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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 Aug 10. 2023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기까지

대학 시절에 대한 편지, 유희

  어제는 아이와 놀이 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아이에게 달콤한 솜사탕을 사주고, 나란히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설레는 얼굴로 아이와 함께 나온 다른 가족들도 많았고요. 사람들 속에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아이는 신나서 멀리까지 뛰어갔다가 저에게 달려옵니다. 아이의 종착지가 꼭 저인 것 것처럼, 잠시 떨어졌다가 붙는 자석처럼 저에게 안깁니다. 조금의 의심도 없는 사랑입니다. 그럴 때 저의 기분은 부풀어 오른 따듯한 빵 같습니다. 제 감정은 따듯한 온기로 가득하지요. 아이를 낳고 어제 느꼈던 감정을 저는 자주 느낍니다. 감정을 단어로 말하자면 ‘행복’입니다. 그동안 느꼈던 감정과 다른 차원이 높은 행복이랄까요. 아이를 키우는 일이 버겁고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작은 아이를 품 안에 안을 때의 감정은 다른 행복한 감정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제가 아이와 함께하며 느끼는 행복은 20대 초반의 행복과는 다른 감정입니다. 배움에서 오는 행복,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느끼던 행복을 20대 초반에 느꼈었지요. 학교에 가기 위해 작은 언덕길을 걸었을 때, 동경하는 교수님이 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 등록금을 마련했을 때, 학우들이 제 글을 보고 좋다고 계속 쓰라고 말해줬을 때. 학교 도서관 의자에 앉아 햇빛을 받으며 좋아하는 책을 읽었을 때, 도서관이 문을 닫을 때까지 앉아 있다가 실용음악과 학생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도서관을 나왔을 때,  좋아하는 교수님의 나긋나긋한 음성을 들으며 함께 소설 이야기를 했을 때.

  떠올려보면 그립고 행복한 기억들이 도처에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이경 씨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면 살면서 몇 번이나 떠올렸을까 하는 기억입니다.      


  20대 초반. 서툴고 미련해서 눈앞에 닥친 일을 해결하기에도 미숙한 나이였습니다. 그때도 어린 시절과 마찬가지로 가족이라는 존재는 제게 늘 고통이었지만 그나마 학교에서는 제대로 숨을 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나오면 물기가 말라 죽음을 앞에 둔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다가 학교에 오면 묶어 놓은 숨을 풀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 쯤 외로움과 죽음의 감정도 함께 자주 느꼈던 것을 보면 여러 감정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상태로 지냈던 것 같습니다. 종교 생활도 열심히 했지만 울부짖는 기도 끝에 저에게 남는 감정은 허무였습니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과 옥죄어 오는 가족과 관련된 일들이 20대 초반 어린 저에게 폭력과 같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서툴고 미련해서 예쁜 나이었습니다. 그때는 제 모습이 예뻤는지 어땠는지 모른 채 제 안만 들여다보기 바빴습니다. 물론 외형적으로 꾸미는 일에 부지런히 움직이기는 했지만 덜 자란 아이가 어른인 척 흉내를 내고 다녔습니다. 왜 그렇게 그때는 진지했는지 지금 떠올리면 웃음이 납니다. 여러 감정이 뒤섞인 채로 살아봤기에 지금을 잘 견디며 지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후에도 삶을 포기하고 싶어질 정도로 힘든 일을 마주했지만, 끝내 제가 살아있음을 선택한 것은 그때의 감정을 잘 겪어내고 성장한 덕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성경 구절처럼 모든 일과 감정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에 들어가니까요.      

 

  아이는 당연하게도 자라고 있고 제 감정은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몇 번이나 또 바뀌겠지요. 많은 감정을 겪어낸 만큼 저도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갈 테고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두려울 때도 많지만 다행인 것은 그 감정을 넓혀가며 제 삶을 바라볼 수 있는 태도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서툴고 미련하지만 조금은 의연하게 앞으로의 일들을 처리할 수 있겠단 확신이 생깁니다.

  이경 씨, 우리는 어쨌든 계속 살아가고 살아내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지나갈지 모르지만 많은 일들을 겪어내면 우리 안엔 무수한 단어와 화려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감정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 과정 속에 우리가 단단하고 의연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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