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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Mar 05. 2024

"밥 좀 주실 수 있을까요?"

마주이야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많은 워킹맘들이 퇴사를 고민한다는 그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나는 아이를 출산하고, 3개월의 출산 휴가를 제외하면 줄곧 워킹맘이었다.

34개월은 친정의 도움을 받았고, 7세까지는 공동육아 어린이집 종일반에서 도움을 받았다.  

많은 육아 전문가들이 말하는 아이의 '안정 애착'을 위해 주 양육자가 누가 될 것인지, 어떻게 아이에게 안전한 양육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지 늘 고민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위해 노력했다.

돌이켜보면 아이의 영유아기는 나의 시간을 쪼개고, 주변의(특히 친정부모님) 도움을 받으면 워킹맘이지만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다. 또한 아이가 조금씩 성장하면서 있는 것들이 많아지니, 초등학교 입학도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무렵 나의 삶에 변화가 생겼다.

첫째는 친정 부모님이 먼 지방으로 이사를 하셨다.

두 번째는 프리랜서가 되어 시간 활용이 자유로워질 것으로 생각했으나, 생각만큼 자유롭지 못했고 휴가가 없어졌다. 상담과 강의를 주로 하는 직업 특성상 천재지변이 아닌 이상 일을 해야만 했다.

사실 아이를 출산하고 7년간은 독박육아에 가까웠다.

남편은 회사가 멀고 야근이 많고, 휴가 사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아이의 등하원은 물론 응급 상황에서도 내가 아니면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던 것이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무렵에도 남편의 육아 참여는 쉽지 않았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앞이 캄캄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든 되겠지"

"남들도 다 하는데 뭐..."

"그래도.... 아직 어린데..."


걱정과 불안이 불쑥 올라오면서도 '뭐 까짓 껏'이라는 위안을 반복하며 고민했지만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결론은 '일단 부딪혀 보자!'라는 마음으로 아이의 초등학교 적응을 위한 방법들을 고민했다.


가장 먼저 시급한 것은 방과 후 돌봄과 식사였다.

사교육은 나와 아이 모두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 내 시스템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첫 번째 선택은 돌봄 교실과 방과 후 수업.

7세까지 흙 밟으며 놀고, 책상에 앉아 수업을 받지 않았던 아이에겐 맞지 않아 1-2개월 후 그만두었다.


두 번째 선택은 구립 체육센터 수영 강좌.

이것을 수강하기 위해서는 아이 혼자 씻고, 물건 챙기기는 물론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당시 집과 학교도 다소 거리가 있었고, 체육센터는 더 먼 거리에 있어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방과 후의 많은 시간들을 아이 혼자 있을 수 없었기에 아이와 상의하여 혼자 씻고 물건 챙기는 것을 연습했다. 셔틀버스는 여러 번 같이 동행하며 정류장을 익히고, 기사님과 인사를 나누며 얼굴을 익히도록 했다.

혼자 타기 시작할 무렵. 비타민 음료 한 박스를 드리며 아이의 상황을 전하고 아이를 부탁드렸다.

2-3주간 아이와 함께 노력하여 4-5km가 떨어진 구립 체육센터 수영 강좌를 수강할 수 있게 되었다.

한 가지를 해결하고 나니,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영으로 많은 에너지를 쓰고 난 아들 녀석의 허기!

간식도 포장해 주고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았으나 마땅치 않았다.

고민 끝에 센터 내 구내식당 사장님을 찾아갔다.


밥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사장님에게 상황을 말씀드리고, 아이가 밥을 먹으면 계좌 이체해 드리겠다고 어렵게 부탁드렸다.

사장님은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그 이후로 아이는 수영이 끝나면 종종 가서 밥을 먹었다.


"엄마, 사장님이 밥 먹는 동안 말도 시키시고 정말 친절하셔."


사장님은 혼자 먹는 아이에게 반찬을 더 가져다주기도 하셨고, 이런저런 말도 걸어주셨다고 한다.

아이는 3년 정도를 수영장을 다니며 구내식당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며 종종 저녁을 먹었고,  2학년이 되어서는 동네 블럭방에 가서 엄마의 늦은 퇴근을 기다리며 밥을 먹기도 했다.


이후에도 아이가 혼자서 해야 하는 상황은 종종 발생했다.

그때마다 아이와 나는 수영장 다닐 때처럼 같이 연습하고, 시도하고, 도움을 받으며 고비를 넘겼다.

고학년이 되었을 무렵에는 동네 식당 사장님들의 도움도 받았다.


"그럼요. 당연히 혼자 와도 되지요."

"언제든지 와. 여기서 밥 먹고 가."


사장님들에게 도움을 요청드리면, 싫은 내색 없이 늘 아이를 반겨주셨다.

어떤 곳은 부탁드린 지 1-2년이 지나고 아이가 혼자 갔을 때,

"왜, 이제야 왔니. 잘 왔어. 맛있게 먹어."라면서 반갑게 맞아주셨단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것은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평소 나는 타인의 부탁은 잘 거절하지 못하고, 반대로 부탁은 못 하는 성향이었다. 그런데 워킹맘으로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나도 모를 용기가 나왔던 것 같다. 그동안 도움을 주신 식당 사장님들 덕분에 아이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진 중학생이 되었고, '좋은 어른'을 경험하며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위 아프리카의 속담처럼 부모의 노력만으로 아이를 키우기 참 어려운 세상이다. 또한 내 아이만 잘 키워서는 안 될 세상임을 느낀다. 내 아이도 결국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 하니 내 아이는 물론 주변의 아이들에게 관심 갖고 더불어 키워야 한다.

저절로 맺어지는 좋은 관계는 없다. 좋은 이웃을 만나고, 아이에게 좋은 관계 경험(특히 좋은 어른에 대한 긍정적 경험)을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부모들의 삶에 대한 노력, 관계 맺는 방법,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 등은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라 믿기 때문에 앞으로도 좋은 관계 맺기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싶다. 또한 나와 아이가 받은 주변의 따뜻한 경험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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