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효과
어머니 얼굴이 슬퍼 보였다. 삼 년 전 세상 떠난 어머니. 고운 사진 골라서 거실에 걸었다. 늘 환하게 웃는다고 생각했는데, 슬퍼 보이다니. 잘못 본거 아닌가 다시 올려다봤다. 어머니는 여전히 슬픈 표정이었다. 불현듯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내게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기려는 걸까.
이런저런 일로 바쁘다 보니 한동안 잊고 지냈다. 어느 날 사진을 유심히 다시 살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어머니는 여전히 환한 얼굴이었다. 그날은 왜 슬프게 보였을까? 그날 전후 일을 곰곰이 돼 살피다가,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요즘 딸이 운영하는 조그만 회사에서 일을 거들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다 경제 지표가 나빠졌다는 소식에 심난했다. 앞날을 위해 뭔가 도움이 될 아이디어가 없을까 해서, 디자인 담당과 의논하려고 했다. 담당 여직원을 내 방으로 조용히 불렀다. 몇 달 전 경력직으로 입사한 분이다. 잔뜩 긴장해서 들어왔다. 이맛살을 찌푸린 듯 표정이 어두웠다. 인상만큼은 밝은 분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닌 듯했다. 할 이야기도 제대로 못하고 돌려보냈다.
생각해 보니 어머니 얼굴이 슬퍼 보이고, 여직원 표정이 어두워 보인 것이 엇비슷하게 일어났다. 요즘 그 직원 얼굴은 예전처럼 밝다. 그때만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이런저런 걱정에 짓눌리다 보니, 세상은 어둡고, 주위사람도 침울해 보였나 보다. 도둑눈에는 도둑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더니, 내 마음이 우울할 때는 다 우울해 보였나 보다.
‘상대방이 내 마음의 거울’이란 말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상대를 본다는 뜻이다. 미운 사람은 밉게 보이고, 이쁜 사람은 이뻐 보인다. 우리 속담에 “며느리 가 미우면, 발 뒤꿈치가 계란 같이 생겼다고 구박한다.” 는 말이 있다. 제 아무리 예뻐도, 미워하는 사람 눈에는 밉게만 보인다. 상대방이 미워 보인다는 건 내 마음이 곱지 않다는 말이 아닐까. 마음씨 고운 사람은 웬만해서는 누굴 미워하는 짓을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거울처럼 내 모습을 비춰주기도 한다. 어디 가서 무뚝뚝하게 굴어 보면 금방 일게 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어느 누가 상냥하게 대해줄까? 못나게 굴면 못나게 대접받고, 친절하게 대해주면 친절하게 응대받는다. 내게 대하는 상대방의 태도가 상대방을 대하는 나의 태도다.
인간관계에서 주고받음은 거울이 빛을 반사하듯 곧바로 반응하기도 하지만, 시차를 두고 반사하듯 뒷날 이뤄지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누군가에게 심하게 대해주었다가, 훗날 그만큼 나도 당한 적이 꽤 있다. 내가 추겨주었던 사람은 뒷날 나를 띄워주었고, 내가 구박한 사람은 기회 되었을 때 나를 찔러 댔다. 누군가에게 맞서 말하면, 그도 훗날 나에게 맞서 말할 게다. 마음에 새겨두고 그리 할 수 있겠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리 할 수도 있다.
사람의 뇌에는 거울뉴런 (mirror neuron) 이 있어서, 남의 동작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한다고 한다. 내가 하품하면 함께 있는 사람 중 누군가 하품한다. 내가 팔짱 끼면, 함께 있는 사람 중 누군가 따라서 팔짱 낀다. 네댓 명 모인 자리에서 실험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나의 동작을 누군가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고 있음을. 마찬가지로 나 역시 누군가의 동작을 나도 모르게 따라 하기도 한다. 지하철에서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다리를 꼬면 나도 모르게 다리를 꼬기도 한다.
호감을 느끼는 사람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는 행위를 심리학에서 거울효과(Mirror Effect)라고 한다. 상대가 자신을 따라 하면 친근감을 갖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호감이 낮아진다고 한다. 상대방 따라서 웃으면 같이 웃고, 슬퍼하면 같이 슬퍼해주기만 해도 호감을 줄 수 있다. 거울효과는 서로 잘 통하는 사람끼리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 사람끼리 같이 있으면 눈의 움직임, 호흡과 말의 빠르기가 비슷해진다고 한다. 금슬 좋은 부부가 오래 살면 서로 비슷해지는 것도 그래 서인가 보다.
분에 넘치게도 본당에서 영성체 봉사할 기회가 주어졌다. 성체 봉사할 때마다. 성체를 염하는 분의 표정을 살핀다. 한결같이 성스럽게 염하는 거룩한 분도 많지만, 때로는 무덤덤한 얼굴을 대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을 살펴본다. 저 모습이 지금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내가 성체를 무덤덤하게 드리는 건 아닐까. 상대방은 나의 거울이니까
이 글은 월간 '참 소중한 당신' 2018년 11월호의 "사랑의 커뮤니케이션, 거울"로 기고한 글을 수정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