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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타입은 왜 국민평수가 되었나

by 봄이 Mar 04. 2025

국민평형이라는 말이 있다. 가장 선호하는 평수를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전용면적 84㎡를 의미한다. 언제부터 84타입이 국민평수가 되었는지 자료를 찾아보니 1973년 수도권의 주택난 해소를 위해 주택공급 계획을 시행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이때 1인당 필요한 주거면적을 5평으로 계산했는데 당시만 해도 평균 가족구성원 수가 5.2명이던 시대라서 그 규모를 25평으로 계산한 것이다. 이후 평형이 제곱미터로 바뀌면서 알아보기 쉽게 기준면적을 전용 85㎡ 이하로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2023년 기준 평균 가구원 수는 2.2명까지 줄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민평형이 변함없는 데는 늘어나는 가전이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정도가 필수가전으로 여거지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건조기,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는 3대 이모님으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가전으로 꼽히고 환기가 어려워진 환경 탓에 공기청정기, 제습기, 가습기 등도 필수다. 거기에 취향이나 선호에 따라 커피머신이나 와인냉장고, 음식물처리기, 의류관리기 등도 필요하다. 광고를 보면 매번 새로운 기능과 유행따라 바뀌는 디자인이 추가된 가전들이 나를 유혹한다.


 다른 가전들은 제쳐두고 이제는 국민 필수템이 된 건조기만 살펴보자. 59㎡ 타입에 세탁기와 건조기를 모두 설치하려면 병렬설치는 불가능하다보니 제조사에서는 직렬설치라는 획기적인 방법을 고안해냈다. 하지만 직렬설치를 하더라도 세제를 비롯한 각종 잡동사니를 보관할 공간은 여전히 부족하다. 요즘은 세탁세제만 해도 옷감별, 용도별로 2~3가지씩을 갖추는 경우가 많고 세탁망을 비롯해 기타 자잘한 소품들까지 모두 갖춰놓으려면 59 타입으로는 어림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주방도 문제다. 59타입 주방에는 식기세척기, 정수기만 놓아도 벌써 조리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여기에 에어프라이어나 커피머신, 전기오븐 같은 것들까지 배치하려면 계산이 복잡해진다. 그렇다 보니 온갖 수납을 위한 아이디어 제품들을 구입하기 위해 다이소로 달려가고,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이지만 뾰족한 수는 생기지 않는다. 가족구성원이 줄어도 여전히 84 타입은 국민평수라고 불리는 이유는 소유를 놓지 못해서가 아닐까.


한편에서는 최근 1,2인 가구가 증가하고 자산규모가 작은 젊은 세대들은 집값이 높은 수도권에 집을 구매할 경우 소형 평수를 선택할 것이라는 근거를 들어 국민평형이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소유'에 대한 개념이 달라지지 않는 한 쉽게 놓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59타입 거실도 충분히 넓게 쓸 수 있다.59타입 거실도 충분히 넓게 쓸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민평형이라는 84 타입에서 59 타입으로 이사하며 고민이 많았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입성하려니 평수를 줄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수많은 59 타입의 집들을 구경했는데 대부분 좁고 어두워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집에 여유공간이 없어서인지 해가 잘 드는데도 그늘져 보이고 어수선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방문한 모든 집에서 방 하나는 어김없이 옷방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특히 그 방들은 발 디딜 공간도 없었다. 달리 방법이 없어 계약을 하고도 '이게 맞는 선택인가' 내심 불안했다.


그런데 이사 날.


모든 짐이 빠지고 집을 둘러보니 '생각보다 넓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직원분이 웃으며 말씀하신다.


"짐 빠지면 열이면 그렇게 말해요."


그래 문제는 집이 아니다. 소유에 대한 집착이 만든 버리지 못한 짐 때문이다. 해가 뜨고 지는 하늘 한 번 여유롭게 바라보지 못하고, 스치듯 지나가는 월급에 한탄하며 어렵게 내 집 장만을 하고도 집 안에 여유롭게 쉴 수 있는 내 공간 하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짐들에게 공간을 모두 내어주고 정작 주인인 나는 세 들어 사는 사람처럼 웅크려 있어야 한다면 그건 더 큰 집을 산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일까. 큰 집이 생기면 또 거기에 맞게 필요한 물건이 늘어나지 않을까.


사는데 생각보다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리 큰 집을 얻어도 만족할 수 없을지 모른다.


국민평수라는건 집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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