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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Dec 09. 2024

하루 한 권 독서

[단어의 사생활]- 제임스 W. 페니 베이커

말과 글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저자는 ‘우리는 모두 단어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라고 말하는 텍사스 대학의 심리학 교수이다.  하루에 1만 6천 개의 단어를 사용하는 우리는 단어 사용에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고, 각자의 언어 지문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단어가 개인 서명 같다고 한다. 이 책은 단어 사용에 포커스를 두었지만 심리학 책이다. 


 명사나 동사 같은 내용어가 아니라 대명사 같은 기능어를 통해 그 사람의 성별, 감정 생각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쓰는 기능어를 통해 자신의 성격과 욕구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성취욕구, 권력욕구, 소속욕구들이 기능어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드러난다는 이론과 그 예들은 상당히 흥미롭다. 


 ‘내가 하는 말과 글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 준다, 작은 단어 기능어의 힘, 지위가 높은 사람과 대통령의 언어, 거짓말하는 사람의 단어 추적, 나의 성격과 욕구를 알려주는 기능어, 두 사람이 쓰는 기능어 관찰을 통해 관계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언어 지문을 남긴다.’ 책의 내용 중 흥미로운 부분들이다. 

 감수성이 날 선 칼처럼 돋아난 시인 중에는 그 재능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저자의 주장처럼, ‘나’라는 대명사가 시에 많이 등장할수록 우울증이 심했고, 결국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고 한다.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는 있지만, ‘나’와 ‘우리’에 대한 대명사가 무의식의 영역을 비추어 주는 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단어 계산 프로그램인 LIWC(Linguistic Inquiry and Word count)를 통해 사람들이 쓰는 긴 능어를 쉽게 분석한다. 인간은 10만 년 전부터 말하기 시작했고, 5천 년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상에 잠깐 머물다가 사라진 인간이 남긴 글들을 내용이 아니라 단어 사용 스타일에 주목할 때, 빙산의 아랫부분처럼 감춰진 인간 본연의 의식을 좀 더 명확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대학 입학 논문만 봐도 그 학생이 대학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지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구상 명사와 어려운 단어를 많이 사용한 논문을 쓴 학생이 현재형과 대명사를 적게 쓴 학생보다 더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전자가 더 똑똑해서가 아니라 우리 교육 체계가 사물 사건을 범주화하여 생각하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리 상태를 반영하는 단어는 감정 탐지기가 될 수 있다. 결혼한 커플이나 연인들의 기능어 사용이 비슷할 때, 그 관계가 더 오래 지속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세상을 보는 눈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기능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더 깊이 관여할수록 기능어는 더욱 정확히 일치하는 현상은 독특하다.  내가 사용하는 단어를 통해 친구, 가족 관계 개선법, 좋은 교육자, 더 나은 지도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다. 


 극소수의 단어인 기능어는 0.04%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극소수의 단어들이 우리 언어 스타일과 관계를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기능어 중 인칭대명사가 개인의 무의식을 더 잘 관찰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나’, ‘우리’, ‘그들’ 같은 대명사를 통해 보여주는 지도자들의 심리상태 설명은 흥미롭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나’보다는 ‘우리’라는 인칭대명사를 쓴다. ‘우리’라는 단어가 높은 지위를 나태 내는 일관성 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지위가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과 대화 시 ‘나’라는 단어를 더 높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지위의 높낮이를 내용어가 아닌 기능어로 예측해 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지도자의 성향 또한, 처음에는 ‘나’라는 화법의 사용에서 임기가 지날수록 ‘우리’라는 단어 사용이 높아짐을 보여 준다.

권력과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명사를 많이 쓰고, 지위가 낮은 사람은 대명사 나 동사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다.


 ‘우리’라는 대명사가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 의미도 인상 깊다. 너와 나의 우리, 너는 빼고 내 친구들의 우리, 너희들의 우리(예로, 교실에서 교사가 자 우리 이제 그만 떠들고 수업할 까?), 나를 칭하는 우리, 그리고 생각이 같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우리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라는 단어 하나에도 이렇게 다양한 영역의 무의식적 관계가 담길 수 있다는 것이다. 


 기능어(숨어 있는 단어)는 12살이 지나면 완전히 익히기 어렵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두엽 쪽에 위치한 브로카 영역은 기능어 담당이라면, 베르니카 영역은 명사와 동사 같은 내용어를 담당한다. 기능어가 적절히 사용되려면 ‘사회적 기술’이 필요하지만, 실제 자신의 사용 통제가 어렵고, 다른 사람의 것 또한 감지하기 어렵다고 한다. 


 상대에게 뭔가를 원할 때 ‘나’ 사용 횟수가 늘어나고, 자신감이 넘치거나 어떤 일에 집중할 때나 거짓말을 하고 있을 때는 ‘나’ 사용 빈도가 낮아진다. ‘나’라는 단어 사용 감소는 위협적인 일을 실행하려는 사람이 보내는 신호일 수 있다. 예로, 트루먼 대통령이 2차 전쟁 당시 일본에 원자 폭탄 투하 결정 전의 대중 연설에서 그전에 비에 ‘나’ 사용 빈도가 낮아진 예를 보여 준다. 


잠재적 지도자들이 자신의 언어와 그 의미에 더 신경을 쓰게 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 향상으로 더 나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음을 책은 이야기한다.


 일상 속 대화 속에서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흘리는 단어의 흔적들도 흥미롭다. 무죄 선고를 받았던 피고인들은 1인칭 대명사를 훨씬 많이 사용했지만,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들은 3인칭 대명사 사용 비율이 높았다는 실험도 인상 깊다. 


대명사가 사람들의 관심의 초점을 반영한다. 사람이 화가 났을 때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상대에게 집중 되어 있어 2,3인칭 대명사를 자주 사용하고, 현재 시제로 생각을 한다. 사람은 감정적 및 신체적으로 크게 고통스러울 때 ‘나’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우리’를 사용하는 사람은 감정적으로 거리가 있고, 지위가 높을 때 자주 사용된다는 것이다. 대명사가 감정 탐지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명사, 동사, 형용사 같은 내용어는 쉽게 눈에 들어 오지만, 인칭 대명사 같은 기능어들은 숨겨져 있다. 무의식의 세계를 반영해 주는 기능어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 두께감도 있고, 내용도 알차지만 한꺼번에 소화하기는 어려운 책이다. 2~3번 읽어 내야 할 책이다. 그 시간을 들여도 아깝지 않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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