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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27. 2024

지구 유토피아로 나아가는 길

책 [생태 민주주의]를 읽고

얼마 전,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보물같은 책 한 권을 또 발견했다. 사실 웬만한 책들은 읽으면서 늘 결말이 아쉽거나, 좋은 책이긴 해도 뭔가 한 방이 없거나, 몇몇 마음에 드는 구절만 건지고 말거나 하는 식이었다. 최근에 읽은 책도 대개 그랬다. 번역이 엉망이라든지, 아름다운 서문에 비해 끝심이 약해 뒤로 갈수록 재미가 없었다. 한동안 이거다, 싶은 책을 못 만나고 있었는데 드디어 마주쳤다.


[생태민주주의] -구도완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608509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매우 급진적이고,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발간되는 책들은 크게 기대하지 않고 보는 편이다. 문제상황에 대한 진단, 문제 의식에 비해 대책으로 내세우는 결론이 매우 소심하기 때문이다. 고작해봐야 정치를 바꾸자, 교육을 바꾸자, 어떤 기술을 도입하자, ESG를 실천하자 등등 별 도움도 안 되는 수박 겉핥기 식 결말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의 체제를 고쳐쓰는 정도로는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해결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처음 이 책을 집어들면서도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생태민주주의라는 책 제목이 그렇게 흥미를 끌 정도의 제목도 아니었거니와, 기껏해야 현대의 구조 안에서 할 수 있는 정치 개편 정도를 다루겠거니 싶었다. 여타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저자의 상상력이 빈곤할 것이라는 편견을 안고 책을 펼쳤는데, 첫 장부터 그 편견이 와장창 무너졌다. 이 책, 어쩌면 진짜다. 진또배기다. 그런 기대감을 마구 솟구치게 하는 문장들의 항연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주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기계와 돈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대량 소비와 대량 폐기가 야기하는 환경 피해에 대해 지적하는 책은 숱하다. 그러나 이 책처럼 산업 자본주의와 산업화, 기계문명, 물신 숭배 등 현대 전반의 문제점을 고루 지적하는 책은 드물다. 이 책은 단순히 대량 소비와 대량 폐기를 불러온 자본주의의 환경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돈쓰고 돈벌기, 쓰기 위해 직장 뺑이치기, 퇴사를 희망하기 위해 입사 경쟁하기, 사람이 자본과 기계에 이끌려 다니는 작금의 정신 나간 시스템 자체를 전부 비판한다.


기계문명에 대한 진보적 믿음과 자본에 대한 숭배가 전 국민의 종교가 된 대한민국에서, 이런 책을 만나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이 책의 저자는 세간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본인만의 혜안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분이었다.


저자는 현재까지 존재하는 정치 담론들을 모두 톺아보며, 각각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을 지적한다. 보통 생태-사회 문제를 다룰 때 많은 책들은 녹색 복지국가로의 전환 정도만 이야기한다. 하지만 녹색 복지국가 역시도 국가가 민중 개개인을 돌보기에는 너무 큰 단위여서, 돌봄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구멍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녹색 복지국가는 여전히 국가 의존적일 뿐만 아니라 복지와 정치 참여의 주체이자 대상이 인간에만 국한 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진정한 생태-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만이 중심인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지구 공동체의 온 생명을 아우르는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필요하다. 결정적으로, 녹색 복지국가는 식민화, 제국주의 등 약탈을 통해 자본을 축적한 상태에서 가능한 체제이다. 힘없는 집단을 배척하고 식민화하여 야만적으로 자본을 축적해 온 과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복지국가 자본주의는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애쓰지만 불평등의 원인인 자본주의적 소유와 생산관계를 인정한 채 경제성장을 위해 자본주의를 발전시켜야 하는 체제이다. 그러므로 국가 공동체를 넘어서는 다른 국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배제적인 경향을 보인다. 다른 문화, 인종, 민족을 배제하고 혐오함으로써 정치적 이익을 얻는 인종주의, 국수주의자들의 공격 앞에 복지국가 자본주의는 노출되어 있다.
복지국가 자본주의의 또다른 한계는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등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제국주의 시대에 약탈에 의한 자본축적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모델이라는 점이다.
복지국가 자본주의는 배타적 민족주의, 국가중심주의, 생태위기,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정치 담론이다." -본문 중에서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생태 아나키스트인 나로서는 탈-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국가 단위를 해체하는 것이다. 그보다 훨씬 더 작아서 충분히 모든 존재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으며 평등하게 조직될 수 있는 작은 생태 공동체, 생태 마을을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그렇게 구성된 각각의 생태 마을, 생태 공동체들이 지구 위에서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나누며 유연하고 느슨하게 연결되어있는 상태가 이상적이다. 각각의 마을들은 뉴런이고, 그 뉴런들이 서로를 배척하는 대신 연대하고 소통하며 연결되어 있는 생태 네트워크 지구 마을이 되는 것.


국가라는 허상에 소속되어서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타자를 배척하고 자기를 희생하며 정부에 의존하는 대신 지금 이 자리에서 개개인의 힘을 모아 주체적으로 살아가며 타자를 환대하는 모습으로의 탈피가 나의 궁극적 지향점이다.


이는 저자가 바라는 유토피아와도 동일하다. 기본적으로 생태 아나키즘의 정신을 공유한다. 저자는 이러한 모습의 정치적 담론을 "생태적 어소시에이션"이라고 지칭한다. 생태적인 정신으로 살아가는 개개인들의 연합체가 모여 지구적 연합체를 이루는 모습을 말한다. 책에서는 이와 같은 정신을 이야기한 다른 학자들도 소개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가라타니 고진, 머레이 북친, 표트르 크로포트킨 등이 있다.


"가라타니 고진은 국가를 국가 안과 밖에서 해체하고 자유로운 개인들의 결사와 그 결사들의 연합으로 세계 공화국을 만들어 평화롭고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만드는 이상을 제안한다" -본문 중에서


문제는 이 거대한 이상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의 구체적 로드맵 부재다. 이것은 모든 아나키스트들이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미 조금씩 이 이상을 향한 실천의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그 실천 사례까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숙의 민주주의, 협동조합, 사회적 경제, 마을 기업등으로 이미 세상을 향한 반란을 발랄하게 실천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회사인간으로 살기 싫거나 그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자립과 협동의 연결망 속에서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며 평화로운 삶을 사는 세상은 실현 가능한 꿈이다."


저자는 새로운 모습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망상이 아니라는 점을 논리적으로 설득한다. 이 책이 그런 점에서 특히 좋았다. 거창한 문제 제기에 비해 소심한 수준의 변화, 누구나 할 수 있는 환경적 실천 등을 제시하는 데에서 그치는 대신, "평화로운 동물의 숲 지구"라는 비전을 솔직하게 밝히면서 이 상태로 넘어가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세세하게 소개한다.


저자는 생태복지국가를 징검다리로 삼아 생태적 공동체와 어소시에이션들이 자치의 역량을 최대로 키워 생태 자치연방을 지역차원에서 만들어 나가며 세계적인 생태거버넌스를 만드는 것을 지향으로 삼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의 전환, 생산의 전환, 산업구조의 전환, 노동의 전환, 소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기본적으로 탈성장을 이룩하고 산업구조를 돌봄과 사회적 경제, 지속가능한 농업 중심으로 재구성한다. 사유대신 공유하며 커먼즈의 회복을 이루어야 한다. 각 가정마다 물건을 소유해야 한다면 소비와 생산이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공동체가 함께 관리하고 서로 나누고 공유하게 되면 모두가 하나씩 소유해야 할 필요가 사라진다. 덜 소비해도 괜찮고 경제 성장을 목표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더 많은 여가가 발생한다. 그 여가는 다시 돌봄과 자급 생산 노동으로 이어진다.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완전고용과 복지국가의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으며, 물질적 풍요에 집착하지 않고, 사회적, 실존적, 비물질적 행복과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이들이다. 회사인간, 국가인간이 되기보다는 자유로운 개인이 되어 친구들과 이런저런 연결망을 만들고 이를 즐기는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인간형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성찰하지만 책임감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유쾌하게 오늘을 살아간다.
(...) 나는 이런 새로운 인간형을 협동조합 조합원과 활동가, 환경/여성/시민 사회운동가, 풀뿌리 마을 운동가, 문화 운동가, 녹색 정치인 등 여러 분야에서 보고 있다. -본문 중에서



유튜브에 올라오는 이상기후 뉴스를 보면 대부분 비관론으로 귀결된다. 인류는 사라져야 한다. 이제 답이 없다. 급진적으로 바뀌어야 해결되는 걸 알지만 아무도 바뀌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등등. 그렇지만 살고 싶다면, 앞으로도 살아가고 싶다면, 현대 사회가 제시한 기업인간, 회사인간, 자본인간, 국가인간 등의 모습을 넘어 진짜 인간다운 삶을 온 힘으로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다면 이렇게 비관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저자는 이 책을 유토피아적이고 희망찬 마무리로 책을 끝맺는다. 마무리까지 아름다운 흐름을 힘차게 이끌고 가는 책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용두사미인 책이 아니라 유종의 미를 거두는 책이다.  


모든 생명 공동체가 동등하게 존중받고 자유로이 자기다운 삶을 실현하며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마을. 그리고 그 마을들의 교류와 연결. 그런 삶은 결코 꿈이나 멀리있는 이상이 아니다. 유토피아란 누군가의 상상속에 존재하는 허구적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실존하는 과거의 경험이자 빛이다.


그러니 묵묵히 오늘을 바르게, 자연에 발맞추어 살아가려 노력한다면 분명 평화의 순간이 올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결국에는 착하고 올바른 사람들의 힘으로 모두가 평화롭고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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