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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월 Mar 23. 2024

때로는 소음도 필요하다

소음의 순기능

“지방방송 꺼주세요.” 한동안 흔히 했던 말이다. 큰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집중하지 않고 끼리끼리 잡담하면 진행자가 그리 주의 주었다. (무심코 지나 칠 이 말은, 지방을 차별하는 느낌이 든다. 지방 소재지 방송사에서 일하는 분들이 마음 상해할 표현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에는 잘 쓰지 않는다.) 비슷한 말로는 “잡음 넣지 마세요.”가 있다. 중요한 이야기 하는데, 주의를 분산시키는 말이 나오면, 그리 지적한다. '잡음'이나 '지방방송'은 메시지 전달을 방해한다. 커뮤니케이션 소통 모델에서는 이를 소음(noise)이라고 부른다. 

라디오 프로그램 만들 때 소음 들어가지 않도록 애쓴다. 야외 녹음할 때 특히 그렇다. 불필요한 소음 찾아내려고 눈감고 헤드폰 쓰고 마이크로 들어오는 소리에 집중한다. 미처 깨닫지 못한 먼 데서 떠드는 소리, 냉장고 소리, 수족관 물방울 소리, 형광등 소리, 제법 많은 소음을 찾아낸다. 소음은 청취자가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 다른 소리로 오해해서 의미가 잘못 전달될 수도 있다. 해서 냉장고 전원을 빼거나, 형광등을 꺼서 소음을 줄인다.


소음에 민감한 사운드 엔지니어는 더 엄격하게 요구한다. 움직이면 옷자락 소리가 녹음에 들어간다면서, 인터뷰하는 사람 자세도 바꾸지 못하게 한다. 이리되면, 인터뷰하는 사람은 긴장해서 몸이 뻣뻣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녹음한 소리는 물리적으로는 깨끗하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불편한 느낌을 준다. 청취자 입장에서 소음이 없는 경직된 소리가 좋을지, 소음은 들어가지만, 마음 편한 소리가 좋을지는 생각해 볼일이다. 라디오 PD는 그 사이에서 선택하게 된다.

빙렬(氷裂)

음향만으로 구성한 라디오 음향 다큐멘터리 만드느라고, 도자기 소리를 녹음한 적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자기 소리를 찾았더니, 도자기 '빙렬' (氷裂) 소리란다. 도자기에 바른 유약이 온도가 높았다가, 식으면서 수축되는 속도와, 도자기 만드는 흙, 태토(胎土)가 식으면서 수축되는 속도가 다르다. 유약 바른 표면이 태토보다 빠르게 식으면서, 도자기 표면은 미세하게 터지고 갈라지면서 실금이 생기게 된다. 실금이 생길 때, 얼음장이 깨지는 소리가 난다. 빙렬 (氷裂) 소리다. 청자 표면의 무수한 실금은 그리 생긴다.


빙렬소리는 영롱하다. 가마에서 뜨겁게 달구어진 수십 개의 도자기들이 식으면서 잇달아 내는 빙렬소리를 듣다 보면, 핸드벨, 실로폰 합주 듣는듯한 환상에 빠진다. 도자기가 내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고 할 만하다. 빙렬소리를 녹음했다. 녹음하고 방송사에 돌아와 다시 들어보니 형광등 소리와 먼 곳에서 차 지나가는 소리가 깔려 있었다. 빙렬소리에 취해 흥분하다 보니 그만 소음 차단을 깜빡했다. 


편집과정에서 큰 소음은 잘라내고, 작은 소음만 남겼는데도, 소음이 거슬렸다. 소음 줄이는 소프트웨어, 노이즈리덕션 (noise reduction)을 사용했다. 거슬렸던 소음은 확실하게 줄었는데, 빙렬 소리가 같이 뭉툭해졌다. 밉다고 생각할수록 더 미워지는 법이다 들을수록 소음이 귀에 거슬려서, 노이즈 제거한 소리로 방송했다. 훗날.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뭉툭해진 빙렬소리가 너무 거슬렸다. 들어 볼수록 소음보다, 소리가 뭉툭해진 게 더 걸렸다. 소음이 있더라도,  선명한 빙렬소리를 방송할 걸 그랬나 보다. 


10여 년 전쯤이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야외 음악회 갔다. 별이 쏟아지는 여름밤, 고풍스러운 성채 마당에서 음악회를 연다니까 기대가 부풀었다. 공연하는 마당에는 굵은 모래가 살짝 깔려 있었다.  발을 옮기면 ‘자격자걱’ 발자국 소리가 났고, 의자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대로 ‘찌익’ 모래알 으스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낮이면 안 들렸겠지만, 밤이라 유난스레 크게 들렸다. 관객들은 돌부처처럼 앉아 있는데,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갑갑했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음악소리가 낮아지기라도 하면, 내 움직이는 소리가 울릴까 봐 바짝 긴장했다. 숨 막혔다. 소음에 너무 신경 쓰다 보니 2시간의 공연은 2시간의 고문이었다.  


소음이 필요한 곳도 있다. 예민한 분들이라면 화장실에서 큰 일 볼 때, 볼 일 보는 소리만 들리면  몸이 오그라들게다. 이런 때는 자신이 내는 소리를 가릴 소음이 필요하다. 여성용 화장실에는 물소리 내는 음향기기가 설치되기도 한다. 여의도 고수부지 화장실 들른 적이 있다. 클래식 연주가 나왔다. 우아했다. 외국 화장실 갈 때마다 느끼는데, 대한민국 화장실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익숙한 소음은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해서 ‘공간음’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영국의 소리 사업가 줄리안 트레저(Julian Treasurer)는 공항 대기실, 호텔로비와 같은 장소에 어울리는 공간음을 만들어 판다. 새소리, 파도소리 같은 자연음향과 음악을 적절하게 섞은 소리다.


“방송음악에는 좋은 음악, 나쁜 음악이란 게 없어요, 어디다 쓰느냐 차이 일 뿐입니다.” 방송음악을 40년 넘게 한 방송음악 전문가 이춘화 씨. 어떤 음악이 방송에 좋으냐고 물었더니 그리 답했다. 잡음도 마찬 기지다. 잡음이 좋으냐 나쁘냐  보다는  잡음이라도 어떻게 쓰느냐를 생각해 볼일이다. 


높은 분이 한 말씀하는데, 뒤에서 뭐라고 하면, 궁시랑 대지 말라고 한마디 듣는다. 토를 달면 말대답질한다고 면박당한다. 불협화음 없이 모든 걸 해내길 기대한다면, 독재자 아닐까. 함께 사는 세상이다. 때로는 잡음도, 소음도, 받아들일 마음이 필요하다. 사랑으로 본다면, 우주에서 쓸모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 그대로다.

Sometimes noise is necessary Chat GP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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