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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Mar 05. 2024

도서관으로 출근합니다.

* 나의 취미 모음집 - 도서관

새해가 되면 무료운세를 찾아보곤한다. 특별히 운세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출발에 앞서 미래를 점쳐보는 것이 꽤 재미있다. 본격적으로 철학관에 갈 만큼 적극적이지 않고, 그들이 시키는대로 살 성격도 아니라 온라인에서 보는 무료운세로 만족하는데 그 마저도 대부분은 쭉 훑어보고 잊어버린다. 와중에 어떤 문구는 의도하지 않아도 머릿 속에 남을 때가 있다. 다행히 나쁜 것은 빨리 잊어버리는 터라 기억에 남는 내용은 대부분 긍정적인 내용일 때가 많은데 올해 신년 운세에서 잊지 못할 한 줄은 이거다.


"밖으로 나가 많은 사람을 만나면 기회가 생기는 운"


아무리 공짜 운세라지만 너무 당연한 소리라 운세라기 보다는 자기계발서에 나올법한 조언에 가까운데도 유독 이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번 겨울 지독하게 집순이로 보낸 탓일지도 모르겠다.


말이 밟혀 일단 밖으로 나가긴 나가야겠는데 동네 친구도 없고,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목적 없이도 잘 돌아다니는 외향형 인간도 아니기에 좀처럼 나갈 거리가 생기지 않았다. 마치 풀지못한 숙제처럼 이 말이 머릿 속에 맴도는 가운데 일단 어디라도 가야할 것 같아 나에게 가장 익숙한 곳으로 향했다.


도서관.


돈 한푼 들이지 않고도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고 게다가 오며가며 마주치는 사람들과 어색하게 말을 섞지 않아도 되니 내향형 인간에게 이보다 더 안성맞춤인 곳이 어디있으랴. 더욱이 외벌이에 이제는 남편마저 휴직 중이라 둘 다 백수가 되어버린 마당에 공짜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그리하여 나는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하기로 결심했다.


도서관 비 오는 풍경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유리한 조건을 들어 흔히 '~세권' 이라는 말을 한다. 숲세권(숲이나 공원이 가까이 있는 지역) , 슬세권(슬리퍼 신고 주변에서 웬만한 것들을 거의 다 해결할 수 있는 지역)이라는 말이나 특정 상표를 이용하기 편리하다는 이유로 스세권(스타벅스 이용이 가능한 지역), 다세권(다이소 이용이 가능한 지역) 등의 말도 마케팅에 자주 활용된다. 수많은 ~세권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소는 도서관이다. (도세권이라 해야 할까? 책세권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할 때, 지도 앱을 켜고 제일 먼저 찾은 것이 학교 다음이 도서관이었다. 아이의 첫 기관을 선택할 때는 유치원 바로 앞에 도서관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이 기울었고, 집을 선택할 때는 도서관 가는 길목에 있는 산책로가 마음에 들었다. 부동산 가격에는 일말의 영향도 끼치지 못할 도서관이 나에게는 1순위라니 이 얼마나 돈이 안되는 취향인지.  


얼마 전, 신도시로 이사한 친구 집들이에 초대를 받았다. 신도시답게 아파트 단지 앞에 새로 지은 멋드러진 도서관이 있었는데 어린을 세심하게 배려한 것이 눈에 띄는 어린이자료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책을 읽을 공간, 도서관 안에 작은 전시실까지 갖추고 있어 당장 이곳으로 이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집 앞 도서관이 너무 근사하다. 부럽다."

"도서관이 코 앞에 있으면 뭐해. 난 아직 대출증도 없어. 도서관 드나들 일이 뭐 얼마나 되겠어?"


아뿔싸. 도서관을 칭찬하는 대신 나는 친구의 집 인테리어가 고급스럽다고, 단지 조경이 잘 되어 있다고, 편의시설이 다양해서 편리하겠다고 혹은 집값이 많이 올라서 부럽다는 인사를 했어야 했는데. 다시 한번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취향에 소심해졌다.


유튜브, SNS 등 화려한 미디어에 밀려 책을 읽는 인구는 점점 더 감소하고 있다는 통계가 무색하게 매년 문해력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책을 읽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래에는 컨텐츠가 무기라는 예언과 함께 책을 출판하는 것이 컨텐츠 시장에서 살아남는 필수코스가 되어가는 분위기다. 그것을 증명하듯 매년 출간되는 도서는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전국의 공공도서관 수가 증가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핫하다는 대형 쇼핑몰에는 근사한 서점형 도서관이 함께 생기고 그곳을 찾아 인증샷을 찍는 이들로 북적인다. 읽는 사람은 줄고 있지만 '책'을 컨텐츠로 한 시장은 커지는 상황. '이런 분위기라면 나의 소외받은 개인취향도 돈이 되는 시대가 올까?'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하며 도서관을 나왔다.


잔뜩 대출한 책으로 가방은 무겁고,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이 풍경 또한 사랑스럽다. (역시 나의 취향은 매우 마이너적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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