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대한 편견
"네가 어떻게 라디오 PD 하냐?"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동창생 중 더러는 내가 PD 한다는 말에 반신반의하고 되묻곤 했다. 그 말에는 늘 생략된 말이 하나 있다.
"너처럼 조용한 애가?"
나 역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괜히 움츠려 들었다. 모범생 소릴 듣던 내가 분방할 것 같은 PD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나 스스로도 생각했기 때문이다. 방송사 PD 하면 흔히 연예인 같은 '끼'를 떠올린다. 연예 프로그램 PD 들 중 더러는 스스로를 '딴따라 PD'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PD는 끼가 있어야 해'라고 힘주어 말한다. 노래도 못하고 춤은 더 못 추는 나는 그 말에 오그라 들곤 했다.
라디오 PD는 온갖 프로그램을 두루두루해야 하니까, 연예 프로그램도 반드시 하게 된다. 그런 때면,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도 나는 연예 오락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내가 만든 오락프로그램이 재미없다는 말은 듣지 않았다. 물론 뛰어난 진행자와 든든한 스태프들이 받쳐주어서지만.
언젠가 방송사 견학 온 사람들 앞에서 한 동료가 나를 가리키며 한 말이 있다.
"저분이, 저렇게 보이지만 <배배 삼국지> 연출하는 분이에요."
배배 삼국지는 배한성, 배칠수가 해설하는 만화 같은 라디오 드라마였다. 진지하게 생긴 저 사람이 그런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말이었다. 사람들의 표정엔 이런 질문이 떠 있지 않았을까.
"저 사람이요?"
방송사 안을 둘러보면 알게 된다. 아이디어가 번쩍번쩍 튀어나오고, 인기 예능 프로그램을 잘 만드는 연예인 분위기의 PD가 있다. 그러나 진지하게 파고드는 PD도 적지 않다.
직업인에 대한 이미지는 대개 실제 하는 일과는 다르다. 개그맨이나 코미디언도 그렇다. 함께 일했던 잘 나가던 개그맨이나 코미디언 중에는 스스로 내성적이라고 말한 분도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내성적이었다. 사석에서는 사람을 가리고, 불편한 데서는 입도 떼지 않았다. 마이크 앞에 서면 완전히 달라졌다. 말해야 할 자리에서는 재능을 발휘해 펄펄 날았다. 흥이 오르면 방송말로 '작두도 탔다'.
직업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맞지 않기도 했다. 그로부터 자라난 편견은 더욱 그렇다.
겪어봐야 안다. 겪어보지 않고 단정하면 틀리기 쉽다.
돌이켜보면 '끼'라는 말을 내가 너무 좁게 해석 헸단 것 같다. 끼란 신명 나게 흥에 겨워 한곳에 집중하는 힘, 정신이 팔릴 만큼 몰입하는 태도 아닐까. 일이 좋아서 열심히 하는 것도 끼 아닐까.
김승월의 브런치북에서는 '겪고 나서 깨달은 이야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들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