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년생 식물
지난 주말, 오랜만에 영화관 나들이를 했다. 선택한 영화는 ‘꽃다발같은 사랑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뭐야, 그런 영화도 있었어?’라고 할 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다. 무려 3년 전에 개봉한 일본 영화인데 나도 이런 영화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가 최근 우연히 유튜브에서 20분짜리 짧은 소개 영상을 보고 영화 전체가 보고 싶어졌다. 마침 재개봉했다길래 바로 티켓을 예매.
영화 자체도 흥미로워 보였지만 무엇보다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의 작품이라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사카모토 유지는 지금 일본에서 가장 핫한 각본가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마더, 최고의 이혼 등을 쓴 작가다.
암튼 한국어 자막만 있는 일본 영화기에 남편에게 같이 가자 말하진 못했는데, 선뜻 남편이 자신도 같이 가겠다고 하는 것 아닌가. 사실 이 영화가 메이저 영화가 아니다 보니 내가 예매할 시점에 극장 예매 관객이 나를 포함해 3명밖에 안됐는데 혼자 보기 조금 무섭다고 하니 같이 가준다는 거였다. 아무리 그래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화를 본다는건 고역일텐데 한국어 자막만 보면서 이해하기 어렵지 않겠느냐 물으니, 자기는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를 들으며 무슨 장면인지 상상하는 것도 좋아하니까 괜찮단다. 역시 내가 남편 하난 잘 골랐다. 그렇게 남편과 함께 오랜만에 영화관 나들이를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살짝 지루한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좋았다. 남편이 영화를 거의 다 이해했을 만큼 쉽고 담백했다. 한가지 특이사항은 영화를 보는 내내 첫사랑이 떠올랐다는 것? ㅎㅎㅎ 남편 손을 꼭 잡고 전남친을 생각했다니 발칙하기 짝이 없다(뭐 남편도 본인 첫사랑을 생각했었을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런 풋풋한 꽃다발같은 사랑은 20대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니까. 연애는 누구와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 하느냐도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스포일러가 되므로 말할 순 없지만 영화의 디테일 하나하나가 첫사랑의 그것을 너무도 잘 표현한다. 조건을 따지고 이리저리 재가며 시작하는 속물같은 사랑과는 달리, 다소 서툴지만 서로의 취향을 하나하나 알아가며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본인의 반쪽을 만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는 20대의 첫사랑. 그렇기에 더 설레지만 또 더 실망하지. 만약 내가 가진 지금 이 마음으로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더 편안하게 포용력있는 연애를 할 수 있을텐데.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20대 때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예전에 남편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만약 우리가 20대 때 만났으면 십중팔구 빨리 헤어졌을 거라고. 자기는 20대 때 너무 찌질했다나. 맞다. 20대 때의 나는 분명 이 사람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헤어졌을 것이다. 그럼 얼마나 슬펐을까. 나는 우리가 늦게 만난 것이 너무 다행스럽다. 꽃다발이 아닌 화분에 심은 다년생 식물같은 우리라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