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마음은 러시아도...
정원에서 우연히 겪게 된 작은 에피소드
여름용 타이어로 바꾸고 집으로 돌아와 주차를 하고 있는데, 단지에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거셨다. 그 동안 한번도 대화를 해 본적은 없지만, 오다 가다 뵈었던 분이었다.
손에는 배터리가 빠져 있는 파나소닉 가정용 수화기가 들려 있었다. 내가 러시아 말을 잘 못하기도 하거니와 할머니 혀가 어눌해서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었다. 주의 깊게 듣다 보니 아들한테 전화 좀 걸어 달라는 이야기였다. 전화기가 바닥에 떨어지는 바람에 배터리가 분리되어 전화가 안되는데, 혹시 아들이 당신에게 전화를 했다가 연결이 안되면 걱정하게 될까봐 그러신다고.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모르는 전화번호라서 그랬을 것이다. 다시 한번 걸었다. 그제서야 받는다.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마 당신 어머니 같은데요. 수화기가 땅에 떨어져서 전화가 안된다고 하시네요. 혹 당신이 전화를 했는데 연결안되면 걱정하게 될까 봐 내 전화기로 이 사실을 알려 주면 좋겠다 해서 전화를 걸었어요.'
아들은 내 러시아 말을 잘 못 알아 듣고 반문했다.
'어머니가 넘어졌다고요?'
넘어지다와 떨어지다가 노어로는 같은 동사이기 때문에 이렇게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맞이하면 러시아 20년 살면서 이런 말도 제대로 못해 라는 자괴감이 들었지만 다시 핵심만 말했다.
'아뇨, 전화기가 떨어졌다고요.'
'어머니 옆에 있어요?'
'네'
그랬더니 남자는 엄마 좀 바꿔 달라 하지 않고,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시라고 말해 달라고. 아들은 아마 이런 상황을 여러번 겪어 봤는지 차갑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나는 당혹스럽기도 하고, 차마 그렇게 말을 전하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스마트폰을 할머니에게 드렸다. 지금 바로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아들의 목소리가 스마트폰 너머로 들렸다. 그러나 할머니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듯 아들의 말과는 상관없이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셨다.
'싸샤, 전화기가 떨어져서 전화가 안되는데 혹시 니가...'
아들은 엄마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했던 말을 반복했다.
'엄마, 빨리 집으로 돌아가세요'
할머니 귀가 잘 안들리시니 대화가 될 수 없었다. 서로 자기 말만 교환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들에게 꼭 해야 할 말을 전한 뒤라 안심하신 듯 내 스마트폰에 대고 사랑의 키스를 남기셨다. 아마도 백내장 때문에 눈동자는 흐렸지만, 스마트폰을 나에게 넘겨 주시는 할머니의 얼굴은 환하였다. 아들의 걱정을 덜어 주게 되어 행복하다는 표정이었다.
스마트폰을 받아들고 집으로 들어오며 생각했다. 과연 나라고 노쇠한 내 부모에게 그 남자 같이 행하지 않으란 법 있을까? 내가 늙으면 내 자식들도 나 한테 그럴 테지 생각하니 몹시 슬퍼졌다. 괄시받으면서도 끝까지 자식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 속울음을 울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