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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정심 Apr 10. 2023

내 몸을 사랑하기

나의 갱년기에게

 식사를 마친 식탁을 멍하니 바라본다. 뚜껑을 닫지 않은 반찬통에서 빨간 김치와 조린 멸치가 나에게 애처로운 눈길을 보낸다. 커피 한잔을 다 마실 때까지 다시 자리에 누울까 말까를 고민한다. 다른 때 같았으면 부지런을 떨며 집안 청소를 하고 수영하러 갈 준비를 마쳤을 시간이다.


  평생 골골하던 내가 정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시작한 게 바로 수영이다. 평소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로 가슴이 답답할 때면 온천이나 목욕탕을 찾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수영장 물속에서 나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적응을 잘했다. 학창 시절 운동회 때 달리기를 해서 공책 한번 받아본 적 없는 나다. 건강을 위해 탁구를 배우다가 협착증이 재발하고 흥미도 못 느껴 몇 달 만에 그만두었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도전하는 헬스도 몸에 무리가 갈까 싶어 아예 시작할 엄두도 못 냈다. 혼자서 걷기도 해 봤지만 꾸준하게 오래 하기에는 운동에 대한 내 의지가 너무 약했다.


  남들은 노년이 되어서야 하는 수술을 나는 30대에 두 개나 끝냈다. 건강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언제나 스트레스였다. 조금만 무리하게 몸을 움직였다 싶으면 늘 몸살이 따라다녔고 그럴 때마다 진통제와 링거를 찾았다. 감기는 사시사철 나를 떠나는 날이 없었고, 각종 염증 질환으로 항생제를 주기적으로 먹었다. 매일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프면서도 큰 병은 아니라 가족들마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젊어서부터 해마다 보약으로, 몸에 좋다는 영양제와 각종 식품으로, 그리고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깡으로 버텼다.


  나는 사람마다 타고난 체력이나 체질이 있다고 믿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난 체력이나 체질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다. 내 몸이 실제로 그러하니 그렇게 믿을 수밖에. 운동과 몸에 좋은 음식으로 어느 정도 기력을 보충하고 채워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몸 자체를 다른 사람의 몸인 듯 싹 바꿀 수는 없지 않을까. 하고 싶은 것들은 많은데 몸이 따라 주지 않아 혼자서 짜증 내고 눈물 흘린 적이 많았다. 몸 아프면 본인만 손해라는 말은 정말 진리다.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그 우울감과 고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내가 수영장에서 그야말로 신세계를 경험했다. 헉헉거리면서 시작한 자유형 발차기가 웬만큼 익숙해지자 팔 동작을 배웠다. 시간이 흐르자 혼자서 25m를 퍼덕거리며 갈 수 있게 되었다. 남들보다 익히는 속도가 느려 혼자 남아 열심히 연습하곤 했다. 수영을 하고 나면 온몸이 나른해지고 피곤해서 한잠 자야 했지만 내가 어느 먼 옛날 물속에서 살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물이 좋았다.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물살이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내 마음속의 걱정과 근심을 물이 조용히 씻어주는 느낌이랄까, 몸에 힘을 완전히 빼고 자연스럽게 물살 따라 둥둥 흘러가는 그 순간이 마냥 행복했다.


  뭔가에 빠지면 온전히 몰입하는 내 성격이 수영을 배우면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매일 동영상을 보고 수영을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영상을 통해 수영 국가대표 출신들이 알려준 대로 수영장에 가서 연습해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남들은 어떤 동작이 잘 안 되어 될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 짜증스럽다고 했지만 난 반복해서 무언가를 익혀나가는 데도 쾌감을 느꼈다. 왜 진작 수영을 배우지 못했을까 한스러울 만큼 나는 수영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 오른쪽 팔에 심한 통증이 왔다. 물건을 잡을 수도 없고 팔을 위로 들어 올릴 수도 없었다. 수영장에서 남들보다 빠르게 가고 싶다는 마음에 물 잡기를 너무 과하게 했다는 생각이 스쳤다. 욕심이 지나치면 오히려 화가 될 수 있다고 했던가. 내 몸의 상태를 살펴가며 운동을 했어야 했는데. 수영을 하기 전에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거나 마우스를 잡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오른팔에 파스를 붙이곤 했었다. 게다가 나 같은 체질은 나이가 들수록 관절이 다른 사람들보다 약하다고 한의사 선생님이 미리 경고를 하지 않았던가.


  수영을 못하게 되자 심한 우울감이 나를 덮쳤다. 요즘 안 그래도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 많았는데 수영마저 못하게 되니 마음 둘 곳이 없었다. 병원과 한의원을 들락거리며 팔이 나아지기를 기다렸다. 병원에서도 한의원에서도 우선은 수영을 좀 쉬고 될 수 있으면 팔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팔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평생을 골골거리며 살았는데 이제는 팔마저도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온통 잿빛이 되어 나를 더 심란하게 했다.


  출퇴근하는 일 말고는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며칠을 보냈다. 팔에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마음의 우울은 더해져 갔다. 이제는 팔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더 문제였다. 내 마음을 내가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유 없는 짜증과 불안, 무기력이 내 곁에서 맴돌았다. 수영장의 물이 그리웠다. 수영을 마치고 샤워를 하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던 수영친구들과 다시 만나고 싶었다.


  고민 끝에 나는 다시 수영장을 찾기로 했다. 한쪽 팔을 움직이지 못하니 수업에는 참여할 수 없지만 혼자서 발차기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몸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는 우울과 무기력을 물속에서 씻어내는 의식이 필요했다. 보이지 않던 희망이 내 눈앞에 미소 지으며 나타나자 온몸의 세포가 기지개를 켜며 다시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불과 며칠 만에 다시 찾은 수영장이었는데도 몇 년 동안 와보지 못했던 것처럼 반가웠다. 발차기라도 하며 물을 느끼니 정말 살 것 같았다. 이제 다시는 수영을 하지 말아야 하나 생각할 때는 절망적이었는데 팔이 아프면 이렇게 혼자서 발차기 연습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팔 아픈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다.

  다행히 발차기만을 며칠 동안 하고 나니 오른쪽 팔의 통증이 가라앉았다. 팔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무리해서 수영하는 일은 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팔이 아파 수영을 못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해서다.  

   

  꽃과 나무를 가꾸며 사시는 현진 스님은 『수행자와 정원』이라는 책에서 지인들에게 들려주는 행복의 열쇠 세 가지가 있다고 하셨다.     


  첫째, 비교하지 말고 감상하라.

  둘째, 멈추고 감상하라.

  셋째, 내 몸을 사랑하라


                                                      『수행자와 정원, 현진, 담앤북스, 2022, p141   

       

  첫째도 둘째도 모두 공감하지만 갱년기를 지나는 내 처지에서는 특히 내 몸을 사랑하라는 세 번째 말씀이 가슴에 와닿는다. 나이듦은 마음이 아니라 신체로 먼저 느끼게 되는지도 모른다. 더욱 약해지는 체력과 어느 순간 침침해지는 시력, 계단을 오르내릴 때 시큰거리는 무릎, 약해지는 치아와 잇몸. 병원을 찾아도 이제는 나이가 들면 누구나 그렇습니다,라는 의사의 무덤덤하고 싸늘한 말을 듣는 시기가 왔다.


  이제껏 나와 함께 고생해 준 내 몸을 아끼고 사랑하라는 스님의 가르침에 눈물이 핑 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몸은 예전보다 더 나를 괴롭히겠지만 그래도 내 몸을 사랑해야 한다. 이제는 마음이 앞서더라도 몸의 상태를 먼저 살펴 행동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조금씩 더 탈이 나는 신체의 여기저기에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 변해가는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것. 내 남은 날들의 최대 과제가 아닐까.


<<그림 박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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