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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랜드 Jun 30. 2021

유치원 안 갈래요

진실 혹은 거짓

5살, 유치원이라는 새로운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도 벌써 4개월이 되었다. 한 달 뒤면 벌써 첫 번째 방학을 하게 될 아이가 요즘 부쩍 잘 다니는 줄만 알았던 유치원을 가지 않겠다고 한다.

 말을 들은 부모라면 100이면 100, 모두 철렁할 것이다. 유치원에서 무슨 문제라도 있는  아닌가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있지도 않은 일들을 기정 사실화하기 마련.


'누가 괴롭히는 친구가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선생님이....?'


혼자서 추리소설 한 편을 써 내려가자니 범죄 스릴러가 되기도, 판타지가 되기도 한다.

이게 바로 사서 걱정하는 모먼트.


고개를 절레절레, 아이에게 찬찬히 되묻는다. 유치원이 가고 싶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표정에서부터 너무 아무 이유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감출 수 없다. 오늘도 장장 1시간여를 살펴보고 물어보고 다독이며 겨우겨우 등원 길을 나선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현관문을 닫는 순간, 목소리는 커지고 씽씽카를 탄 아이는 저만치 가고 이미 없다. 갑자기 밀려오는 배신감에 뒤통수를 턱 하니 맞은 듯하다가도, 걱정과 긴장감으로 뒤덮였던 신성한 아침시간이 모래알처럼 스르륵 날아가버리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집을 그렇게 좋아하는 성향도 아니다. 하원 하면 곧장 집으로 들어온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이대로 이유를 모르고 답답하게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니, 기분 좋은 등원 길에 다시 한번 물어봤다. 여전히 아무 이유가 없다.


아, 답답해.


이유 모를 아이의 행동에 대해선 정말 두고두고 답답할 일인데, 한동안은 이 미제 사건으로 골머리를 썩힐 것 같아 벌써 지끈지끈해온다.


그래도 스스로 내려본 소소한 결론이 하나 있다.

여름의 아침은 후덥지근하니 불쾌지수도 올라가고 지쳐서 그렇지 않을까라는 결론.

배는 고프지만 입맛이 없어 밥은 먹기 싫고, 그럼 초를 다투며 예민해지게 되니 말이다.


내일은 우리 따님 기침하시기 전, 미리 에어컨을 틀어두고 뽀송뽀송하게 만들어 드려볼까 한다.

스스로 기발하다 생각하는 나의 묘책이 꼭 통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말이다.


아, 덧붙이자면. 아이들이 유치원을 가지 않겠다 말하는 데는 생각보다 그렇게 큰 특별한 이유가 없다.


엄마랑 놀고 싶어서. 졸려서. 집에 있고 싶어서. 그냥(진짜 순수하게 그냥).


아이들 일 앞에서는 세상 여려지는 부모님 모두가 지레 겁먹으며 아이에게 다그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이것만은 진실임에 분명하다. 아이들 한마디에 쉽게 감정을 쏟아내 속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이다. 솔직히 알아도 매번 그러기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아이들과의 스무고개 같은 진실게임 미로 속에서 꿋꿋이 버텨낼 수 있는 강단 있는 엄마로 거듭나길 바라며. 일단은 나부터.


그리고, 내일 아침은 야심 차게 에어컨부터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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