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쉽게 편견을 믿을까

내 마음속에 개 두 마리

by 김승월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두 마리의 개를 키웁니다."

어느 선배에게서 들은 말인데, 이어령 교수의 비유라고 한다. 두 마리의 개는 편견偏見 과 선입견先入見이다. 물론 '개 견'犬 의 견자는 아니고 '볼 견'見 자다. 동음이의어 同音異義語를 끌어 쓴 그분다운 비유다


"오른손잡이가 정상이고, 왼손잡이를 비정상으로 생각하는 거도 편견이잖아. 영어로 오른쪽은 '옳다'의 의미가 있는 right'이고. 우리말의 '오른'도 '옳다'는 뜻이고."

내 글의 독자인 그 선배는 편견과 선입견의 예를 들면서 브런치 글로 써보면 어떻냐고 권했다.


이어령 교수 말씀에서 '개'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엿보인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못된 사람이나 경우를 '개 같다'라고 했다. 하지만, 키워보면 안다. 개는 영원히 같이 살고 싶은 반려동물이다. 편견의 '견 見'을 '개 견犬'으로 겹쳐 읽게 만드는 이 비유에도,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나 역시 개와 개 키우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그렇게 개를 애지중지하면서 보살피려면 불쌍한 사람이나 돌보라고 말했었다. 그러다 키우고 보니 개처럼 좋은 반려동물은 없는듯하다. 이제는 개 키우는 사람은 정이 있어 보이고, 개 싫어하는 사람은 인간미 없어 보인다. 이 생각 역시 또 다른 편견이 아닐까.


편견과 선입견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선입견이 알아보기 전에 먼저 생긴 생각이라면, 편견은 그 생각에 치우쳐 굳어진 판단이다. 선입견이 씨앗이라면, 편견은 열매와도 같다.


내가 겪은 선입견과 편견의 첫 기억은 지역이었다. 부모는 평안남도 출신이다. 한국전쟁 때, 월남해 내려왔다. 누군가 내 앞에서 그리 말했다.

“아휴, 저러니까 삼팔 따라지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말끝에 서린 냉기가 또렷이 느껴졌다.


우리 집안은 월남 후 어렵게 자리 잡았다가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렸다. 그 일 이후, 부모님 마음에는 하나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필 그 사기꾼이 호남 출신이었다.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공기처럼 감도는 기류가 있었다. 나는 그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살다 보니, 우리 집안에서 맞아드린 분들은 대부분 호남 출신이었다. 장인도, 매제도, 동서도, 사위도 그랬다. 명절에 둘러앉아 웃고 떠들다 보면 문득 생각이 스친다. ‘나는 대체 무엇을 그렇게 오래 붙들고 있었을까.’ 그분들도 그냥 사람이었다. 정 많고, 속 깊고, 때로는 나보다 더 넉넉했다.


서울과 지방에 대한 편견도 비슷했다. 어느 집안 이야기다. 아들이 포항공대와 서울에 있는 명문 사립대에 동시 합격했다. 부모가 포항공대를 지방대로 여겼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도록 권했다. 자식은 부모의 뜻에 마음이 기울었다. 졸업하고 나니 그 결정에 아쉬움이 남았다. 편견이 앞길을 틀어버린 셈이다.


나는 서울과 수도권의 부동산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서울 변두리 주택을 구입하고, 수도권 집은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 내게는 무조건 서울 부동산이어야만 했다. 청약통장으로 신청하다 보니, 서울에서는 내리 떨어져, 1기 신도시 평촌에 분양받았다. 경기도 평촌이 내가 살았던 서울 변두리보다 집값이 훨씬 높았다. 선입견과 편견이 재산형성에 장애가 되었다. 일찍 수도권에 괜찮은 지역을 주목했더라면 지금의 내 부동산 사정은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쉽게 믿게 되는 게 편견 아닐까.

겪어보니 알게 되었다. 겪기 전에는 몰랐던 것을.


편견은 가질수록 손해다. 오늘 나는 마음속 개집 문을 연다. 짖어대던 두 마리의 개, 편견과 선입견을 가만히 내보낸다. 그 빈자리에 '경험'이라는 새 손님을 불러들인다.

lamsong4141-yx6-oS9EXeQ-unsplash.jpg By 林生 黄 on Unsplash

브런치북 <세월 가니 보이네> 27화였습니다.

다음 주에는 왜 직업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지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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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월의 브런치북에서는 '겪고 나니 보이는 이야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들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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