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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an 27. 2024

사춘기 아들의 취미생활_2

마주이야기

엄마, 나 심심해.


"심심하니? 어떻게 하고 싶어?"

"그냥, 뭔가 재미난 게 필요해."

"엄마는 지금 집안일이 많은데, 네가 설거지 좀 도와줄래?"

"오호~ 재미있겠는데?"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심심하단 아들에게 설거지를 부탁했다.

나에겐 '일'이었던 설거지가 아들에겐 '놀이'였다.

그 이후로 내가 집안일을 하는 중에 아이가 심심하다고 하면, 소소한 집안일을 함께 하게 되었다.

그때마다 아이는 엄마를 도와준다는 뿌듯함과 뭔지 모를 재미를 느끼며 집안일을 했다.


아들이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면서 가족 구성원으로서 소소한 집안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제 아이에게 설거지나 청소는 '놀이'가 아닌 '일'이 되었나 보다.

더 이상 심심하다는 표현보다는 자신이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것들을 찾아서 한다.


간혹 아이가 심심하다고 할 때면(종종 게임 시간을 요구할 때가 많다),

장난스레 '설거지하고 싶다고?'라고 되묻는다.

아이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 안 심심해.'라며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을 한다.


<색종이로 접은 포켓몬스터>

 



식집사가 되기 전 아이의 오랜 취미는 '그림 그리기, 종이접기, 만들기'등이었다.

그중에서도 한 가지를 꼽으라면, '종이접기'일 것이다.


아이는 4세부터,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녔다.

그곳에는 종이 블록, 소소한 나무 장난감 이외의 놀이 교구가 별로 없다.

마당에는 흙이 있고, 매일 동네 한 바퀴를 걸으며 놀이터나 가까운 산으로 나들이를 다녀오는 일과가 대부분이었다. 그곳에서 '놀이'는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사부작거림이 더 활성화되었다.

특히 하원 시간이 가장 늦었던 아이는 선생님과 매일같이 종이접기를 했다.


초등학생이 된 이후에는 혼자서 종이접기 책을 보며, 무엇이든 접었다.

중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엄마, 갖고 싶어."

"갑자기?"

"게임에 나오는데, 너무 멋있더라고"


나는 아이가 요구하는 장난감 등은 바로 수용해주지 않는 편이다.

아이와 함께 '꼭 필요한 것인지. 정말 갖고 싶은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구입할 것인지'등을 논의(?)한다.

그 과정에서 꼭 구입할 것은 구입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은 종이 접기로 연결이 된다.

<아이의 위시리스트_저격총>


총 게임에 몰입했던 시기에는 A4용지를 활용해 수 십 개의 총을 접었다.

물고기 잡는 게임에 몰입했던 시기에는 물고기를 수십 마리 접었고,

평소 좋아하는 동물도 종류별로 접어서 아이 방의 수납장과 옷장에는 종이 접기로 가득 찼다.

<아이가 좋아하는 아르마딜로 도마뱀>


아이의 종이접기 취미가 나에게 도움이 된 적도 많다.

나는 아이들과 '미술치료'로 만나고 있지만, 종이접기는 영 재주가 없다.


"선생님, 소원이 있어요. 3단 로봇을 만들고 싶어요. 만들어주세요."


치료실 내에서 아이들이 만들고 싶어 하거나 요구하는 것을 모두 수용해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간혹 필요할 때도 있다.

동영상을 여러 번 봐도 도통 무슨 말인지 몰라서 낑낑거리다가 아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들은 어깨에 잔뜩 힘을 주며,

"내가 이런 건 또 전문이지"라면서 1시간을 넘게 사부작 거리며 만들어낸다.

"엄마, 로봇 받은 아이는 어땠어?"


아들은 엄마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면서 후기도 꼭 챙긴다.

<3단 변신 로봇>


요즘은 긴긴 겨울방학이다.

아이는 여전히 매일 6시 30분 일어난다.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의 하루는 더욱 길어 보인다(엄마 관점).


아이는 매일 사부작 거린다.

매일 아침저녁 키크기 스트레칭, 식물 돌보기, 인강 공부, 게임, 종이접기, 책 읽기, 빈둥대기...

여기에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TV 드라마(요즘 호텔 델루나에 과몰입 중), 소설 쓰기....!


정말 취미 부자다.  




요즘 아이들은 심심할 틈이 없어 보인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 스케줄이 빼곡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학원을 다니다 보니, 친구를 만나려면 학원을 가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간혹 주변에서 아이들과 부모의 이런 대화를 자주 경험한다.

"엄마, 심심해."

"왜 심심해?" 혹은 "~하고 놀아."


방금까지 재미나게 놀던 아이가 잠깐 할 일이 없어지자(놀이의 흥미가 떨어지자),

심심하다고 표현하고. 아이의 표현에 부모들은 바로 무언가를 지정해주기도 한다.


아이도, 부모도 '심심해'라는 표현이 무서운 걸까?

두려운 걸까? 혹은 무엇을 해줘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느껴지는 걸까?


간혹 궁금함이 느껴지는 장면들이다.


예전에 슈퍼비전을 받을 때(상담사들은 상담 사례에 대한 슈퍼비전을 정기적으로 받음),

'빈둥거림에서 창의력이 나와요.'라는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이 빈둥빈둥 거리며

'아... 심심해..!'가 반복될 때,

'~ 해 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행동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며 창의력이 키워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너무 바쁘고, 정보의 양도 매우 많다.

그것들을 다 소화시킬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한데, 창의력까지도 학원을 다니며 배운다.

잠깐 시간이 날 땐 핸드폰에 몰입해 있다.

혹은 학원을 안 다니는 아이들도 핸드폰이나 게임에 많은 시간 몰입해 있다.

빈둥거릴 시간이 없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바쁜 일과를 쪼개서 상담실에 온다.

자신의 하루 스케줄을 기억하지 못하고,

영혼 없이 정해진 스케줄에 몸이 이동되는 느낌이다.

어떤 아이들은 '여기 오면 숨이 쉬어져요.'라고 말하면서도,

'심심한 게 싫어요.'라고 말한다.

그럴 땐 아이들과 '심심함'의 의미와 숨은 감정을 찾아보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꼭 말해준다.


'심심해도 괜찮아. 그냥, 가만히 있을 때도 필요해. 그래야, 진짜 네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있게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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