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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감나비 Jul 13. 2021

추억-추억이 남기는 정서

내가 캠핑을 시작한 이유

보이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게 평가되는 사회다. 나의 지난  그런 사회 풍토를 답습하며 학력과 스펙, 눈에 드러나는 결과를 우선시했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엄마가 되고 보니  내 아이는 그런 삶을 살지 않았으면 했다. 무엇중요하게 가르치고, 어떤 유산을 남겨주어야 할 것인가 늘 고민했다. 그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내가 아이에게 물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것 중 하나는 긍정적 정서다. 어린 시절 정서적 욕구 충분히 채우는 것은 인지발달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에, 긍정적 정서를 쌓 추억많이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본래 긍정적 정서가 풍부한 사람이 아니라서, 나에게도 충분치 못한 것을 아이에게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지 몰랐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를 둔 덕에  어려서부터  어린이집에서 하루를 보냈다. 당시 나는 직장에서 온 에너지를 다 쏟아부었다. 침 일찍 헤어지고 저녁에 다시 만난 아들에 진이 빠진 모습을 주로 보여주곤 했다. 하루살이처럼  오늘 하루 잘 견디었다고 생각하며 쓰러져 잠들던 날들이었다.  긍정적 정서를 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부모라는 죄책감만 가득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의 어린 시절이 오버랩되는 날이 있다.  느 날 문득 잊고 지냈던 행복 추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텐트를 친 뒤 낚시를 하시고, 어머니는 코펠에 밥을 짓고, 나는 동생과 자연에서 뛰어놀던 아련한 추억.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때의 정서는 내 안에 살아 있다. 그때의 행복을 아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캠핑을 시작한 이유는 순전히 그 때문이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자연과의 접촉 정도에 따라 아이들이 행복감을 더 느끼고, 생태보전, 지속 가능한 세계 등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며 자연친화적으로 성장하게 된다고 한다.  미국의 리처드 루브는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은 커가면서 겪는 '자연 결핍 장애'라는 개념을 만들기도 했다.  자연의 생명체들과 교감하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차갑고 메마른 도시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자연 속에서 느끼는 회복과 치유의 힘을 채워주고 싶어, 고생을 사서 하냐 꺼려하던 남편을 설득해 아이 6살 때 첫 캠핑을 시작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기본적인  싸서 출발했다. 첫 캠핑을 가던 날 아침, 어린 시절 행복한 추억이 떠올라 괜히 설레었다.

그러나 상과 달리  맞닥뜨린 은 녹록치 않았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난생처음 쳐보는 텐트를 어찌할 줄 몰라  땀을 뻘뻘 흘리며 장장 두 시간을 헤매었다. 아이는 같이 놀아달라고 보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애를 먹었다. 텐트를 겨우 완성하고 나니 진이 빠져 편과 나는 넋이 나갔다. 하지만 을 해 먹어야 하니 쉴 수 없었다. 캠핑은 끝없는 노동이었다.

 게다가  예민한 아들은 텐트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선 환경에서의 잠자리도 힘들어했고, 평소에 보지 못했던 생물들을 접하는 것도 두려워했다. 첫 캠핑은 생존 극기훈련을 받는 느낌이었다. 내가 왜 캠핑을 하자고 졸라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기도 했다.

© ryan_hutton_, 출처 Unsplash

 고된 하루를 보내고 맞은 첫 캠핑의 밤, 아들을  재우고 텐트 밖을 나왔다. 깜깜해진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경탄을 금치 못했다.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와 함께 잔잔한 음악을 들었다. 마주 앉아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를 낳은 이후 단둘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는 우리 부부에게 캠핑장의 밤은 신세계였. 아이를 곁에 두고도 마음 편히 즐기는 둘만의 데이트. 낮에는 고단하기도 했지만, 캠핑장 밤의 매력에 매혹되어 우리는 그 뒤로도 계속 캠핑을 떠났다.


처음에는 든 게 낯설고 서툰 것 투성이었지만, 반복할수록 익숙해졌다. 이제 나는 혼자서도 타프를 설치할 수 있다. 아들도 야외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에 적응했고, 점점 더 즐길 줄 아는 아이로 변해갔다. 생물이 무서워서 돌멩이나 던지고 놀던 아이가 계곡에서 물고기도 직접 잡고 만지고 관찰한다. 밤하늘의 별자리를 함께 찾아보기도 한다. 음식 메뉴, 놀이도 함께 정하고 쉬운 요리는 같이 만들며 모든 활동에 아이가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입맛도 까다로운 아이지만 캠핑을 가서 자신이 함께 만든 요리는 뭐든 잘 먹는다. 가끔 예상치 못한 난관이나 열악한 환경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그조차도 지나고 나면 좋은 추억으로 미화되었다. 아이를 위해 시작한 캠핑이었지만 어른인 나에게도 긍정적 정서를 채워주었다.  


추억을 떠올리면 당시의 정서가 함께 되살아난다. 머리로는 기억나지 않을지라도 가슴에선 살아 느껴진다. 나는 보이지 않는 정서의 강력한 힘을 믿고, 그것이 삶의 원동력이 될 거라 믿는다.  캠핑의 추억이 아이의 삶 속에 긍정적 정서로 평생 남아있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캠핑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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