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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춘 May 29. 2022

소비생활 | 달리기 시계 그리고 스포츠 물병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의 물건들

저는 운동을 좋아합니다. 실내 클라이밍을 즐기고 있고 지난해부턴 달리기도 해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운동을 좋아한다고 말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5년쯤 전 다니던 회사 복지의 하나로 운동비 지원이 있었습니다. 한 달에 10만 원을 운동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엔 운동에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헬스장 방문 횟수도 인생을 통틀어 두세 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이기도 했기 때문에 운동할 필요를 더 느끼지 못했죠. 하지만 회사 지원 운동비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뭘 해볼까 고민하다가 3개월가량 영춘권을 배웠습니다. (마침 홍대 근처에 영춘권 도장이 있었죠) 하지만 사람들과 투닥거리며 대련하는 게 맞지 않아 클라이밍으로 종목을 바꿨습니다. 마른 체형에게 유리하기도 했고 혼자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운동이라 금방 클라이밍에 빠져들었습니다.


회사를 바꿔 다니는 동안에도 클라이밍은 꾸준히 해왔습니다. 지금 직장의 동료들은 저를 운동 좋아하는 동료로 생각하고 있었죠. “클라이밍을 2-3년 해오고 있다”라고 말할 수는 있었지만 “운동을 좋아한다”고는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생의 30년 동안 운동을 좋아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이후 제 생활을 들여다보니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디론가 여행을 가면 로컬 클라이밍 짐을 찾아 운동을 하고, 클라이밍 실력 향상을 위해 보조 운동을 하고 집엔 행보드를 설치해 손가락 단련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이미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있었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 그 이미지는 그에 걸맞게 바뀌지 못했던 겁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제 모습과 제가 생각하는 제 모습이 일치하여 의심 없이 운동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지요.


이번에 소개하는 구매 물품들은 운동 관련 물건들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저는 달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클라이밍 짐이 한 달가량 문을 닫은 일이 있습니다. 그동안 어떤 운동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고른 것이 달리기입니다. 특별한 장소나 도구 필요 없이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운동으로 자전거와 달리기를 떠올릴 수 있는데 저는 달리기에 더 마음이 갑니다. 더 원초적이고 몸의 구석구석을 느낄 수 있으며 더 힘들기 때문이죠. 물론 필요한 도구도 더 적습니다. 가벼운 옷차림에 적당한 러닝화 정도가 전부니까요. 신발을 갈아 신고 훌쩍 달리러 나가면 마음도 한결 자유로워집니다. 클라이밍을 쉬는 동안 달리기를 해보니 달리기 또한 오랫동안 즐길만한 운동이 될 것이라 확신이 들어 달리기용 스마트 워치를 구입했습니다.


Garmin은 원래 GPS를 만드는 회사인데 운동 특화 스마트 기기로도 유명합니다. 저는 달리기용으로 사용하지만 자전거 동호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Garmin Forerunner 시리즈는 러너들을 위해 선보인 제품인데 그중에서도 55 모델은 두 번째로 저렴한 엔트리 모델입니다. 등산, 수영 등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모델도 있지만 제겐 달리기용 기능만 필요하여 가볍고 저렴한 모델을 선택했습니다. 시계의 기능을 이용하면 내장 GPS를 이용해 코스를 기록하고 페이스, 심박, 보속 등 달리기 지표들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시계는 25만 원가량의 가격인데 이런 시계를 구입한 이유 중 하나는 시계를 볼 때마다 달리기를 떠올리게 하고 더 자주 달리러 나가도록 자신을 부추기기 위함입니다.


물건은 그 기능으로 구입하기도 하지만 구매의 다른 중요한 측면으로 “자아상의 강화”도 있습니다. Garmin Forerunner 55를 손목에 차고 있는 건,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자아상을 강화시키죠. 덩달아 소개하는 카멜백 물병도 마찬가지입니다. 카멜백 물병은 수분 섭취를 신경 써서 하고 싶어 구입했습니다. 하루 동안 물 마시는 양을 추적해보면 1리터도 되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여러 건강 관련 책이나 글을 보면 수분 섭취를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어 이 물병을 구입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물병이라야 더 즐겁게 자주 물을 마시지 않겠습니까? 카멜백 물병을 선택하며 고려한 부분은, 물의 양이 눈에 잘 보여야 한다, 가볍고 견고해야 한다, 마개를 쉽게 열 수 있어야 한다 정도입니다. 돌려서 여는 마개인 경우 물 마시기가 번거롭고 반대로 마개가 없다면 흘리기 쉽고 위생적이지 못하죠. 이 물병은 두 가지 상태로 사용할 수 있는 마개를 갖고 있습니다. 돌려서 잠그면 물이 새지 않을 만큼 단단히 잠기고 열린 상태에서는 자성을 이용하여 가볍게 잠겨있어 쓰러져도 물이 잘 새지 않습니다.


구매를 통한 “자아상의 강화”는 낭비를 부추길 수도 있습니다. 저는 베트남 하노이를 여행할 때 방문한 클라이밍 짐에서 대나무 물병을 하나 샀습니다. Not just bamboo라는 회사에서 내놓은 대나무 물병입니다. 이 물건이 강화하는 이미지는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었죠. 대나무는 자연에서 분해되는 소재라서 좋긴 한데 실제 물병을 사용하면 몇 가지 불편함이 있습니다. 가장 큰 불편함은 용량에 비해 무게가 무겁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앞서 소개한 카멜백 물병을 주로 사용합니다.


어떤 물건들은 그 물건에 입혀진 “나의 이미지”, 그 물건이 강화하는 “나의 한 조각” 때문에 쉽게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저와 같은 맥시멀리스트가 버리지 못하는 건, 물건뿐만이 아니라 다채로운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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