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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Jan 22. 2024

"엄마, 처음으로 이런 점수를 받았어요 “

예비 초6 아들의 첫 레벨테스트

엄마, 처음으로 이런 점수를 받았어요.

 초등학교 6학년을 2달 앞둔 겨울방학. 아들은 처음으로 영어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지금껏 2년 동안 학교에서 하는 영어방과후를 다니고 있었다. 사실 이렇다 할 불만 없이 다니길래, 앞으로 남은 1년도 쭉 학교 영어방과후를 보낼 생각이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수학이 조금 어렵게 느껴졌던지 처음으로 학원이라는 것을 다니게 되었다. 사실 학원이라기보다는 동네에서 그룹으로 수학 과외(라고 쓰고 공부방 느낌)이다. 성격이 워낙 FM이고 스스로 자기 할 일을 잘하는 아이라 그런지, 5학년 되기 전까지는 알아서 스스로 학교 공부를 따라가던 아이였다. 그러다 5학년이 조금 지나니, 자기도 한번 수학 학원을 다녀보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아이의 말을 듣고 몸에 거부반응이 들었다. 나는 학원이라는 곳을, 사교육이라는 것을 최대한 늦게 보내고 싶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는 진지하게 수학을 잘해보고 싶다고 말해서, 어쩔 수 없이 수소문 끝에 소수로 같이 수학 공부를 하는 곳에 보내게 되었다.


 요구 사항이 많은 둘째와 달리, 사고 싶다는 말도 하고 싶다는 말도 잘하지 않는 아들이다. (아, 먹고 싶다는 말은 수도 없이 한다 ㅎㅎㅎ)그래서 그런지, 그러한 아들의 입에서 무언가를 요구할 때는 최대한 들어주는 편이다. 그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혼자 고민했을까. 이러한 아들의 성격을 알기에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할 때, 마음은 거부반응을 일으켰지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사교육으로 얼룩진 나는 아이를 낳으면서 ‘절대 의미 없는 사교육은 시키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아기 때부터 영상은 최대한 늦게 노출시키고, 책 읽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책육아를 하다가 알게 된 유대인의 교육법인 하브루타를 접하면서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또한 남 앞에서 잘 이야기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사교육은 아무래도 일반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배우는 것이라, 아이가 스스로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주체적으로 공부하기 힘들다. 그래서 가능하면 본인이 꼭 배우고 싶을 때, 필요성을 느낄  학원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자라지 못해서일까? 스스로 이 공부가, 이 학원이 나에게 필요하다고 느낀 후 배워야, 더 즐겁게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반드시 우리 아이는 그러길 바랐다.


 결국 나의 바람과는 반대로 동네 영어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몇 군데 있었는데, 아들이 원하는 영어학원이 있었다. 친구들이 많이 다니는 영어학원. 그래, 나도 돌이켜보면 학원에 친구 없이 다녔던 적이었던가. 친구라도 있어야 학원에라도 가고, 가서 이야기하며 쉴 수 있는 친구라도 있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동네의 작은 영어학원이라 생각했는데, 아뿔싸! 그 말로만 듣던 레테(레벨테스트)를 본다고 한다. 그냥 레테를 안 보고 제일 낮은 반을 가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바로 거절당했다. 일단 아이의 실력을 봐야 한다고 한다. 레테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왜냐하면 조카가 대치동에서 매 주말마다 레테를 본다는 이야기,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시험을 치른다는 이야기 등을 들었기 때문이다. 레테라는 것을 쳐 본 적이 없는 아들이 살짝 걱정이 되었다.


 전화를 끊고 아들에게 며칠 후에 레테를 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엄마, 나 시험 치려면 무슨 공부해야 해요?

 대략 난감한 질문이다.

음… 그냥 영어방과후 때 배운 것 복습할까…?

 자신 없는 엄마의 마음을 읽어서일까? 아들은 내키지 않는 듯, 알겠다고 했다.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시험은 50문제로 50분 동안 치른다. 일단 이렇게 많은 문제를 풀어본 적이 없을 것이고 심지어 50분 동안 치러야 한다니…! 나는 예상했다. 분명 30분이면 나올 것이라고. 그리고 20점이라도 받으면 다행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아들을 학원에 보내 놓고 30분이 지난 후 나는 슬금슬금 다시 학원을 찾아갔다.

아니, 어머님 벌써 오셨어요!
아직 20분 더 남았어요.
아, 네… 왠지 곧 나올 것 같아서요.

 하지만 선생님은 극구 부정하시면서 보통 다 1시간 걸린다고 조금 이따 오시라고 나를 돌려보내셨다. 나는 그러나 그 근처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시험이 끝났다며 오시라는 선생님의 전화였다.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원장 선생님과 아들이 마주 앉아 있었다. 아들은 나를 보자 머쓱하며 미소 지었다. 나는 아들의 표정을 보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 레테가 뭐라고! 이렇게 나를 긴장시킨단 말인가!

선생님은 조곤조곤 아들의 점수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셨다. 부족한 파트에 대해 설명을 해 주시고 앞으로 남은 2년이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재차 강조하셨다. 그리고는 설득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운동을 그래도 했던 아이들이 공부를 하더라도 진득하게 잘한다며, 검도를 하니까 공부 습관도 금방 잡힌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약 30분의 상담을 끝내고 함께 학원 문을 나섰다.


엄마, 나 살면서 41점은 처음 받아봐요.

꽤나 충격이었나 보다. 표정이 굳어 있다.


아니야~ 레테라는 것을 처음 봤잖아~
그리고 학원도 안 다녀봤고~
당연한 거지~
40점이면 진짜 잘한 거지!
평균이 60점이라고 하셨잖아!
엄만, 자랑스러운데?

그제야 아들은 마음이 놓이는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정말요?

라고 말했다. 50분이라는 시간제한을 두고 평소에 풀어보지 못한 50문제라는 대량의 시험문제를 긴장하며 풀었을 아들. 나는 정말 자랑스럽다고 칭찬을 해주고 꼭 안아 주었다. 다행히 마음이 풀렸는지, 아들은 집에 와서 아빠에게도 웃으며 자신의 점수를 이야기했다. 나는 믿는다. 아들이 지금은 비록 41점이라는 살면서 받아보지 못한 점수를 받았지만, 본인의 의지로 학원을 다니겠다고 했고 영어 공부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들의 모습을 보며 어렸을 적 나와 또다시 마주한다. 나는 내가 인지하기 전부터 학원이라는 곳에 보내졌고, 왜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른 체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내가 왜 공부해야 하는지? 왜 이 공부가 나에게 필요한지? 정도는 알고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은 적어도 자기가 왜 영어 공부를 해야 하고, 수학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고는 한다. (물론 그게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나의 예상대로 제일 낮은 반으로 배정받은 아들은 이제 주 3일 2시간씩 영어 학원에 다닌다. 아니 무슨 주 3일이나 가지? 2시간이나 어떻게 공부해? 처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고학년이면 이 정도는 당연했다. 사실 더 하면 더 했지. 이놈의 영어학원 덕분에 모든 시간표가 다 어그러졌다. 그 좋아하던 검도도 하루를 빼야 하고, 고전 독서모임도 현재 보류 상태이다. 무엇이 맞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독서모임을 포기하면서까지 영어학원에 다녀야 하나? 솔직한 내 심정은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원하니까 잠시 마음을 접어두려고 한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아들을 믿고 응원하는 수밖에.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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