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교화 사이의 어딘가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그것은 불멍도 물멍도 아닌 세탁멍. 그렇다. 말 그대로 세탁기를 보며 멍때리는 것이다.
단 이건 드럼 세탁기만 가능하다. 포인트는 세탁물의 양이 적을 것. 티셔츠 4~5장 정도가 적당하다. 요즘 나는 향기나는 캡슐 세제에도 빠져있다. 그 날 기분에 맞는 향기 캡슐 세제를 하나 넣고 티셔츠들을 넣은 다음(하얀색이면 더더욱 좋다) 알뜰 삶음 모드를 시작한다.
위-잉
세탁조가 몇번 공회전을 하며 티셔츠들의 무게를 잰다. 이윽고 쏴-아 세탁물들의 무게에 맞는 물이 채워지고 세탁을 시작한다. 이때부터가 세탁멍의 시작이다.
철-썩 철-썩.
세탁조가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요리조리 돌며 티셔츠들을 바닥으로 패대기친다. 30센티도 되지 않는 높이지만 바닥으로 내패대기쳐지는 티셔츠들의 소리가 나름 찰지다. 척-! 척-! 너가 이래도 깨끗해지지 않겠냐는 일종의 고문인 셈이다. 뭐랄까 폭력과 교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장면같다고나 할까.
서서히 누런 때가 옅어지는 티셔츠를 보는 것도 통쾌하다. 챡챡챡챡 세탁기 창에 맞아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는 흡사 동해 바다의 파도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