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일을 한다고 거친 사람일까
"돼지 잡으러 간다."
어디 가냐고 물었더니 그리 답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닌 동창생이었다. 말수가 적고 무척 순하던 친구였다. 오랜만에 고향 마을에서 그를 만났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봤나 보다. 그가 말했다.
"가서 볼래?"
동네 밖 언덕에 도살장이 있었다. 콘크르트 바닥, 십자 모양의 도랑 위에서 친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돼지 한 마리를 잡았다. 십자 도랑으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비릿한 냄새가 가득 찼다.
어릴 적부터 '백정'이란 직업에 대한 막연한 무서움이 있었다. 학교에서 그 직업이 특정 계층에 속했다는 것을 배우면서 그 생각은 더 굳어졌다. 거친 일을 하는 분들에 대해 고마워하면서도, 웬만한 마음이 아니면 그런 일 하지 않는 줄로만 알았다.
순했던 그 찬구는 여전히 순하게 살고 있었다. 그저, 그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일 하는 분이 어찌 따로 있을까. 해야 되면 누구라도 그런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소설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이 있다. 미국 작가 로버트 뉴턴 펙의 자전적 소설로 아버지 이야기를 담았다. 아버지는 글자도 깨우치지 못한 분으로, 솜씨 좋은 돼지 도살꾼으로 살았다. 아버지 손에서는 늘 냄새가 났다. 돼지 잡은 냄새로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퀴퀴한 냄새였다. 어머니는 성실한 노동의 냄새라 부르며 아버지에게 늘 감사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는 순수했다. 작가인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감사가 군데군데 드러났다.
직업에 따라 사람이 달리 보인다. 직업의 특성 그대로 그 사람의 성격이나 인품을 짐작하기 쉽다. 나 역시 그런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서울 독산동 축산물 시장에 갔던 일이 떠오른다. 소, 돼지고기와 부산물을 파는 시장이었다. 개 먹이로 소의 염통을 사러 갔다. 어디서 파는지 몰라 멈칫하며 상인들에게 물었다. 하나같이 친절했다. 다른 시장들을 꽤 다녀봤는데, 물어본 다고 다른 가게를 친절하게 일러준 상인이 거의 없었다. 시장 상인은 으레 그러려니 하는 선입견을 갖던 내게 의외였다. 붉은 조명아래 붉은 살코기를 잘라 파는 그분들이 내가 다녀본 시장의 상인 중 가장 친절했다.
거친 일을 한다고 거친 사람은 아니다. 겪어보지 않으면 직업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기 쉽다.
직업에 대한 선입견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로부터 자라난 편견은 더욱 뒤틀려 있기 마련이다.
거친 것은 일이지, 사람이 아니다.
김승월의 브런치북에서는 '겪고 나니 보이는 이야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들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