난다.

어떤 경우라도 아이에게 감정을 마구 쏟아내면 안 되지만,

엄마도 미성숙한 사람인지라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있다(많이).

다만, 내 감정을 멈출 수 있어야 한다(최소한 노력이라도).

그리고 방법이 잘못되었다면 아이에게 사과할 용기도 필요하다.


나만 아이에게 맞추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도 태어나는 그 과정부터 지금껏 나에게 맞추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며, 마음에 새기고.

감정 쏟아 내는 것을 멈추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완벽한 엄마가 될 수 없다.

그저 'Good Enough Mother_Winnicott'가 되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할 뿐이다.

<아이가 직접 발아시켜 키운 아보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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