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라고 믿었던 말이 부담이 될 때
회사에서 퇴직한 후 얼마 안 되어서였다. 퇴직자 모임에서 알려드릴 소식이 있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어르신들께서는..."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말이 튀어나왔다.
"아유, 어르신이 뭐야. 어르신이."
"어르신 하면 너무 나이 들어 보여."
"우리가 무슨 어르신."
웃음 섞인 말들이었지만, 내 말은 그 자리에서 멈췄다. 어쩔 줄 몰라 잠깐 그냥 서서 듣기만 했다. 존중의 뜻으로 꺼낸 말이었는데, 상대에게는 '나이 듦'을 확인시키는 말처럼 들리지 않았을까.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배려라고 믿었던 말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일 수 있다는 것을. 특히 여성 선배들은 그 말을 더 싫어했다. 대접받기 싫어서가 아니라, 나이 들었다는 사실로 분류되는 것이 싫다는 눈치였다.
그날 이후, ‘어르신’이라는 말이 귀에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요즘의 어르신은 존경의 말이기보다, 보살펴야 할 존재라는 뉘앙스를 함께 지니고 있다.
나 역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경로석'이란 글자가 보이면 가까이 가기가 주춤해진다. '경로'란 노인을 높이 받든다는 의미이지만, 보호받아야 할 약자의 인상을 주는 말이다. 앉아도 되는 자리인데도, 괜히 주변을 한 번 더 살피게 된다.
나이 들어가며, 나이에 대한 내 생각이 이렇게 하나씩 깨져 나갔다. 나이 듦을 내세우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고,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배려받는 자리에 서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젊을 때는 미처 몰랐던 것들이다.
젊어서 일할 때는 '나이 든 선배들은 잘 알고 하시겠지'라고 생각했다. 선배가 되고 나이 들어 보니 여전히 모르는 게 남았다. 다만 아닌 척하고 넘기기도 했다.
라디오 PD 할 때였다. 아나운서 출신의 노련한 진행자와 일했다. 그분 말솜씨는 언제나 매끄러웠다. 그분이 한 말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방송에서는 모든 걸 다루지만, 사실 나는 모든 걸 알지는 못해요. 하지만 모르는 티를 안 내고 넘기게 말하는 방법은 알지요."
KBS와 MBC라디오 메인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황인용 전 아나운서의 말이다. 나이 들수록 말을 더 잘하게 되는 것보다 모르는 것을 감추는 기술아 늘기도 한다
나이 들었다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렇게 말할 줄 아는 분도 꽤 된다. 한때, 나는 나이 많은 분들은 고인 물처럼 완고하고 더는 배우지 않는 줄 안 적도 있었다. 배우고 난 뒤에 남은 생이 얼마 남아 있지 않기에, 배움을 멈추는 줄 알았다.
지난 2월 26일 모길연 할머니가 경희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으셨다. 68년에 입학했으나 가정 사정으로 멈추었다가 58년 만인 83세에 뜻을 이루었다. 경희대 최고령 석사로 소개되었고, 일부 보도에서는 우리나라 최고령 석사 취득 사례로 전했다. 내 주변에도 일흔 넘어 박사과정에 들어간 분이 있다. 배워서 뭘 하겠다는 것보다, 배움 그 자체를 즐기는 모습 같다. 인생의 봄이나 초여름에 공부하면 좋겠지만, 겨울에 배운다고 그 즐거움이 덜하진 않을 거다.
배우지 않고, 고여 있느냐 아니냐는 나이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성향 차이 때문이 아닐까. 젊어도 배우지 않으려는 이도 있다. 나이 들어 배우는 맛은 젊을 때와 다르다. 밥맛이 나이에 따라 달라지듯, 배움의 맛도 그렇다.
나이 들어 보니, 내가 늙음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은 꽤 허물어졌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허물어놓은 그 자리에, 나는 또 다른 편견을 세우고 있지는 않을까. 나이를 이해하게 됐다는 이유로, 젊음을 다시 단순하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나이 들수록 나이 듦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이 듦은 완성이 아니라, 그저 고쳐가는 과정일 뿐이다.
김승월의 브런치북에서는 '겪고 나니 보이는 이야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들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