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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18. 2024

비만치료제가 우리를 고칠 수 있을까

언뜻 보면 유토피아, 알고 보면 디스토피아

다음 달이면 한국에도 비만 치료제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뉴스를 보는 내내 영상은 희망찬 분위기였다. 드디어 인류를 구원해 줄 최종병기가 나타났다고 여기는 듯 했다. 심지어 그 비만 치료제가 단순히 비만뿐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대사 문제로 생기는 다른 만성 질환들에도 효험을 보였다나 뭐라나. 이 약만 있으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지만 딱 하나 해결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지갑 사정이다. 위고비라는 새 비만 치료제는 월 200을 호가하는 지독히도 비싼 놈이었다. 뉴스에서는 다이어트조차 빈익빈 부익부가 될지도 모른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고작 1~2분 남짓하는 뉴스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 짧은 영상을 보고 할 말이 너무 많아져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렸다. 쟤들 뭐래냐 진짜. 이제는 하다 하다 비만까지 약과 돈에 의존해라 이건가. 어이가 없었다. 비만 치료제가 인류 "난치병" 비만을 고칠 수 있을 거라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원인은 모르고 현상만 보는 얄팍한 사고방식부터 어떻게 해야할 듯 싶다. 위고비가 우리를 고쳐놓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치료제는 위고비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답은 전부 '아니오'다.







문제의 근원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 요즘 어딜가나 배불뚝이가 인류의 새 스탠다드가 되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은 자명하나, 여전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다.



1. 누가 비만인가

외모지상주의, 완벽주의, 가부장제 등의 영향으로 건강이 아닌 미용을 목적으로 하는 '무의미한 다이어트'가 성행하고 있다. 날씬하고 마른 것만이 미덕이며 온 몸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가늘어야 한다는 이 강박증적인 생각은 여자들에게 정신병을 선물했다. 아무 문제 없는 본인의 몸을 혐오하고, 재단하게 만들었다. 여자는 예쁜 옷을 입어야 한다. 예쁜 옷은 날씬한 사람만 입을 수 있다. 예쁘다는 것은 마르고 가녀린 체형의 여성을 의미한다. 고로 여자는 마르고 가녀려야 한다. 이 염병할 삼단 논법에 세뇌당해 신체를 "기능하는 유기체"가 아니라 "보여지는 마네킹"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노소를 가리지 않고 나이 든 할머니나 어린 아이들이나 제 몸의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이어트에 빠져 산다. 미디어는 젊고 마르고 가녀린 여성들만을 비춘다. 그들은 스스로를 단죄한다. 처지는 주름살, 접히는 뱃살을 저주한다. 매일 초저칼로리 식단을 유지하면서도 키 빼기 몸무게 120 이쪽 저쪽을 만들기 위해 이를 악물고 운동한다. 노화를 거부하고 식욕을 거부하면 관리하는 여성으로서 연령을 막론하고 박수 받는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행위가 더이상 자기 학대로 인식조차 되지 못한다.


사회적 통념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스스로 살쪘다고 생각하거나, 말랐다는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무리한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여성들이 너무나도 많다. 정도의 차이만 다를 뿐 누구도 여성에게 찍히는 사회적 낙인에서 자유롭지 않다. 나의 체지방이 내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가? 그럴 정도라면 체중 감량이 필요하겠지만 문제는 필요하지 않은 여성들까지 제 몸을 갉아먹길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네이버는 인플루언서의 영상이랍시고 "일주일에 4키로 감량하는 법"처럼 매우 위험한 게시물을 메인에 띄워준다.


무의미한 다이어트라고 하는 이유는 결국 사람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체형이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뇌는 뿌리까지 식민화되어 서구형 체형을 무조건적으로 선망하며, 미의 기준으로 여긴다. 절대 자연스럽지 않은 몸 상태를 이상적이며 건강한 상태라고 상정한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네 몸은 비정상이라고 낙인을 찍는다. 동시에 광고한다. 소위 "건강"해 보이는 몸을 위해 이것을 드시고 저희 체육관에 오셔서 운동을 하세요. 불가능을 가능케 하기 위한 전쟁은 헬스케어 산업의 빛과 소금이다. 일단 스스로의 신체에 대해 수치심만 안겨주면 기꺼이 돈을 내기 때문이다.



정상성에 대한 집착은 인간을 공산품 쯤으로 여긴다. 한 인간이 세상에 출고될 때 정해진 규격이 있는 것처럼. 무슨 상품 무게 맞추듯 개개인의 무게까지 통제하려 한다. 평생을 통통하게 살았어도 건강 상 이상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병원은 어코 비만 도장을 찍는다. 정상 출고 무게 초과. 규격 외 범위에 있으니 중량 조절 요망. 하지만 세포는 찰흙과 다르게 멋대로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없다. 인간의 신체는 무엇이든 수치화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이 당연한 진실을 현대 의학만 모른다.




2. 무엇이 비만을 만드는가

비만은 엄밀히 말하면 병 그 자체라기 보다 증상이다. 체내 독성 물질이 과도하게 많아서 몸이 살기 위해 독성 물질을 지방 세포에 저장한 것 뿐이다. 하지만 개인마다 저장량에 한계는 있다. 몸에 독을 끌어안고 살면서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과하게 축적된 독(지방)은 언젠가 말썽을 일으킨다. 우리 몸은 당을 에너지원으로 하는데, 혈관 벽에 찌꺼기가 쌓여있으니 세포로 당이 전달되지 못하고 체외로 배출되는 것이 당뇨다. 먹어도 에너지를 흡수할 수 없어진다. 혈관 벽에 찌꺼기가 쌓이는 현상이 고지혈증이고, 좁아진 혈관으로 인해 혈압이 올라가는 것이 고혈압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있다. 그러니 비만 치료제가 다른 대사 질환까지 개선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결국 과도하게 쌓인 독이 몸을 막아 순환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것이므로.


그렇다면 이 독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물론 과도한 열량 섭취와 부족한 열량 소모가 원인일 수는 있으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탄수화물이 적인 것도 아니며 단백질이 만능 열쇠가 되는 것도 아니다.


체내에 축적되는 독성 물질은 공장식 축산에서 사용되는 항생제, 건강하지 못한 육류, 성장 촉진제, 호르몬제, 공장식 농업에서 사용되는 인공 화학 비료, 농약 등은 물론이고 일상적으로 먹는 가공식품과 조미료 등에 포함된 인공 식품 첨가물에서 온다.


이런 물질들은 주로 컵라면이나 인스턴트 등 저렴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에 들어 있으며 육류 중심의 외식 산업 등에서 접하기 쉽다. 시간이나 금전적 여유가 없어서 혹은 음식을 해 먹을 재량이 없어서 등의 이유로 편의점 음식이나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이 이와 같은 물질에 더욱 노출되기 쉽다. 고기는 굽기만 하면 되는데 나물은 손이 많이 가고, 아이들이 잘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간편한 양념육 혹은 삼겹살로 반찬을 준비하는 주부들도 많이 볼 수 있다.


결국 자기 돌봄, 가족 돌봄 등을 수행할 여유가 없을 때 독성 물질을 자주 섭취하게 된다. 오늘날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주로 가정 밖에서 이루어지는 소위 "경제 활동" 노동에 장시간 동원된다.


필자를 예시로 들면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할 경우, 넉넉잡아 출퇴근이 지하철로 1시간은 넘게 걸린다. 직장에서 나와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는 시간. 집에서 나와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는 시간을 모두 포함하면 편도 두 시간은 잡아줘야 한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와 저녁 8시에 집에 들어가는 셈이다. 13시간을 밖에서 보내며 점심은 구내식당 혹은 외식을 할 수 밖에 없고 아침과 저녁은 만들어 먹을 기력도 시간도 부족하다. 이럴 때 보통 저녁 식사 역시 밖에서 음식을 포장해먹거나 적당히 라면을 끓여 먹는 것으로 해결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된다. 여기서 회식이라도 하게 되면 십중팔구 육식 위주의 식당을 가게 될텐데 거기에서 화학 물질이나 다름없는 소주, 발암물질로 선정된 붉은 육류까지 몸에 때려 넣는다면 저승길 프리패스다.


결국 정말로 먹고 사는 일에 신경 쓸 시간이 노동 시간에 밀려 사라지고 만다. 나를 잘 대접하는 데에 공들일 수 없다. 좋은 식재료로 요리할 겨를이 없다. 시간만 부족한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녹록치 않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회적 약자일 수록 저렴하고 질 나쁜 음식을 섭취하기 쉬운 환경에 처한다. 위고비가 아니더라도 이미 다이어트는 빈익빈 부익부인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마트에 가도 건강한 음식, 이를테면 통곡물보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정제 탄수화물 위주로 상품이 구성되어 있다. 여기저기 널린 백미 10kg 포대와 달리 현미 10kg 포대는 찾아보기 어렵고, 국산 잡곡도 종류가 적으며 비싸기까지 하다. 국수나 밀가루도 통밀대신 백밀 제품 천지다. 통곡물로 된 탄수화물을 충분히 먹어야하는 이유는 정제되지 않은 거친 탄수화물에 식이섬유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식이섬유만이 몸속의 독을 끌어내고 체외로 배출시켜주는 역할을 하는데, 정제된 탄수화물은 열량 보충 외에 독소 배출 역할까지 수행하지 못한다.


쌈채소나 채소 요리, 나물 위주로 식사하면 모르겠지만 현대인의 입맛은 이미 식품 산업의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질대로 길들여져서 한식뷔페형 구내식당에서조차 그 누구도 나물 채소 반찬을 가득 담아먹지 않는다. 이건 목격담이다. 구내식당에는 잡곡밥 대신 흰밥을 담고 콩나물 대신 제육을 담아 먹는 사람들 천지였다.


장내 유익균은 식이섬유를 좋아한다. 그런데 식이섬유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식단으로 먹는다면 당연히 장내 유익균이 자랄 수 없다.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다양하게 번성해서 대사 기능을 활성화시키려면 식이섬유가 풍부한 자연식품을 먹어줘야 한다. 하지만 마트나 식료품점은 주로 공산품을 판다. 실제로 주변에 마트나 식료품점이 즐비한 곳에서 살게 되면 장내 유익균이 감소한다.


현대 사회는 과잉의 시대다. 과잉 노동과 과잉 생산이 비만을 불렀다. 하루 중 절반을 일터에서 보내고, 취미 생활은 커녕 요리하고 운동 할 기력조차 부족하다. 휴식도 제대로 취하기 어렵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행위, 돌봄 노동을 필수로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돌봄 노동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며 등한시한다.


GDP 경제학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여유롭게 산책하며 자연을 거닐고, 피곤할 땐 잠을 자며 공짜로 건강을 유지하길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의료 산업에 더 많은 돈을 내고, 버러지같은 식품 산업에 더 많은 돈을 내며 병주고 약주는 행위를 반복해야 통화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경제가 성장했다며 좋아한다. 적게 노동하고 적게 소비하는 방식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대신, 과잉 노동하느라 골골대는 몸으로 그동안 번 돈을 병원비에 꼴아박길 원한다. 이런 어이없는 구조가 자본주의 사회다.


원인이 되는 산업 사회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비만은 비인간적인 제도, 성장에 대한 집착이 낳은 과잉 중독의 산물이다. 더 싸게 많이 생산하고자 하는 욕심이 돌고 돌아 결국 인간의 건강과 목숨을 위협한다. 누구나 텃밭에서 스스로 안전한 먹거리를 기르고 수확하는 기쁨을 누리고 요리하는 즐거움을 느끼며 나누는 보람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자연에 대한 접근권, 충분한 돌봄의 시간,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관계야말로 진정한 인류의 구원이자 치료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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