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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Dec 19. 2024

작은 집으로의 여정

팔고 나누고 버리고.

 작은 집으로의 이사가 결정되자 모든 물건이 다르게 보였다. 언제나 당연히 그 자리에 있던 물건들이 당연하지 않게 느껴졌다.


 '24평으로 이사가려면 몽땅 버려야 해.'


 그동안 미니멀을 주장하며 물건을 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음에도 34평 집으로 이사오며 새로 산 물건들이 적지 않았다.


아이의 잠자리독립을 꿈꾸며 산 침대, 이제 멀어서 김치도 자주 못 준다며 엄마가 사 준 김치냉장고, 남편 휴직과 동시에 산 소파까지.


부피가 큰 물건들을 버리는 일은 쉽지 않고 또 멀쩡한 물건을 버리는 것도 낭비다 싶어 큰 가전과 가구는 그대로 두고 작은 물건들을 손보기로 했다. 숨어있는 모든 물건을 비우고 버리자.



 팬트리를 열었다. 코로나 때 구입한 실내 자전거부터 아이가 타던 트램폴린, 엄마가 사 준 손님접대용 교자상, 몇 번 사용하지 않은 공기청정기 등등. 넓은 집에 살다보니 별 생각없이 갖고 있었던 물건들인데 이사갈 집을 상상하니 도저히 보관할 곳이 없어보였다. 한숨 한번 크게 쉬고 오랜만에 당근앱을 켰다.


 큰 일을 앞두었을 때, 내가 꼭 지키는 루틴은 매일 하나씩 작은 일을 꾸준히 하기.


 이사를 결정한 순간부터 매일 아침 두개씩 팔자는 목표를 세웠다. 매일 아침 목표물건을 정해 상태를 확인하고, 사진을 찍고, 시세를 검색하고, 게시글을 올리고. 거래 약속을 잡고, 가져가기 쉽게 포장을 하고. 그렇게 일주일 동안 20건이 넘는 당근거래가 이어졌다. 팔고, 나누고. 20건의 당근거래로 소소한 용돈벌이가 됐다.


 "당근이세요?"


 또 다른 목표는 매일 구역을 정해서 정리하는 거다. 딱 하나씩만. 정리를 더 하고 싶어도 내일을 위해 남겨두기.


세탁실을 선택한 날, 틈새 수납장 하나를 분리해 재활용 쓰레기고 버렸고, 다음 날은 베란다를 선택해 자전거와 킥보드를 처리했다. 다음 날은 주방 상부장 2개를 골라 오래 텀블러와 사용하지 않는 그릇을 버리고, 포장도 뜯지 않은 밀폐용기와 김치통을 팔았다. 이불장을 고른 날은 모든 이불을 꺼내놓고 사용하지 않는 낡은 이불을 버렸는데 솜이불을 제외한 누비이불은 헌옷수거함에 버려도 된다는 사실을 새로 알았다.

 


 주말에는 아이를 앉혀놓고 스스로 버릴 물건을 정하게 했다. 미술학원에서 만들어 온 작품들, 더 이상 놀지 않는 보드게임, 읽지 않는 책, 장난감, 학용품 등. 이사 후 장롱 속에 넣어둔 채 한번도 열어보지 않았던 수납상자들을 몽땅 열어보았다. 있는지도 몰랐고, 어디에 쓰는지도 모르는 물건이 줄줄이 나왔다. 물려받았지만 한번도 갖고 놀지 않은 장난감들도 있었다. 50리터 쓰레기봉투 두봉지를 버렸다. 아직 쓸만한 물건들은 당근으로 나눔했다. 필요한 사람이 있을까 싶었던 물건들도 나눔으로 내놓으니 다들 고맙다며 가져갔다. 나로서도 처리비용이 들지 않으니 고마운 일이었다.  


 비워도 비워도 별로 티가 나지 않더니 일주일 정도 루틴을 반복하다보니 집 안이 한결 깨끗해지고, 가벼워졌다. 미니멀하게 산다고 살았는데 좀 더 가벼워질 수 있었구나. 그동안 얼마나 많은 물건들을 이고 살았던걸까.


 하지만 24평 집으로 이사를 하려면 아직 멀었다. 가장 어려운 관문 책장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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