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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16. 2024

우리의 식탁을 지키려면

땅을 먼저 지키는 게 우선이다

민생안정, 이라고요?

한동안 농산물 가격이 미친듯이 폭등하고, 애그리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화두가 되었다. 아직까지 그 경향은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그라들기는 커녕, 어쩌면 앞으로 더 할지도 모른다.  커피, 카카오, 올리브 등 수입 작물들이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인해 잘 자라지 않았다. 기후플레이션으로 각종 초콜렛이나 올리브유 등은 가격이 오를 전망이다. 더군다나 또다시 전쟁이 일어났다. 식량 가격 안정화는 물 건너간 듯 보인다. 민생안정, 민생안정을 외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민생 안정은 이루지 못할 꿈이나 다름없다.



민생의 진짜 출처

사실 민생 안정은 어디에서 그냥 툭, 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민생은 정부에서, 국회에서, 어느 비상한 정치가의 머리에서, 신박한 기술에서, 국고에서 나오지 않는다. 민생은 땅에서부터 나온다. 민생을 안정시키려면 땅을 지키고, 자연을 안정시키는 것부터가 우선이다. 그러한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단순히 농산물 가격을 내리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수를 써보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 우리가 먹는 것은 전부 이 땅으로부터 나온다. 그런 당연한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듯, 세계는 땅을 너무나도 쉽게 함부로 대한다.



부동산 사기인 줄 알았는데...

가끔 "단군 할아버지가 부동산 사기를 당하셨다"는 식의 우스갯소리를 접하곤 한다. 확실히 모스크바보다 추운 겨울과 동남아보다 더운 여름을 생각하면 단군 할아버지가 터를 잘못 잡으신 건 아닐까 싶긴 하다. 하지만 자급자족과 농사를 생각하는 입장에서 놓고 보면 이만큼 좋은 땅이 없다. 우선 한국은 약수터가 있을 정도로 물이 깨끗하다. 아니, 깨끗했다. 원체 깨끗한 식수가 샘솟는 땅이었다. 더군다나 화산대도 아니고, 지진대도 아니다. 배산임수가 잘 되어있고 다양한 지형과 지리적 특성이 공존하여 식생이 풍부하다. 산도 있고, 바다도 있고, 논도 있다. 이만큼 먹고 살기 좋은 땅이 없다.


그런데 자연으로부터 단절된 인간은, 이 땅이 얼마나 귀한 땅인지 모르고 파괴하기 바쁘다. 한국에서만 자라고, 서식하는 식생들을 이 땅에서 매몰차게 내쫓겠다는 말을 당당히 공약으로 내놓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낯짝 한 번 뻔뻔스럽기 그지없다. 기껏 이렇게 풍요롭고 좋은 땅을 두고도 개발해서 그린벨트 규제완화를 하겠다는 둥, 멸종위기종 서식지를 밀어서 골프장을 만들겠다는 둥, 되지도 않는 케이블카나 공항을 짓겠다는 둥... 아주 돈에 눈이 멀어도 정도가 있지 싶다.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없다.


공항을 짓고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골프장을 만들어서 돈이 된다 한들, 더이상 이 땅에서 먹을 것이 나오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일까? 돈이 아주 많아도 땅이 오염되어 먹을것이 안 나오고 바다가 오염되어 먹을 것을 못 얻으면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숲이 개간되고 갯벌이 간척되어서 더이상 자연이 풍요를 유지할 수 없어지면 우리는 다 굶어야 한다. 늘 말하지만 돈은 허상이고 자연은 실재다. 인간은 돈 없이도 수백만 년 살아왔지만 자연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아본 적 없다.


그런데 뻔뻔하게도 자연을 떠나서도 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화성이니 우주니 하는 트랜스 휴머니즘같은 공상과학 SF 소설은 현실화 될 것이라며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그리는 미래에는 자연이 하나도 없다. 로봇과 기계뿐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스마트팜이나 배양육, GMO, 우주 정복 같은 길 밖에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언제나 기술은 엘리트와 자본을 위해서 움직이지, 힘없는 개인과 다수의 민중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결국 거기에도 사다리와 피라미드와 약육강식과 우열가르기, 엘리티시즘, 식민지배의 논리가 작용한다. 이런 상태라면 화성으로 가더라도 싸움이나 하느라 쑥대밭 될 게 뻔하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잘 먹고 잘 살고 안 싸우고 평화롭게 지내려면 이 땅을 돌보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이 축복받은 땅을 돌보는 데엔 아무 관심이 없다!

단군 할아버지는 부동산 사기를 당하신 게 아니라 세입자 사기를 당하신 거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집을 엉망진창으로 훼손시키는 세입자들이 줄줄이 들어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제 집 깨끗하게 청소할 줄도, 관리할 줄도 모르고 그저 쓰레기는 안 보이는 곳에다 밀어넣어 버리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렇게까지 살림을 못하는 입주자인 줄 알았다면 환웅은 웅녀에게 쑥과 마늘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며칠 전에는 총선이 있었다. 받아본 선거 책자를 읽는데, 그래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이야기가 없었다. 그냥 막겠습니다. 그 말은 나도 할 수 있겠다. 애초에 기후위기를 초래한 사고방식의 수혜자, 그 장본인들이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취하려 할까? 무엇이 문제인지 근본적인 진단을 할 수 있긴 할까? 진짜 민중의 입장에서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수 있을 듯한 정당은 기껏해야 하나 정도였다. 탈원전에 대한 말도 언급조차 없었다. 심지어 여당은 탈원전을 하면 세상이 두 동강 난다며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보고도, 13년 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보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도대체 자연의 소중함을 어디까지 모른다는 말인가.


누누이 말하지만 한국은 반도체로 먹고 살지 않았다. 한국을 먹여 살린 것은 농업이다. 단 한 순간이라도 반도체를 입에 넣고 씹어본 적이 있었나? 우리는 매일 쌀을 먹으면서도, 이게 우리를 살게 해주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안정이 빠를까, 몰락이 빠를까

문명은 항상 문명을 지탱해줄 식민지가 필요했다. 고대부터 여지없이 그래왔다. 더이상 발을 뻗어나가 빨판을 붙이고 등골을 뽑아먹을 변경지가 없으면 몰락했다. 내부적으로 식량 조달을 해결할 수 없어질 만큼 자연이 황폐해지면 또한 몰락했다. 놀랍게도 인류역사에서 모든 문명이 마을을 만들고, 도시를 만들고, 사업을 하고, 숲을 개간해 농사를 짓느라 토양을 침식시키는 바람에 자연 위기를 맞았다고 한다. 문명을 만드는 과정이 곧 스스로를 갉아먹는 일이었던 것이다. 결국 토양 유실이나 변경지 확보 불가 등 식량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멸망한 문명만 수백개란다. 그걸 왜 해결 못했을까? 바로 문명을 통해 이득을 보고 자산을 모으고 지위를 얻은 기득권층 때문이다.


문명을 세워 온 방식이 기득권층의 이득을 보장해주었는데, 닥쳐온 환경 문제는 기존의 방식을 버려야만 해결이 가능했다. 방식을 바꾼다면 결국 탈-위계뿐인데 기득권층이 탈-위계를 반길리가 없었다. 결국 윗선들의 징한 보수적 스탠스가 모든 문명을 몰락시켰다. 그 문명 몰락 과정, 나 지금 보고 있는 중인 것 같거든.


현대문명과 정말 소름끼치게도 같은 상황이 수천년 반복되었다니.

현대문명도 지금 같은 위기를 맞이했다. 다른 점은 예전엔 어느 한 지역만의 일이었다면 지금은 전 세계가 엮여있는 문제라는 것.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자연의 위기를, 기득권층이 저들의 이익을 추구하느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사고를 원하지 않고 변화도 혁신도 혁명도 원하지 않는다. 신기술은 혁신이 아니다. 그건 그냥 원래 하던 방식이다. 진짜 혁신은 기술과 자본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한국을 떠나고 싶어서

사실 너무나도 지쳤다. 사람들의 무지를 보고 있는 것도 괴로웠고, 화가 났다. 먹거리가 자라는 소중한 땅을 지켜내도 모자랄 판에 싹 갈아엎고 오로지 돈 키울 생각밖에 없는 사람들이 미친 것 같았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생태주의자, 자연주의자, 채식주의자로 살기 힘들었다. 의식이 없다면 존중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이 땅의 세입자들은 의식도 없고 존중도 없었다.


너나 나나 얘(고기)나 모두 약자인데. 아무 힘도 없는데. 다 똑같이 힘 없는 존재들끼리 돕고 살아도 모자랄 판에 약자에게 공감하는 능력 따윈 내다 버린 지 오래였다. 공감 능력은 조롱의 대상이다. 야, 너는 무슨, 그럼 동물이랑 우리가 똑같다는 소리냐? 나는 당당하게 대답한다. 그렇다,고. 인간은 동물이다. 인간도 자연이 만들어 낸 생명체다.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저 초원의 사자나 인간이나 다를 게 하나 없다. 인간은 동식물의 상호작용 없이는 살아갈 수 없고, 인간 본인 조차도 신체의 90%는 외부 미생물이다. 게다가 우리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바나 초원에서 구르는 삶을 살았다. 나는 따져 묻고 싶다. 인간, 너 뭐 돼? 고작 머리 좀 쓴다고 하는 일이 46억년 동안 유지되어 온 지구의 조화 무너뜨리기 뿐이면서.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고, 이렇게 생각하면 극단적인 자연주의라고 이상하게 여긴다. 극단적인 자연주의라는 말이 더 웃긴데. 애초에 자연주의를 극단적으로 본다는 생각부터가 스스로가 자연이라는 자각조차 없다는 방증이다. 그 극단적 자연주의, 인간 빼고 모든 생명체가 다 하는 거 아닌가? 도대체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극단적인 자연주의를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다. 마치 내 손이나 팔을 보고 넌 극단적으로 인간이야,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한계와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자유를 찾아 떠나고 싶었다. 자급자족을 할 수 있을만 한 좋은 땅을 찾아서, 거기에 적당히 터를 잡고 생태 아나키즘 정신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후보는 두 군데였다. 이탈리아 쪽과 일본.

우선 이탈리아는 그 좋아하는 바다가 있고, 기후가 좋고, 슬로우푸드 문화가 잘되어있고, 음식이 입에 잘 맞고 채식하기에도 부담없는 식사 메뉴들이 매혹적이었다. 더군다나 쌀농사도 되고 밀농사도 되고 다양한 채소들 키우기에도 적합하다. 심지어 여차하면 기후변화와 함께 유럽 대륙을 따라 북상할 수 있다는 점이 끌렸다.  

일본도 위아래로 길어서 식생이 다양하고 풍부하다. 마찬가지로 기후 변화 따라 북상 가능하다는 점이 좋았다. 거기도 한식이랑 비슷하게 해먹을 수 있으니 농사지어 뭐 먹을지 걱정도 별로 없는 것은 덤이다.


그런데 크게 마음에 걸리는 게 방사능이었다.


동일본쪽은 아직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영향으로 방사능에 피폭될 위험이 있다는 데에서 신경쓸 것이 많았다. 우핑이나 이주를 하더라도 동일본은 피해야 할 것 같았고, 농산물도 싸다고 마구 살 게 아니라 어느 지역에서 생산된 것인지 따져보고 걸러야했다. 사전 답사 겸 워킹홀리데이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런 부분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 땅의 건강이 나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테니 말이다.



워홀 준비하다 탈핵 운동하게 생겼어요

일본은 지진대가 포진해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원전같이 불안정한 시설을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원전을 선언하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며 심지어는 그 오염수를 바다에 함부로 방류하고 있다. 우리가 바다에 버리는 것, 땅에 버리는 것은 결국 돌고 돌아 우리 입으로 돌아온다. 얼마 전에는 플라스틱 그물이 들어있는 생선으로 이슈가 되지 않았던가. 우리가 자연에 한 짓은 전부 돌려받게 된다. 그런데도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인지 답답한 심정이다.


우리의 안전은 안전한 음식을 확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안전한 음식은 안전한 땅에서 나온다. 우리가 정말로 자연과 단절되어 지구가 내어 주는 것을 단 하나도 입에 넣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을 보살펴야 한다.


애초에 핵이란 무엇인가? 전쟁을 위해서 태어난 물질이다. 농약도, 살충제도, 전부 전쟁 때 사람을 죽이기 위한 살상무기로 개발되었다가 사용중인 물질이다.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간편식도 전쟁 중에 생긴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아직도 전쟁과 상잔의 잔해를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전쟁은 '더불어 살자'가 아니라 '너 죽고 나 죽자'다. 죽고 싶어 환장했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살고 싶어 환장한 사람들까지 같이 죽는다. 아무 잘못 없는 동식물까지 함께 죽는다. 한국은 말로만 동방예의지국이지, 자연의 선배님들에게 하는 꼴을 보면 아주 가관이다. 선배님, 우리 같이 죽어봐요.


일본에서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 원전 피해 사고로 인해 먹거리 안전에 대한 의식이 한 차례 깨어났다. 아이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주어야겠다, 아이들이 위험하지 않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오키나와나 오카야마 등 남단으로 이주한 엄마들이 많았다. 엄마들은 탈핵을 외쳤다. 핵에너지가 우리 아이들을 살게 만들지 않는다고 깨달은 것이다. 이들은 살고 싶어 환장한 사람들이었다.


민중이 사는 길은 복잡하지 않다. 그냥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있게, 먹여주는 것이 우선이다. 인간도 입에 먹을 것을 넣어줘야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먹기 위해서는 자연과 협력해야 한다. 안정적으로 안전한 식량을 확보할 있어야 굶어 죽지 않는다. 먹고도 잘못되어 죽지 않는다. 자신이 살고 있는 터전을 더럽히지 않는 길이 곧 잘 사는 길이다. 결국 서로 살림만이 민생 회복의 유일한 방법이다. 나 또한 살고 싶어 환장한 사람으로서 이야기한다. 너 죽고 나 죽는 건 그만하자. 우리 너 살고 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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