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타닥. 키보드 소리가 요란했다. 직장생활이 길어지면 키보드 소리만 들어도 일을 하고 있는 건지 메신저를 하고 있는 건지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이 소리는 일하는 소리가 아니다. 신나게 험담을 하고 있거나 회사에 뜨거운 가십거리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그 주인공은 아마도 나다.
나는 임신을 했다. 청첩장을 돌리던 날부터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는 '언제 아이를 가질 것이냐'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회사에서는 거의 모든 여직원이 결혼 혹은 출산을 이유로 퇴사했다. 한창 일을 할 4~5년 차 사원, 대리급 여직원들이 줄줄이 퇴사를 하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여러 해 겪었다. 그렇다 보니 조직원 모두가 여직원의 출산과 임신에 항상 예민했다.
“00 씨는 언제 아이 낳을 거야? 봐줄 사람은 있어?”
결혼과 동시에 이런 질문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그때마다 퇴사를 염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주실 거고, 생기면 낳을 거라고 으레 대답했다. 그랬던 내가 드디어 임신을 했다. 지금 요란하게 들리는 키보드 소리는 분명 '퇴사하는 거 아니야?' , '언제 출산이래?' 등 나의 임신과 퇴사를 두고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얼마 전, 나와 가깝게 지내던 여직원이 퇴사했다. 1년의 육아휴직 후 복직했던 친구였다. 그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래서 여자는 안된다'는 쌍팔년도에나 들어봤음직한 여성차별적 발언부터 시작해서 육아휴직까지 다녀와서 일을 그만두면 어떻게 하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또 다른 계약직 여직원은 계약기간 중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모두의 예상대로 재계약되지 못했다. 그녀가 떠난 것은 자의에 의한 것이었지만 등 떠민 것은 회사였음이 확실하다. 그런 일을 겪은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또 내가 임신을 했으니 떠들썩할 만도 하다.
여러모로 타이밍이 안 좋았다. 나는 얼마 전 승진에서 누락되었다. 회사의 경영사정이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인사발령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은 몇몇 직원이 승진에서 누락된 나를 앞세워 한 소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분위기를 만들던 중이었다. 그렇게 책임자와의 면담을 앞둔 주말. 공교롭게도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을 확인했다. 그 순간 승진 누락 따위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임신기간 동안 무사히 회사를 다니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안전히 받아내는 것 만이 나의 유일한 관심사가 되었다. 결국 상사와의 면담에서는 승진 누락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는 대신 임신 사실을 먼저 알리게 되었다. 내가 나서서 부당한 인사발령에 대해 따지지 않자 뒤에서 나를 부치기던 모든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자기 일에 집중했다.
그날 이후로 공공의 적이 바뀌었다. 바로 나였다. 어제의 동료는 적이 되었다. 임신 사실을 알린 순간부터 나는 잠재적 퇴사자가 되었다. 아이를 낳아도 회사를 계속 다닐 거냐고 노골적으로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말이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로 들리지 않았던 것은 내 마음이 꼬였던 탓이었을까? 만삭까지 비슷한 질문을 숱하게 들으며 출근했다. 뒤에서 수군대는 그 사람들에게 당당히 만삭까지 내 몫을 다 해내고, 출산 후에도 돌아와서 멋진 워킹맘이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다. 임산부라고 배려받고 싶지 않았다. 주말근무,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배려받으면 받을수록 더 신나서 떠들 사람들이 얄미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회사에 진심이었다. 직장 내 인간관계는 그렇다 치더라도 일 자체가 주는 보람은 컸다. 거래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즐거웠기 때문에 다른 회사로 옮길 마음도 없었다. 출산을 앞둔 마당에 받아 줄 다른 회사도 없을뿐더러 아이를 낳고 육아에 집중하려면 아무래도 익숙한 일을 계속하는 편이 나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회사를 그만 둘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출근하던 중 잠시 정신을 잃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고, 주말근무 후 돌아오다가 넘어져 다친 적도 있었지만 출산예정일 2주 전까지 최선을 다해 근무했다.
지금의 이 시끄러운 험담과 나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도 휴직 후 돌아와 다시 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면 모두 잦아들 거라고 믿으며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