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월 Mar 28. 2024

미움을 버려야 소통이 된다

겸손한 소통

“시험점수 잘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요?”

몇 해전,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취업하기 힘들다보니 성적에 목맨다. 평가 결과를 알려주고 나면, 난감한 질문이나 부탁도 받는다. 어느 부분이 틀렸는지, 백분율 석차로는 어느 정도가 되는지 묻거나. 드물게는 평가 결과보다 나은 점수를 사정하는 경우도 있다. 기숙사 들어가는데 평점이 낮아서 어렵다든가, 장학금이 필요해서 조금 더 높은 점수가 필요하다고 간청한다. 심지어 울면서 애절하게 부탁한 경우도 있었다.  사정이야 딱하지만, 상대평가다 보니 내 재량으로 성적을 올려줄 수는 없다. 학생들이 성적에 매달리다 보니, 성적 올리는 방법을 궁리해봤다. 


“시험점수를 잘 받으려면 저를 좋아해야 해요.” 낮 간지러운 소리를 했다. 몇몇 학생들이 피식 웃었다.  지난 중간시험 결과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학기마다 학생들에게서 자기를 소개하고 수업에 바라는 점을 쓰는 자기소개서를 받았다. 더러는 소개서에, 수강 기회 갖게 됨을 감사하거나, 존경을 표시한다. 그런 학생들 성적이 상대적으로 좋았다. 


나 역시 좋아하는 교수님 과목 점수가 잘 나왔던 거 같다. 선생님이 좋으면 자연스럽게 집중해 듣게 되고 선생님 입장에서 이해하게 된다. 선생님이 불편하면, 설명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비판적으로 듣다가 성적이 그르친 적도 있다. 그래서 학생들이 너그럽게 나를 좋게 보아준다면, 수업이 즐거울 것이며 성적도 잘 나올 거라고 했다. 가르치는 나 또한 학생들을 좋아하면, 수업에 정성을 더 기울이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소통은 편하고 즐겁다. 이해가 안 되면 이해하려고 애써 준다. 상대가 도저히 알아듣지 못하면, 웃어 넘겨줄 수도 있다. 싫어하는 사람과의 소통은 반대다. 싫어하는 사람의 말을 곧이 곧 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옳은지, 그른지 따져본다. 심지어 틀린 부분을 애써 찾아내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상대도 눈치채서 날카롭게 맞서게 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 중에 상당수는 싫어하는 사람일 게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은 소통에서 소음과 같다. 남과 대화할 때 소음이 들리면, 소통하기가 힘들다. 말하기도 쉽지 않고, 듣기도 어렵다.  상대에 대한 마음이 닫혀 있으니 말이 들리지 않는다. 말하는 의도마저도 잘못 생각하기 쉽다.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내 마음도 상대에게 전하기 힘들다. 


나 역시 좋아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 미운 마음이 들면 어쩌지 못하고 쩔쩔매기도 한다. 분명한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딱히 그 이유를 찾아내기 힘든 경우도 있다. 좋다가 미워할 수도 있고 미워했다가 좋아지기도 한다. 상대가 미워지면 내 마음이 시달린다. 미움을 풀려고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어떤 분은 미움은 자기 마음에서 생긴 거니까, 미움을 내려놓으면 된다고 조언한다.  옳은 말이지만 그게 어디 생각대로 되는가.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약자는 미워하는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도 못한다. 집안 어른에 대한 미움,  상사에 대한 증오, 권력자에 대한 분노가 그렇다. 상대가 강하면, 앞에서는 감추고 뒤에서 푸념하거나 험담하게 된다. 미움은 감추기 힘들다.  "미움을 기만으로 덮는다 해도 그 악의는 회중에게 드러 나고야 만다."잠언 26:26) 

미움은 마음의 감옥입니다 Chat GPT Image

“미움은 마음의 감옥입니다.” 본당 신부님 강론에서 들었다. 미움을 어쩌지 못하고 되새기다 보면 헤어 나오지 못하고 갇혀버린다. 미움이 쌓이면 둑이 무너지듯 분노가 폭발하고, 후회할 일을 저지르게 된다. 수습하는데 값비싼 대가른 치른다. 이탈리아 격언 그대로다. “분노는 대단히 비싼 사치다.” 자신을 해치고 관계를 그르친다. 신부님은 덧붙였다. “미움의 감옥에서 나오려면 ‘겸손’ 해져야 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리치 니카스트로 Rich NIkastro는 수많은 부부를 상담한 뒤 결과를 분석했다. 서로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했는데, 겸손을 실천하게 한 경우에 감정이입이 더 잘 됨을 알게 되었다. 겸손해야만 상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미움에 시달린다면, 겸손하게 자신의 허물을 먼저 살펴야 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마: 7:12) 성경의 황금률이다. 


소통이란 결국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좋아하면 소통이 잘되고 미워하면 불통이 된다.  미워한다는 건 겸손하지 않다는 것이니, 소통이 되지안는 건 겸손하지 않다는 반증이 아닐까.  좋아하는 것도 겸손해야 더 좋아하지 않을까. 겸손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소통을 기대하기 힘들다.  

미움을 버려야 소통이 된다 Chat GPT Image


매거진의 이전글 소통을 망치게 하는 유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