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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an 12. 2024

남편이 육아휴직을 결심하기까지

"퇴근하고 병원 좀 들렸다가 갈게."

"오늘은 또 무슨 병원?"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내과. 


최근 1년간 남편은 병원 문턱을 자주 드나들었다. 연초 건강검진에서 발견된 이상소견으로 병원에 입원해 조직검사를 했고 한 달간 독한 스테로이드 약을 먹으며 치료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 면역력이 약해졌고 전과 다르게 자주 감기를 앓았고, 피부 발진이 계속되었고, 근육통으로 장거리 운전도 불가능했다. 몸은 아파도 당장 큰 병은 아니니 출근은 해야했다. 근무를 마치면 서둘러 퇴근해 야간진료를 하는 병원을 찾아 다니며 1년을 보냈다. 


남편은 버텼다. 버티고 참는 것은 남편이 가장 잘 하는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사교육 한 번 받지 않고 공부해 대학에 갔고, 어학연수는 커녕 해외여행 한 번 가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해 이과생으로는 드물게 토익 고득점을 받고 카츄사에 들어갔다. 빨리 졸업해 취직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학시절 흔한 방황이나 휴학도 없이 졸업을 했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다. 본가와 떨어져 지방에서 일을 해야 했지만 가족에 대해 별다른 애착이 없었기에 오히려 편했다. 나를 만나 결혼한 후에도 주말부부로 혼자 지내며 타지 생활을 견뎠다. 그렇게 타지생활을 견디며 한 회사에서 십 여년을 일한 결과, 남들 보다 빠르게 진급을 했고 월급이 올랐다. 회사 내에서는 가장 어린 나이에 팀장 후보로 꼽히며 특별교육도 받았다. 


묵묵히 참고 견디던 남편은 팀장 후보로 언급되기 시작하자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더 이상의 책임을 짊어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냥 조용히 회사에 다니고 싶어."

"팀장이 되고 싶지 않으면 고과를 못 받아야지. 고과를 못 받으려면 영어성적도 만들지 말고, 일도 대충하고, 근퇴도 엉망으로 하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영어성적은 항상 상위권을 유지했고, 일은 책임감 있게 해냈으며 지각 한번 하지 않았다. 


적당히가 되지 않는 사람.

혹은 남들 보다 적당히의 기준이 높은 사람. 

요령을 피울 줄 모르는 사람. 

그래서 지치고 힘든 사람. 


그에게 필요한 건 브레이크였다. 


초보운전자 시절 연수를 받을 때, 강사는 항상 사이드브레이크 위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급할 때를 대비해서다. 혹시라도 운전자가 당황해 브레이크를 밟지 못할 경우 사이드브레이크를 걸어서라도 차를 멈춰 사고를 막기 위함이었다. 지금 남편에세 필요한 것은 사이드브레이크. 그가 스스로 멈추지 못하고 있으니 옆에서 억지로라도 멈춰줘야 할 것 같았다.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나였다. 


인생의 휴식이란 없었던 남편은 1년의 짧은 휴식기를 갖는 것 조차 망설였다. 


"우리 때는 평생 일을 해야 한다고 하잖아. 노후가 기니까. 100세를 산다면 이제 50%도 오지 않았는데 벌써 지치면 안될 것 같아. 쉬자. 시간이 지나고 보면 1년은 아무 것도 아닐거야."


그동안 모아둔 통장의 잔고를 보여주고, 식탁에 마주 앉을 때마다 설득을 하자 남편이 육아휴직을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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