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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했다. 영원히.

퇴사하니 살고싶어졌다.

by 윤슬

어제부로 난 영원한 퇴근을 했다.


분명 2월 3일 계약 만료일이 지나면 연장은 없다며 3개월에서 근무 종료하자던 부장님이 며칠 전, 지금 하는 일이 바쁘니 아르바이트를 두 달정도 해줄 수 없겠냐며 제안해 왔다. 딱히 퇴사하고 할 일이 정해져 있지 않았으므로 이 제안을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었다.


사실 최근 소설 쓰는 재미에 푹 빠진 나는 퇴사하고 나면 그동안 못 썼던 소설을 원없이 쓰리라 다짐한 상태였다. 2020년 처음 팬 창작을 시작한 이후로 글쓰기에 재주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 나는, 의외로 소설이 아니라 비문학 쪽에서 먼저 대외적인 성과를 드러냈다. 브런치에는 초고로 1시간만에 합격했고, 칼럼 공모전에선 최연소 대상을 받았으며 교내 수기 공모전에서도 대상을 받았다. 한살림 재단에서도 원고 청탁을 받아 기고했으며 기후사회연구소와 협업해 공동 집필 작업을 했을 적엔 글재주를 인정받고 후속 시나리오 작업을 해달라는 부탁도 받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빠짐없이 매일 일기를 썼고, 대학생 때는 늘 레포트 과제를 작성했다. 비문학적 글쓰기란 해 왔던 일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칼럼이나 보고서는 사실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하기만 하면 되는 데다가, 문장력만 어느정도 받쳐 주면 누구나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늘 일기를 한바가지 쓰며 머릿속을 정리하는 나에겐 에세이는 그냥 공개 일기장이나 다름 없었다. 내 생각과 철학, 팩트를 적어내려가기만 하면 되는 비문학 글쓰기란 나에게 그렇게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내용의 우수성이나 전달력, 통찰력 등은 차치하더라도 일단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비문학 글쓰기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말 글 자체를 잘 쓰는 사람은 문학을 잘 쓰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건 정말 일목요연한 하나의 흐름을 유려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비문학 글은 어느정도 쓸 수 있는 것 같았고,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만들며 글쓰는 걸 즐겼던 나로서는 소설"도" 잘 쓴다는 객관적 평가가 필요했다. 팬창작을 하면서 내 글을 읽고 문체가 좋다고 칭찬해 주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같은 원작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더 좋게 평가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소설가로서 나의 가능성을 점쳐보고자 공동 출판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나에게 필요한 건 "님 글을 잘 쓰시네요, 충분히 소설가가 될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이었다. 가능성도 실력도 없는데 괜히 혼자 '10년 안에 작품 활동을 하는 번듯한 작가가 되겠다'고 김칫국이나 마시는 거면 곤란했다.


행복한 일이다. 나는 그 목적을 달성했다.

출간할 단편소설을 읽어보신 작가님이 나에게

"글을 계속 쓰셨으면 좋겠어요. 윤슬님 필력이면 올해 안에 등단 장담합니다."

라고 말씀해주셨다. 너무 기뻐서 날아갈 것만 같았다. 하고 싶은 분야에서 역량을 인정받았는데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침 원래 글을 쓰는 데에 오래 걸렸던 내가 최근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면서는 하루만에 1만자 넘는 단편소설 한 편도 써낼 만큼 빠른 작업 속도를 갖추게 됐다. 팬창작을 하며 습작을 쓰던 게 도움이 됐던 모양이다.


그래서 올해는, 꼭 공격적으로 글을 한 번 써 봐야겠다고 다짐한 터였다. 사무직 일은 하루종일 모니터를 들여다 봐야 했으므로 집에 돌아오면 망막이 찢어질 듯 아파서 글을 쓰기가 통 힘겨웠다. 낮에도 앉아서 모니터를 봐 놓고, 집에 와서도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자니 건강을 해칠 것이 두려웠다. 게다가 9to6 풀타임 근무는 글 쓸 시간도 빼앗아 갔다.


더는 노예처럼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시간도 없이 살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알바 제안을 적당한 이유도 없이 거절하기엔 스스로와 가족들에게 눈치가 보였다.


그러던 차에 국가 지원 사업 훈련생 후보로 선발되어 퇴사일정을 앞당겨야 할 명분이 생겼고, 내 사정을 들은 부장님은 연차를 써서 오늘 퇴사하거라 하며 쿨하게 날 방생해 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연휴 전이라고 조기퇴근까지 하게 됐다. 퇴사 날짜 한번 끝내주네. 집에 돌아가는데 해가 떠 있기까지 하니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완벽해졌다.

나는 다짐했다.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 퇴근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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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까지만 해도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단순히 하고 싶은 게 없는 수준을 넘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주 적극적으로, 격렬하게. 그냥 가만히 숨만 쉬고 싶었다. 아니, 숨조차 쉬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나도 없었고, 어떤 일을 어디서 얼마나 할지도 내가 선택할 수 없었다. 내 인생인데 주도권은 회사라는 놈들에게 있었다. 이렇게 살아야만 유지되는 게 삶이라면 그냥 때려치우고 싶었다.


대학생을 빙자한 백수일 때까지만 해도 최대한 지구에 무해한 방식으로 살고싶었고, 그 방식이 나에게도 무해할 수 있기를 바랐다. 다른 삶을 찾아 떠나겠다며 해남으로, 오키나와로 떠날 때만 해도 꿈이 있었고 이상(理想)이 있었다. 소비가 세계와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길이라는 걸, 부자가 되는 것이 만사형통의 지름길은 커녕 인류 멸종의 지름길이라는 걸 모두가 인지하며 살아가는 지구로의 변혁을 꿈꿨다. 난 유토피아를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의 건강에도 기여하고 싶었고 무언가 떠들썩하고 재밌는 일을 잔뜩 벌이고 싶었다. 어떻게든 바닷가에 정착하고 싶었다. 그런 꿈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이것저것 경험하고, 부딪히고, 직장인까지 되어 보고 난 이후, 꿈을 잃었다. 나는 시골에 어린시절 추억 같은 것도 없었고, 적응하기 어려웠다.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삶은 지루했다. 외노자라는 벽은 국가 단위에서 나를 이방인 취급하게 만들었으며 도시에 돌아와 직장을 구하는 나에게 남은 건 오로지 무력감 뿐이었다.


잡코리아 등 채용 사이트를 열면 스팸메일함을 보는 것만 같았다. 거기에 사람을 숨쉬게 하는 일이란 없었다.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할 수 있는일 대신, 빛나던 눈도 죽은 동태눈깔로 만드는 일 뿐이었다. 일다운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니 아무것도 하기 싫어 죽겠는 지경에 이렀다. 급기야 무해한 삶이니 프로젝트니 운동(movement)이니 뭐니 하는 것들과도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냥 누가 나 좀 해방시켜 줬으면. 나는 그냥 나를 강제노역의 지옥에서 꺼내고 싶었다. 삶의 자유를 되찾고 싶었다. 적어도 출퇴근이라는 무의미한 시간 버리기에서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다른 것보다도 노동 해방이 가장 시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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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해방되고 나니, 갑자기 머리가 맑아졌다. 무기력에서 벗어나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된 듯했다. 다시는 사무노예가 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내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싶어. 그게 소설이 됐건, 에세이가 됐건, 논픽션이 됐건 간에 말이다.

나는 나를 인간답게 해주는 일이 하고 싶었고, 그건 누군가의 밑에서 까라는 대로 까는 일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의지대로 하는 일이었다. 나는 나의 일이 하고 싶다. 그리고 이왕 하는 거 내 재능을 제대로 활용해 보고 싶었다.


올해는 꼭 내 작품을 만들어 보리라 계획했다. 그에 방해되는 일들은 웬만하면 치우고 싶다. 올해는 정말 내가 원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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