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인면 애곡 2리, 보고실
행정구역상으로는 애곡 2리지만 주민들은 다르게 부른다. 그런데 그 이름이 명확하지 않다. 사람에 따라 복우실이라고도하고 보고실이라고도 한다. 제법 그럴듯한 해석과 연유까지 끄집어 대면서 말이다. 그러나 왠지 보고실이 더 정겹다.
마을에 들어서는데 웬 누런 개 한 마리가 성큼성큼 다가온다. 덩치도 제법 되는 데 짖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거침없이 말이다. 이런 경우는 보통 공격할 뜻이 없고 그냥 호기심에서 하는 행동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약간의 긴장을 한다. 그때, 어디선가 개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도꾸라니. 이건 최소한 50년 전에나 듣던 이름인데.
내가 어렸을 적, 시골에는 집집마다 개를 길렀다. 지금처럼 집안에 묶어서 키우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로 자유롭게 풀어서 키웠다. 집도 지키고, 여차하면 여름 보양식으로 잡아먹기 위해서였다. 그때는 개 이름이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다. 메리, 도꾸, 쫑 이 세 가지면 대충 80%는 맞을 정도였다. 암놈은 주로 메리였고 수놈은 도꾸 아니면 쫑이였다. 추측을 해보자면 메리와 쫑은 Mary와 John일 테고 도꾸는 Dog의 일본식 발음이었을 듯싶다. 이 촌스러운 이름들은 80년대를 지나면서 슬금슬금 사라졌고 내 기억 속에서도 희미해졌었다. 그런데 오래전에 사라진 도꾸가 이곳 보고실에 살고 있다니. 혹시 메리는 없을까 하는 순간 아저씨가 뒤이어 소리를 높였다.
아쉽게 메리의 모습은 보지 못했으나 어디엔가 도꾸의 여친(어쩌면 엄마)인 메리가 있겠구나 싶다.
(사진 속의 소심한 개는 문패가 말해주듯 메리가 아니다)
마을 깊숙이 들어가 보니 아침부터 두 부부의 손길이 바쁘다. 아저씨는 고추를 다듬고 아줌마는 토란대를 가르는 중이다.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슬금슬금 카메라를 들이대는 데 경계하는 빛이 없다. 지킬 것도 숨길 것도 없이 떳떳하고 자연스럽게 살아오신 분들만의 특징이다. 뒤꼍에는 어느새 알밤이 벌어졌다.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