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aemi Nov 13. 2023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라, 킨더줄리

그림일기를 쓴 지 800일을 넘으며 느낀 것


 “우리 킨더줄리에서도 전시회를 열어야겠네요!”


 올 초, 이모티콘을 만드는 커뮤니티에서 ‘소녀를 부탁해’라는 전시를 했을 때 나를 보러 와 주신 킨더줄리의 수장, 줄리님이 나에게 했던 말이다.  결국 같은 해 11월, 줄리님의 말대로 이루어졌다. 줄리님을 그림일기를 쓰며 알고 지낸 지 3년 차라, 나는 줄리님의 말뜻을 금방 알아들었다. 분명 반드시! 줄리님은 전시회를 열게 될 거라고, 그리고 나 또한 함께 할 것이라고 예감했다.


 그렇게 줄리님과 킨더줄리 내 몇몇 메이트님들과 함께, 가을이 깊어가는 11월에 우리는 소소하게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그림일기로 매일을 꾸준히 기록하는 메이트님들과 그림산책으로 매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시는 메이트님들이 참여하였다. 나는 한번 전시회를 해 본 유경험자로서 스탭으로 함께 하는 영광을 얻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림일기를 800일을 넘게 쓰고 있었기에, 이 참에 그림일기에 대해 돌아보고 싶었던 찰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는 디지털드로잉으로 작품을 전시했었는데 원화 작업으로 전시를 해보는 기회도 얻었다.

 참 신기한 것이 커뮤니티마다 성격이 다 다르다. 어떤 커뮤니티는 너무 뜨거워서 핫한 소통을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떤 커뮤니티는 떠드는 사람만 떠들고 눈팅하는 사람이 많은 곳도 있다. 그렇다면 킨더줄리는? 킨더줄리라는 커뮤니티는 정말 고요하다. 보통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MBTI 중  I가 많다고는 하지만, 다른 그림 그리는 커뮤니티에 가도 이 정도로 고요한 곳이 없을 정도로 고요하다. 그래서 전시회 준비를 할 때에도 보통은 북쩍 북쩍, 그리고 ‘나 이런 전시회 해요’라며 엄청 홍보를 하고 지인들을 초대하고는 한다. 그리고 때로는 시끌벅쩍하게 오픈식을 준비하기도 한다.

 그러나 킨더줄리의 야심 찬 첫 전시회는 아주 조용히 마치 경건하게 이루어졌다. 대부분이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다 보니, 일단 소통하는 시간도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에 집중하다 보니 아마도 카톡을 보는 시간도 쉽지 않았으리라. 돌이켜보면 나도 그랬다. 카톡을 읽었지만 대답할 시간조차 없던, 그런 나날들이 많았다. 그리고 킨더줄리의 커뮤니티 속성 상, 막 나서는 사람들이 없어서 그런지 다들 조용조용하게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 조용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전시회 작품 하나하나가 반짝 반짝 빛이 났고, 기부를 하기 위해 만든 굿즈들 또한 너무나 따뜻하게 느껴졌다. 과연 전시회를 제때 할 수 있을까? 살짝 걱정도 되었었지만, 그 걱정은 기우였다. 비록 많은 소통을 하지는 않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글 그리고 그림으로 기록하고 있었고 전시회장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저 멀리 지방에서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전시회에 참여해 주신 메이트님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또 남편에게 휴가를 부탁하고 아이를 맡기고 오는 메이트님들. 그리고 돌쟁이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이 함께 온 메이트님들. 온라인상에서 닉네임만 자주 보던 메이트님들을 실제로 보니 마치 연예인을 보는 듯한 감동이었다. 아, 이런 그림을 그리신 이유가 있구나. 작가님을 보고 난 후 그림을 보니 마치 그림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생기가 돌았다. 그렇게 멀리서 힘들게 오신 메이트님들의 표정을 보니 너무나 행복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렇게 온라인상으로는 서로 조용하게 지내던 우리인데, 마치 오래전 소꿉친구를 만난 것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던 우리이다. 이렇게 바쁜 일상 속에서 ‘그림’이라는 교집합 하나만으로 이렇게 시간과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했다. 그리고 한번 이렇게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고 나니 우리는 금방 친해졌고 그 후로는 온라인상에서도 예전보다는 더 뜨겁게 소통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우리는 대부분이 소극적이고 부끄럼쟁이들이라 많은 홍보를 하지 못해서 많은 손님들이 오시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의 전시 소식을 접한 분들께서 귀한 발걸음을 해주셨다. 그리고 지나가던 분들께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 덕분에 우리는 약 70만 원의 금액을 청소년을 위해 쓰이는 곳이 기부할 수 있었다. 아직은 그림으로 돈을 많이 벌고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나의 그림으로 굿즈를 만들고 판매를 해 본 이 귀한 경험이 훗날 그림으로 경제적 자유도 얻고 좋은 일에 쓰일 수 있는 날이 모두에게 오리라 믿는다. 왜냐하면 나는 메이트님들의 눈빛에서 그 확신이 들었다. 언젠가 메이트님들은 본인만의 그림으로 이 세상을 따뜻하고 밝게 비춰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성당에서 어린이 교사라는 봉사를 하면서 느낀 것이 ‘내가 무엇인가를 주려고 봉사를 시작했지만, 결국 돌이켜보면 내가 준 것보다 받은 것이 훨씬 더 많다’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번 킨더줄리 전시회 또한 많은 분들이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말씀을 주셨지만, 나는 오히려 더 감사한 시간이었다. 일단 그림일기 책을 만들기 위해 800일간의 그림일기를 다 하나하나 다시 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새삼 놀라웠다. 내가 이랬나? 싶을 정도로 마치 다른 사람의 일기를 훔쳐보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내가 많이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800일의 시간 동안 함께 추억을 쌓아온 메이트님들께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매일 그림일기를 공유하며 메이트님들의 응원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아, 나는 이렇게 애정 어린 관심과 따뜻한 응원이 필요했었구나. 그리고 그 사랑을 받고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을. 비록 나도 아직은 부족한 존재이지만 메이트님들에게 더 마음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도 다른 이에게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면 기꺼이 메이트님께 나누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해졌다.

 내가 자존감이 떨어지고 육아에 치여있을 때,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없었을 때. ‘나’를 만나게 해 주고 ‘나’를 사랑하고 소중히 다루는 방법을 알게 해 준 킨더줄리의 그림일기. 혹시나 나처럼 내 인생에 ‘나’라는 사람이 없다고 느껴지는 분이 계시다면 한번 속는 셈 치고 그림일기를 써 보는 것은 어떨까. 함께 서로의 일상을 응원하고 위로해 주고 아껴주는 메이트님과 함께라면, 내가 걷고자 하는 길이 덜 외로울 것 같다. 이상하리만큼 조용하고 고용한 이곳, 킨더줄리이지만 태양의 온도만큼 아주 뜨거운 열정을 가진 메이트님들과 함께 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