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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가영 May 05. 2022

SH오빠에게

 

'서핑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다.'라는 대전제를 너무 믿고 살아온 탓일까. 갑작스러운 오빠의 소식에  문장에 대한  굳건한 믿음은 완전히 힘을 상실했다. 작년에도 소중한 서퍼  분이 떠나갔는데... 올해에도 나와 발리에서 추억을 유독 많이 쌓아 , 오빠의 이름만 떠올리면 함께 서핑했던 해변, 서핑  먹었던 로컬 음식, 자정이  때까지 해치웠던 맥주, 그리고 냄새가 고약한 두리안까지 손으로 으깨가며 먹었던 추억들이, 냄새만큼 진하게 피어오르게 만드는 하는  사람,  홀로  길을 떠났다.


꾸준히 쓰기로 마음먹고 시작한 브런치도 잠시 쉬었다. 나의 브런치 첫 글인, 배럴 글을 읽은 오빠가 참 좋다고 서퍼가 아닌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겠다며 정말 오랜만에 연락해 말해주었는데, 그 후에 오빠는 다음 연락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그래서 오빠에게, 그곳에도 브런치 같은 플랫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오빠에게 닿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나만의 방법으로 당신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어서 짧은 휴식기를 끝내고 이 글의 발행 버튼을 누른다.   




오빠, 친구들이 오빠 사진 많이 올렸으니까 나는 글을 쓸게. 이렇게 하는   스타일 아닌데 오빠 이런  좋아할  같으니... 거기서도 핸드폰 하나 장만했으면 읽어보라고.


크리스마스날, 우리는 후식으로 모두가 좋아하는 두리안을 먹기로 했고 파파야 마트에서 두리안을 사고 어디로 가서 먹을까 고민을 했어. 마트 바로 앞, 같은 빌라에 내 방이랑 오빠 방이 있었고 친구들을 데리고 어디로든 인도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 사실 나는 그때 속으로 제발 우리 집은 아니길 바랬다? 그런데 오빠는 흔쾌히 오빠네 가서 먹자고 했고 나는 그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두리안 냄새까지 넓은 아량으로 받아주고 무엇이든 오케이 하던 오빠였어. 우린 그날 오빠 덕분에 방바닥에서 두리안을 까먹고 맥주까지 시원하게 마시고 놀았지. 오빠는 도련님 같아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값싼 로컬 음식점을 꿰뚫고 있었어. 그때 오빠 맛집이라고 천오백 원 미아얌(닭국수) 집 간다고 바이크 타고 30분간 따라갔던 거 생각난다. 그땐 생각보다 멀어서 다시는 안 오겠다고 했는데 진짜 맛있긴 했어. 미아얌 집 소스 병 기억나? 병뚜껑이 심하게 위생적이지 않은데 사진 속 오빠가 무심하게 소스 터는 거 좀 봐봐. 국수는 무조건 1인 1주문이고 사이드로는 두부튀김을 한 그릇 가득 시켜서 양 껏 나눠먹으면서 그 소스에 찍어먹는 게 정말 맛있었는데.





오빠는 세상 세심한데 서핑에는 우직한 면이 있었잖아. 한 번은 서핑하다 리프에 머리가 부딪혔는데 머리가 돌처럼 단단해서 모두가 오빠를 인니어로 바투(Batu)라고 부르기 시작하고, 오빠는 그 별명을 싫어했지만, 결국 그 닉네임을 서핑에 대한 우직함으로 써 내려갔잖아. 그리고 우리가 매일 보던 발리 이후 오랜만에 한국 바다에서 만났을 때, 와 오빠 잘 지냈어?라고 물으면 오빠 특유의 땅을 보면서 말하는 표정이, 버릇이 계속 맴돌아. 어제는 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술집 가서 소주 한 병 주문해봤다. 그런데 내가 앉은자리 벽에 오빠 이름 두 글자가 적혀있는 낙서가 한가운데 있는 거야. 진짜 웃기고 어이없어서 웃었는데 너무 웃겨서 눈물이 왈칵 다 나더라. 그날, 오빠가 앞에 있어줘서 그런지 나 태어나 처음으로 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 술집을 나와봤어.


오빠,  마지막으로  말은  해주고 싶은데, 가서는  마음대로 하고 살아. 파도도  뺏어 타고 드랍도  해버려. 오빠가 하고 싶었던  마음대로 실컷  그냥. 나는 계속 오빠 친구들한테 전화하고 만나고 하면서 오빠 이야기 많이 해줄게. 오빠도 알지? 내가  사람 묘사 잘하잖아.


밀양으로는 꼭 인사하러 갈 거야. 바다에서 바다 냄새 진하게 나는 거 주워서 가져갈게. 내 생각에 오빠 지금 좀 짠맛이 필요할 거 같아. 오빠 만나러 가는 날, 가서 물을 거야. 거기서는 잘 지내고 있는지.



오빠, 못 지내고 있어도 괜찮으니까 그때 꼭 말해줘야 해. Mimpi indah, Ba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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