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에서 제일 부러운 게 난로네요” 집안에 들어선 지인 한 분이 외투를 벗으며 한 말이다. 그 이유가 알만하다. 우선 들어서는 순간 몸으로 느끼는 온도부터 다르다. 우리 집의 평균 실내 온도는 25도, 웬만한 시골집은 물론이고 도시 아파트에 비해서도 따뜻한 편이다. 게다가 거실 한편에서 은은하게 장작이 타고 있는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펄럭펄럭 불꽃을 매단 채 가끔 탁탁 소리까지 내며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물론, 한참을 쳐다봐도 싫증 나지 않을 정도로 은근히 재미도 있다. 난로 위에는 커다란 물 주전자가 놓여 있고, 가습기가 하얀 김을 토해내고, 남쪽 창으로는 따스한 햇살이 아낌없이 쏟아진다. 우리 부부는 거실 가운데 커다란 테이블 위에서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고 때론 낮잠도 자면서 따듯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난로가 없었다면 모두 불가능한 풍경이다. 오늘은 이 멋진 난로에 대해 이런저런 수다를 떨어볼까 한다.
우리 집 난로는 자그마한 주물난로, 흔히 말하는 노출형 벽난로다. 앞으로 난 양쪽 문에는 내열유리가 달려있어서 불타는 모습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굵직한 이중연통을 통해서 연기를 뽑아낸다. 세 개의 공기구멍을 통해 화력을 조절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 난로의 매력은 따로 있다. 나무가 오래간다는 거다. 굵직한 장작 세 개를 채워 넣으면 적어도 대여섯 시간, 어떨 때는 8시간을 넘기기도 한다. 불이 붙은 상태에서 공기구멍을 모두 닫아놓으면 먼저 푸르스름한 불꽃이 오로라처럼 펄럭거리고, 참나무 장작은 벌건 숯불이 되어 몇 시간을 버틴다. 이 열기로 거실과 주방, 안방은 물론이고 이층까지 따뜻하게 살기에 충분하다. 난방용 기름보일러가 따로 있기는 하나 주로 온수를 위해서만 돌리는 정도다. 당연히 난방비가 다른 집에 비해 훨씬 적게 든다.
그런데 이놈의 난로가 여간 손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먼저 하루 서너 번씩 때맞춰 나무를 넣어야 한다. 단순히 시간을 맞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경험과 요령이 필요한 복잡한 작업이다. 불씨가 많을 때는 굵고 젖은 나무를, 불씨가 적을 때는 가늘고 마른나무를 넣는다. 두 개의 장작을 가까이 붙여서 열기를 나눌 수 있게 배치하되 껍질끼리 닿게 해야 불이 잘 붙는다. 따뜻한 날씨라면 거꾸로 한다. 장작을 떼어놓거나 등이 아닌 배를 맞닿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주 오랜 시간 불이 꺼지지 않게 하려면 새로운 작전이 필요하다. 장작을 맞대지 않고 포개어 놓는 것이다. 이러면 아래 장작이 다 탄 후에야 위로 불이 붙으니까 화력은 약하지만 오래 버틴다. 날씨에 따라 온도를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다. 추운 날씨에는 큰 문제가 없다. 나무를 잔뜩 넣고 공기구멍을 조금 열어서 활활 때면 된다. 문제는 따뜻한 밤이다. 이럴 때는 불씨가 약해지기를 기다려서 나무를 넣거나 굵은 장작을 넣어서 불이 붙는 데 시간이 걸리도록 조절한다. 아예 장작을 하나만 넣어 불이 겨우 목숨만 붙어있게 만드는 고급기술도 있다. 물론 까딱하면 불을 꺼뜨릴 수도 있어서 아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기술이다.
수고로움은 이뿐이 아니다. 며칠에 한 번씩 재도 치워야 하고 매일 난로 주변과 거실을 진공청소기로 꼼꼼히 청소해야 한다. 먼지를 잡기 위해서 공기청정기는 스물네 시간 가동한다. 거기에 정작 힘드는 일, 바로 나무를 자르고 쪼개어 쌓는 일이 추가된다. 전기톱과 유압 도끼의 힘을 빌린다고는 해도 여전히 쉽지 않은 작업이다.
요즘 같은 문명시대에, 몇 푼이나 아끼려고 그런 궁상을 떠느냐고 혀를 차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난로를 돌보는 일은 단순히 돈을 아끼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내가 살아 있음을 자각하게 하는 일상의 노동이요 즐거움이다. 이를 통해 나는 아주 작고 순간적인, 나만의 질서와 균형을 창조하는 중이라는 말이다. 겨울이 끝나면 서운해서 어쩌나, 그러나 걱정할 일도 없다. 봄이 되면 난로보다 더 신나고 많은 일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