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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Apr 22. 2024

“오늘도 내 꿈에 나타나 줄래?”

두 마리의 고슴도치


고슴도치는 상대가 찔리지 않도록 가시를 눕힌다.
다른 고슴도치가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할 줄 알며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 바늘이 없는
머리를 맞대며 추위를 이겨 낸다고 한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어릴 때는 꿈을 참 많이 꿨는데, 나이가 들수록 꿈을 꾸는 날도 점점 줄어든다. 이제는 자주 꾸지 않는 꿈. 자주 꾸지 않는 나의 꿈에 자주 나타나는 사람이 딱 2명이 있다. 그 2명은 타의에 의해 내가 만나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어렸을 때는 상대방이 나를 보고 싶어 하면 내 꿈에 나타난다는 그러한 설이 있었는데, 지금 나의 상황을 보면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꿈에서라도 나타나는 것 같다. 오늘은 그 2명 중 1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의 20대는 지금의 마흔 인 나와 전혀 다른 인격체를 가졌었다. 물론 긍정적이고 밝고 사람 좋아하는 성격은 그대로이지만, 그때는 고슴도치 마냥 가시가 돋아 있었다. 내 몸에 난 가시는 중학생 때 사춘기를 겪으면서 하나 둘 생긴 것이다. 20대가 되고 나서는 그 가시를 옷 속에 숨겨 다녔을 뿐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가시가 있다고 해서 막 까칠하거나 감정기복이 심하거나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다만 누군가가 나에게 이유 없이 다가오면 가시를 드러내, 가까이 오지 말라고 신호를 보냈던 것 같다. 다만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는 한 없이 가까이 다가갔고 마음을 다 주기 일쑤였다. 남들이 보기에 나는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다니게 된 직장. 나는 그곳에서도 아마 가시를 세우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나의 특수한 상황을 보여주기 싫어서, 알리고 싶지 않아서 나는 가시를 곤두세워서 회사를 다녔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동갑내기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나와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졌다. 일단 피부도 하얗고 눈도 김연아처럼 가늘고 긴 눈. 그리고 키도 크고 말랐었다. 우리는 부서가 달라서 처음에는 친하질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그녀와 친해진 것은 회사의 비상구에 있는 비상계단에서였다.


재미없는 업무를 하다가 딱 배도 부르고 졸린 시간. 나는 화장실 가는 척을 하고 종종 비상구 문을 열고 비상계단에 가서 쉬었다. 그곳에는 창문이 있어서 8층 정도의 높이에서 삼성역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거기서 달달한 사탕이나 커피를 마시며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만큼은 나의 가시에 들어간 힘을 뺄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그러다 그 친구와 비상계단에서 만난 것이다.

어쩌면 같은 마음이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회사에서 나이가 제일 어린 신입사원이었다. 선배들 틈에서 마음을 터놓을 곳이 없이 방황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비상계단에서 하루에 한 번, 티타임을 가지며 조금씩 친해졌다. 그리고 함께 회사 욕을 하며 더욱 친해졌다.


나의 회사생활 4년은 모두 그 친구와 함께였다. 힘들었던 회사 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그 친구 덕분이었다. 재미없는 나의 회사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어주었고 지루할 틈 없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함께 했다. 출근 전에 같이 수영을 배우기도 했고, 퇴근하고 요가를 하고 플루트를 배우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날은 퇴근하고 삼성역에서 쇼핑을 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고 한참을 수다를 떨고 헤어지곤 했다. 그리고 가끔 휴가를 같이 내서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지나간 4년의 추억에 그 친구가 없는 공간을 찾기 어렵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을 하러 다닌 것인지, 그 친구와 놀러 다닌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정말 행복한 추억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친구를 내가 좋아했던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았다. 비록 살아온 환경은 달랐지만 취향이 비슷했고 대화가 통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우리는 매일 같이 출근하는 회사에서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고 싶었을 것이고 재미없는 회사생활에서 재미를 찾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 친구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던 것 같다. 서로 가시가 있다는 것을 까먹고 더 가까이, 더 가까이 그 친구에게 다가갔다.


그러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통역대학원을 준비하면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그녀와 나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내가 대학원 준비를 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고 결혼을 준비하고 결혼하면서 어쩌면 예전의 그 감정이 점점 옅어졌을지도 모른다. 그 친구와 가끔 만나는 시간이 줄어드는지도 나는 몰랐다. 대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결혼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지냈다. 그렇게 바쁜 나날을 보내다 문득 깨달았다. 그 친구를 안 만난 지 한참이 되었다는 것을. 연락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벌써 이 기억도 10년 이상된 기억이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맞을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원래 사람이란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기 때문에. 하여튼 나의 기억에 의하면 그 친구에게 오랜만에 문자를 남겼는데 씹혔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당시에 나도 내 삶이 너무 버거워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바쁜 일상을 다시 보내다 다시 한참이 지나고, 카톡이 그제야 생기면서 카톡을 다시 그 친구에게 보냈다. 그런데 여전히 읽씹을 당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 친구가 나를 피하고 있음을. 아니면 나에게 무언가 화가 나있음을.

나는 같이 다니던 회사 동료에게 그 친구의 전화번호를 다시 확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번호는 내가 아는 번호 그대로였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나도 잘못을 했다. 왜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지금의 나라면 전화를 했을 법도 하다. 그러나 20대 후반의 나는, 전화를 할 용기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녀의 뾰족한 가시에 찔려 아프다고만 징징댔지, 왜 그녀가 나를 향해 가시를 드러냈는지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또 몇 년이 흘러 어느 날 카톡을 보는데 그 친구가 결혼을 하는 소식이 보였다. 나는 다시 한번 마음에 요동이 쳤다. 읽씹을 당하더라도 연락을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모른 척해야 하나. 사실 마음은 진심으로 그녀의 결혼을 축하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의 결혼에 그 친구가 정말 많은 도움을 주었고 축하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나는 쭈구리로 살면서 누구를 만나지도 못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라곤 가족 외에는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더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축의금이라도 회사 동료에게 전달해 달라고 할 수도 있었다. 사실 그것을 생각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를 원치 않을 텐데, 나의 축의금만 받고 그 친구가 좋아할까? 아닐 것 같았다. 나는 고민만 하다가 결국 결혼식 날짜를 지나버렸다.


사실 지금도 그 친구의 카톡이 보인다. 그 친구는 내가 보일지 안 보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아이 둘을 낳고 잘 사는 것 같다. 다시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해 볼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너무나 많은 세월이 지나버렸다. 가끔 상상을 한다. 그 친구와 만나는 상상을. 하지만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때 왜 그랬냐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물어보고는 싶지만 이제 와서 안다고 한들, 다시 그 시절의 우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볼 때 그러기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내 가슴속 깊은 곳에 그 친구를 묻어 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차단당한데는 이유가 있을텐데, 나는 회피했던 것 같다. 나는 그 당시 누군가와 싸우는 것이 힘들어서 늘 피했다. 그래서 그 친구와도 그렇게 끝내버렸다. 온전히 내 선택으로 말이다. 오랫동안 나는 그 친구를 원망했다. 화가 났다면 말을 하면 되지, 왜 연락을 피했을까. 원망도 참 많이 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그 친구보다 ‘나’를 더 돌아보게 되었고 나의 잘못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은 그 친구를 더이상 미워하지 않고 미안한 마음 뿐이다.


이제는 그 친구가 잘 사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연은 거기까지였다고 생각한다. 그 친구의 빈자리를 또 다른 사람들이 채워주고 있기에 점점 마음은 충만해지고 있고,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물론 그 4년의 찬란했던 추억을 함께 나눌 친구가 없다는 것 만큼 슬픈 일은 없다. 나이가 들수록 그 추억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꿈에 진하게 그 친구가 찾아온다. 꿈을 꾼 다음 날에는 하루 종일 그 친구와의 좋았던 추억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다시 씁쓸해진다. 그렇다고 어떠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그냥 곱씹는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20대의 찬란했던 그 시절을 함께 했던 그 친구가 40대라는 인생의 전성기를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그 힘들었던 20대의 회사생활에 그 친구가 내 곁에 있어줬음에 감사하다. 분명 그 친구가 없었더라면 난 더 일찍 회사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즐거운 기억 따윈 없을 것이다. 한겨울처럼 혹독한 회사 생활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서로 바늘이 없는 머리를 맞대며 서로 기대고 있었던 그 추억이 있어서 감사하다. 나는 가끔 자기 전에 그 친구를 생각한다. 그런 날이면 내 꿈에는 그 친구가 웃으며 나타나주기 때문이다. 혹시 나중에라도 얼굴을 볼 기회가 된다면 미안했다고 고마웠다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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