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보은군 회인면 애곡리
당진 - 영덕 고속도로를 타고 보은에서 회인을 지나다가 우연히 고개를 들어 본 사람은 조금은 낯선 모습의 마을을 발견할 수 있다. 산기슭 9부 능선쯤에 포근하게 안긴 마을, 바로 애곡1리다. 도대체 저 높은 산 위에 어떻게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 물은 충분할까, 눈이라도 푹 쌓이면 고립되는 건 아닐까......, 등등의 궁금증들이 슬금슬금 올라오거든 망설이지 말고 한 번 올라가 볼 일이다.
애곡리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회인 읍내에서 부수리를 거치는 길이요, 또하나는 건천리를 지나 갈티쪽으로 가다가 왼쪽 샛길로 접어드는 방법이다.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입구에서 멋진 나무들을 만나게 된다는 점. 한쪽은 보호수로 지정된 400년 된 느티나무요, 다른쪽은 안개에 휩싸인 신령스러운 소나무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입구에는 단양우씨 세거지비라는 비석이 우뚝 솟아 멀리 산 능선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애곡리는 멀리서 보면 산 위에 포근하게 안긴 형국이라서 안개라도 끼는 날에는 마치 구름위의 섬마을, 선계라도 되는 것 처럼 신비롭다. 마을에 서서 내려다보면 회인의 중앙리와 넓은 회인 뜰, 멀리까지 중첩한 산의 능선들이 아스라이 보인다. 그야말로 하늘위에 떠서 바라보는 느낌이다.
또하나 재미있는 일이 있다. 집들이 산자락에 층을 이루어 다닥다닥 어깨를 마주하고 모여 있다. 그래서 산촌이 아니라 마치 바닷가 어촌마을에 온 것 같다. 심지어 약간 높은 길에서 아래쪽 집의 지붕에 이르는 통로가 있는 집도 있다. 집 주인이 지붕에서 무언가를 말리려고 만들어 놓은듯한데, 여행객에게는 전망대가 되어주니 이처럼 고마울데가.
마을을 들어서면 상현사가 먼저 눈에 띄고 된장과 목공예를 하는 쑥티공방도 보인다. 농촌의 다른 마을처럼 군데 군데 빈집이 있고 대부분 나이드신 어르신들만 마을을 지키고 있다. 높은 산자락에 뚝 떨어진 마을이니 외부인들의 출입이 많지 않았을텐데,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걸어다녀도 뭐라고 하는 분이 없는걸보면 마을의 인심이 괜찮은가보다. 하긴 워낙 풍광이 좋다보니 다들 마음이 넓어졌을 법도 하다.
예로부터 쑥이 많아서 애곡리라는데, 지형으로 봐서는 골짜기가 아니라 고개 치가 붙어야 할 것 같다. 자료를 찾아보니 원래는 애티리였다가 인근의 보고곡리와 합쳐지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행정구역개편으로 지형과는 맞지않는 엉뚱한 지명이 생겨버린 것이다.
아침 안개에 쌓인 애곡리에서 세상을 내려다본다. 고속도로와 회인면 중앙리가 발 아래 놓인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신비롭다. 내가 사는 세상도 꽤나 근사한 곳이었구나 싶다. 가까이에 이처럼 하늘과 가까운 마을이 있고 마음 내키면 휙 오를 수도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