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욕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갖고 싶은 것도 많고 써보고 싶은 것도 많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건들도 제법 있다. 여유가 있을 때면 모바일 앱에서 물건을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담아두기를 좋아한다. 단 무엇이든 지금 당장 구매하는 일은 거의 없다. 사흘이고 나흘이고 늘 고민한다. '정말 필요한 게 맞을까? 잘 활용할 수 있을까? 집에 대체할 물건이 있지는 않을까?' 그렇게 신중을 기한 후 아무리 생각해도 꼭 있어야 한다는 확신이 들 때 비로소 구입 버튼을 누른다. 가끔은 긴 고민 끝에 구매를 결정하기도 결제단계에서 취소를 누를 때도 있다. 다시 한번 더 심사숙고하는 시간을 갖는다.
'정말로 진심으로 이 물건이 꼭 필요하다고? 이게 최선이야? 맞아?'
가끔은 충동적으로 사고 싶은 게 생길 때도 있는데 그때는 가상의 상황을 가정한다.
'나는 학생이다. 갖고 싶은 물건이 생겼다. 엄마에게 사달라고 설득해야 한다. 뭐라고 설득할 수 있을까? 그 말은 설득력이 있는가?'
스스로 들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탈락이다. 살 수 없다. 남편은 얼마 하지도 않는데 뭘 그렇게까지 고민하냐고 그냥 사라 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묻고 따지는 건 내 만족을 위해서다. 그것이 내 것이 됐을 때, 우리 집에 와서 꼭 맞는 용도로 오랫동안 사용될 때 느껴지는 만족감. 그걸 위해 나는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는 일이 좋다.
사회초년생 시절, 이제 막 교복을 벗고 대학생활의 낭만에 젖은 그때는 체형이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하지 않고 유행하는 옷, 당장 예뻐 보이는 옷을 닥치는 대로 샀다. 대중교통을 갈아타며 1시간 넘게 등하교를 해야 하는데 높은 하이힐을 사거나 하루 종일 수업이 있는데 짧은 스커트를 입는 등 상황이나 장소에 맞지 않는 옷을 즐겨 입었다. 부지런히 옷을 사모았는데도 매번 입을 옷이 없었다. 어디에 어떤 옷이 있는지도 모른 채 비슷한 디자인의 옷을 또 사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건 옷이 많아도 늘 입는 옷만 입게 된다는 사실. 그간 내가 사모은 옷을 값으로 환산하면 연봉쯤 되지 않을까. 유행과 상관없이 내 취향과 생활패턴에 맞게 옷을 구입하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20년이나 더 흐른 뒤, 마흔이 다 되어서였다.
세 번의 이사를 다니는 동안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들도 많이 구매했다. 그중에서 가장 아까운 건 신혼 때 산 화장대, 서랍, 침대프레임 세트였다. 화이트 인테리어가 유행이라고 하기에 하이그로시 소재로 안방 가구 전체를 맞췄다. 단지 예뻐 보인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구는 하나도 없다. 화장대, 서랍, 침대프레임 순으로 모두 쓰레기가 됐다. 화장대의 큰 거울은 수면에 방해가 됐고, 깊은 서랍은 옷을 마구 집어넣게 돼서 오히려 정리가 어려웠다. 침대프레임은 남편의 체구를 고려했더라면 디자인보다는 내구성을 더 따져보아야 할 것을 잘못했다. 귀엽다는 이유로 광고에 혹해서 산 인테리어 소품들도 적지 않다. 그런 건 언제 어디서 버렸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 많은 물건들을 사고 정리하고 버리면서 알게 된 건 사실 '나 자신'에 대해서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나에게 진짜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정리를 통해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
유행 따라 사놓고 방구석에서 뒹굴고 있는 것이 있다면 예뻐 보여서 샀는데 막상 사용하지 않고 있다면 자꾸 못 본 척 고개를 돌릴 것이 아니라 그 물건과 눈을 마주쳐야 한다. 그리고 깨달아야 한다.
'이건 내 취향이 아니구나.'
그것부터가 미니멀의 시작이다. 그렇게 하나씩 내 취향을 발견하다 보면 그다음부터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버릴 수 있게 되고,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을 보는 안목이 생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지금 맥시멈리스트라면 오히려 좋은 기회다. 많이 사봤고 실패해 봤을 테니 이제는 골라내기만 하면 된다. 내게 정말 소중하고 자주 사용하는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을. 심리상담을 받고 명상을 하며 내면세계를 탐색하고, MBTI 같은 심리검사를 해야만 나를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집을 정리하는 작은 행동으로도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다.
여러 번의 실수 끝에 내가 더 이상 사지 않는 물건은 의외로 화장대다. 이사를 하며 예쁜 원목 화장대를 사고 싶어서 몇 날 며칠을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고민의 고민을 했지만 결국 사지 않았다. 대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화장대를 발견했다.
바로 안방 욕실.
커다란 거울, 충분한 수납공간과 밝은 조명, 화장하며 손 씻기 좋은 세면대, 드라이며 고데기를 쓸 때 필요한 콘센트까지 완벽.
안방에 여유 공간이 생긴 건 덤이다. 고급 화장대를 사보고 애물단지로 만들어 본 경험이 없었다면 절대 깨닫지 못했을 세계. 어쩌면 모든 미니멀리스트는 한 때 맥시멀리스트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