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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드시선 Apr 14. 2022

식사들 하셨습니까?

행복한 아점!

에르미타주의 스페인 컬렉션은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독일의 컬렉션 보다는 작지만 거의 대부분이 명작입니다. 한편 에르미타주의 컬렉션은 스페인 다음으로 큰 규모라고 합니다. 어떻게 스페인 대가들의 그림이 러시아로 들어오게 되었을까요? 스페인은 콜롬부스의 대서양 횡단 이후로 아메리카 식민지를 개척하며, 15~16세기에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됩니다. 또한 가톨릭의 수호 국가를 자처하였던 스페인은 엄청난 부를 바탕으로 많은 화가들을 후원하였고, 성당을 성화로 채우기 시작합니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독일, 영국, 네덜란드에서는 가톨릭의 영향력이 약해졌지만, 스페인에서는 여전히 힘이 있었습니다. 스페인 당국은 그림에 나오는 내용을 심하게 검열하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19세기 낭만주의 화가 고야의 작품 '옷 벗은 마야'는 고야 사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대중에게 공개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17세기 중반 이후 스페인은 네덜란드에 밀리며 유럽에서 주도권을 상실하게 됩니다. 19세기 초에는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지배하면서 많은 스페인 작품을 약탈합니다. 그 때문에 베일에 가려져 있던 스페인 미술이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프랑스는 러시아에 많은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는데요. 돈이 없는 프랑스는 배상금 마련을 위해 스페인 그림들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네덜란드 은행가가 프랑스로부터 스페인 그림을 사들였고, 러시아 알렉산드르 1 세가 이 은행가로부터 컬렉션을 인수했습니다. 이렇게 17세기 황금시대 스페인 컬렉션이 러시아에 들어와 현재까지 남게 되었습니다. 

에르미타주 스페인천창관-스페인 회화 전시


중요 컬렉션 몇 점을 소개합니다. 펠리페 4세의 초상화와 올리바레스 백작은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 스튜디오에서 제작했습니다. 호세 데 리베라(1591–1652)의 그림 성이레네의 치료를 받는 성세바스찬, 천사가 함께 있는 성제롬이 있습니다. 후안 데 파레자(1610–1670)가 그린 산티아고 기사단 기사 초상이 걸려 있습니다. 또한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1617–1682)의 개와 함께 있는 소년과 야곱의 꿈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프란시스코 수르바란(1598~1664)의 성로렌스와 알론소 카노(1636-1638)의 비극적인 대작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을 볼 수 있습니다. 

개와 함께 있는 소년 1650s 무리요 에르미타주


대이탈리아천창관을 지나 스페인천창관으로 들어오면 오른쪽으로 스페인 대표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이 걸려 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세비야에서 프란시스코 파체코(1564~1644) 밑에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파체코의 사위가 되죠. 초기에 벨라스케스는 카라바조 화풍에 입각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다만, 그의 관심은 종교보다는 풍속이나 정물에 집중되었습니다. 1620년대 말 당시 궁정의 실세였던 올리바레스 백작이 벨라스케스를 궁정 화가로 발탁하여 마드리드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왕가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그러던 중 루벤스의 도움으로 왕이 수장하고 있던 티치아노의 그림을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 덕분에 활기찬 화풍을 터득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그림에서 측면 조명 방식과 강렬한 명암대비는 카라바조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명암대비 수법을 흔히 테네브리즘이라고 부르는데요. 카라바조의 명암법을 가장 잘 받아들여 발전시킨 화가들은 아마 스페인 화가들일 것입니다. 벨라스케스의 초기 작품은 확실히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왼쪽에 있는 주름진 중년의 모습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습니까?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에 나오는 도마의 모습과 매우 흡사합니다. 어두운 방안에서 얼굴과 몸의 일부만 빛을 받아 드러나는 이 방식은 전형적인 테네브리즘 묘사이죠. 또한 이 남자의 손의 핏줄과 얼굴의 주름은 빛이 만들어 주는 효과에 의하여 감상자에게 핍진성을 부여해 줍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19세에 불과했던 벨라스케스는 카라바조 못지 않은 그림 실력이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테네브리즘에 대한 설명은 알론소 카노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에 예시와 함께 잘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점심, 의심하는 도마


점심은 화가의 초기작 중 하나입니다. 정물화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식탁입니다. 이렇게 술집에서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는 일상의 그림이 당시에 그려지기 시작하는데요. 스페인어로 선술집을 보데곤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러한 류의 그림을 보데곤 화풍이라고 합니다.

점심 1617 벨라스케스 에르미타주


다른 화가들은 대부분 성경 이야기를 그렸지만, 벨라스케스는 일반 사람을 자주 그렸습니다. 재밌게도 영어로 이 작품의 제목은 lenchon 점심식사이지만, 러시아어로는 завтрак  아침식사로 되어 있습니다. 어떤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식사는 아침 겸 점심을 먹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삼시 세끼 식사를 할 수 없었던 당시 서민들의 가난한 식탁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벨라스케스는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물들을 허접하게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어두운 방안에 왼쪽의 창문으로부터 빛이 스며듭니다. 그 빛이 만들어 낸 음영이 캔버스를 뭔가 깊어 보이게 만듭니다. 또한 인물과 사물들에는 입체감을 부여해 줍니다. 예를 들어서 주름진 식탁보, 못생긴 빵, 차가 담긴 투명한 유리잔, 갈라진 석류, 모서리에 간당 간당 배치된 나이프, 그리고 홍합을 담은 그릇 등은 빛에 의해 만들어 내는 자체의 질감 때문에 사실적 느낌을 강조합니다. 또한 가운데 인물의 물병을 들고 있는 손을 보십시오. 자세히 보면 투명한 병 뒷편에 병목을 잡고 있는 팔목과 소매를 묘사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름끼치는 상세 아닙니까?  이 모든 것은 빛이 만들어 낸 조화로서, 벨라스케스는 망막에 비친 그 느낌을 매우 섬세하게 포착해 낸 것입니다. 이렇듯 벨라스케스는 빛 그 자체의 움직임과 함께 물체의 모양과 색상에 변화를 주는 빛의 무한한 변화를 포착하고자 했습니다.

소박한 식탁의 상세 묘사를 통해 서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냄


여기 그려진 사람들은 벨라스케스의 다른 작품에서도 등장하곤 합니다. 퀴즈를 내 보겠습니다. 몇 사람이 보입니까? 4명인가요? 3명이 맞습니다. 가운데 형상은 사람이 아니라, 모자 밑에 턱받이가 걸려 있는 모습입니다. 화가들은 가끔 그림에서 이런 익살을 부리죠. 그래야 그림이 더 주목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오른쪽에 앉아 있는 남자가 바로 19살짜리 벨라스케스 자신입니다. 이 그림의 주제는 서민들의 식탁입니다. 비록 가난한 상차림이지만, 이 정도로도 매우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벨라스케스가 엄지 척 하며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지 3년 만에 그는 스페인 궁정 화가로 부름을 받아 마드리드로 떠나게 되지만, 그의 그림 속에는 언제나 사회에서 소외받는 난쟁이와 서민들이 등장하곤 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시녀들'과 '바쿠스의 승리'에서 처럼 말이죠. 그래서 벨라스케스는 서민들에 대한 애정이 많은 화가였다 라고 말합니다.

바쿠스의 승리 1628~1629 벨라스케스 프라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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