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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정심 Mar 30. 2024

국화 향기 가득한 곳으로

『이원역』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지 올해로 3년째다. 우리 가족에게 과하지 않은, 적당한 규모의 땅을 매입하고, 집의 구조를 구상하여 실제로 집이 지어지고, 집 안에 들어갈 살림살이들을 채워넣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는 건 마음속에 하얀 여백을 간직하고 있는 것과 같지 않을까. 마당이라는 한정된 공간이 마음속에 무한한 여유의 장을 펼쳐준다는 사실에 감동할 때가 종종 있다. 나는 내 가슴에 또 다른 마당을 가꾸기 위해 경부선의 이원역으로 향한다.


  이원역은 행정구역상 충북 옥천군 이원면에 위치한다. 1905년에 영업을 개시했고, 지금의 역사는 1958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60여 년의 바람을 맞으며 견딘 건물이건만 예스럽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다. 외관을 손보며 채색하는 과정에서 예전의 느낌이 사라져버린 건 아닐까, 역광장을 아스콘인지, 시멘트인지로 포장을 해놔서 건물과 부조화를 이루는 건 아닐까, 딱 집어낼 수는 없지만 역을 둘러보는 내내 아쉬움이 남는다.


  맞이방 안으로 들어가니 두 해 전이던가 방영된, 「손현주의 간이역」이라는 TV 프로그램 포스터가 붙어있다. 학교 폭력을 다룬 드라마 「더글로리」로 유명해진 연기자 임지연 씨가 매표담당 직원으로 나오던 장면이 기억난다. 기차역에서 낯익은 제복을 입고 근무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에 이유 없는 반가움이 찾아들었다. 일일이 챙겨보지는 못했지만 역 직원들이 마을의 궂은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역에 필요한 시설물들을 직접 만들고, 역 주변의 관광지를 찾아가 다 함께 어울리는 모습에 역 직원들의 일과와는 너무 동떨어진 듯하여 약간은 아쉽기도 했었다. 이름난 연예인들이 간이역을 찾아온다는 것만으로도 역에 대한 홍보 효과는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역에서의 일과를 카메라에 좀 더 담았으면 어땠을까 혼자서 생각하기도 했었다.


승강장에서 바라본 이원역

  기차 이용객들이 기차에 물건을 두고 내려 찾아주기까지의 과정, 기차 안에서 잠이 들어 자신이 내려야 할 곳에서 내리지 못하고 간이역까지 와버렸을 때의 상황, 한겨울 자정이 넘은 시간에 울면서 맞이방 문을 두드리는 고객을 맞이해야 하는 역무원의 처지 등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한 게 역에서의 일상이다. 카메라 앵글을 야간근무하는 직원의 모습에 맞추면 정말 볼만한 광경이 나오지 않았을까. 잠을 깨우기 위해 새벽부터 마시는 커피믹스 한잔, 거기에 허기를 달래기 위해 새벽부터 먹는 컵라면까지. 기차역은 모든 근무환경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곳이다. 이름난 작가가 되지는 못할지라도 평생 글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은 나에게는 기차역이 천상의 화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하기도 한다.


  맞이방에 게시된 이원역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가 순직철도인 위령원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소방관이나 경찰관도 일하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직장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다. 물론 그들의 죽음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직업적 특수성이 달라서 그런 것뿐이지 일을 하다가 목숨을 잃는다는 측면에서는 같다고 생각한다.


  지인들이 철도 공사에서 일하다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내 말에 의문을 갖는다. 나 역시 신입 사원일 때는 그랬다. 일하다가 어떻게 죽을 수가 있을까. 내가 접한 첫 사고는 폭우에 화물열차가 전복하여 타고 있던 기관사가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벌써 오래전의 일이지만 그 소식을 접했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내가 근무하던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 사고 현장이었다. 하늘이라도 뚫린 듯 세찬 비가 온종일 내렸고, 선배들은 삼삼오오 모여 전날 밤에 일어난 사고에 대해 이야기했다. 6.25 전쟁 때 보급품 후송 작전을 하다가 전사한 김재현 기관사의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되지만 거센 폭우 속에서 화물열차를 몰다가 목숨을 잃은 어느 기관사의 이야기는 가족들의 마음속에서만 진한 슬픔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원역 근처에 있는 위령원을 찾아간다. 명절도 현충일도 아닌 평일에 이곳을 찾는 이는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외떨어진 건물을 실제로 마주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성모상 앞에서 성호경을 긋고 잠시나마 기도를 드린다. 위패가 모셔진 곳으로 들어가 이름으로만 남아있는 고인들의 영혼과 마주한다. 순간 충북 제천에 있는 천주교 베론성지가 생각났다. 천주교 박해를 피해 1800년대부터 신자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베론성지는 이곳과 마찬가지로 고인들을 모시고 있지만 천주교인들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즐겨 찾는 나들이 장소와도 같은 곳이다. 봄, 가을이면 어린이집에서 소풍도 자주 오고 외지인들도 좋은 경치를 즐기기 위해 한 번쯤은 와보는 곳이라 활기가 느껴진다.


철도 위령원 정경

  철도 위령원도 공원화하여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즐길 수 있는 곳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분위기 좋은 찻집도 있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넓은 잔디밭도 있으면 더욱 좋겠다. 일 년에 한두 번씩은 초, 중,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철도 안전에 관한 글짓기나 그림 그리기 대회도 개최하는 방법도 있다. 고인을 모신 곳이 삶의 현장과 분리되는 것보다는 우리의 생활 속에 고인들도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너무 외로워 보이는 위령원 안에서 여러 생각들이 겹친다.


  옥천까지 왔으니 점심 식사는 꼭 생선 국수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생선 국수단지로 향한다. 우리 지역에서는 생선 국수라는 말보다는 어탕국수라는 표현이 더 익숙하다. 특별히 더 유명한 집이 있겠지만 어디를 가나 조리법은 거의 비슷할 거라는 생각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집으로 향한다. 끼니 때를 훌쩍 넘긴 시간이라 그런가, 식당 안은 한산하다. 생선 국수 한 그릇에 8천 원이면 일단 가격은 합격선이다. 요즘은 길거리 떡볶이 서너 개에 3천 원, 어묵 한 개에 천 원 하는 시대가 아닌가.


  큰 양푼에 담아 나온 국수가 푸짐하다. 내가 먹던 어탕국수는 고추장 양념이 들어가 경상도답게 걸쭉하고 얼큰한 맛이 난다면 이곳의 생선 국수는 고춧가루 양념을 사용하여 깔끔한 맛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마라탕 향도 약간 풍겨온다.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난 후 드는 생각 하나, 역시 나는 중년의 경상도 여자구나! 깔끔하게 매운맛보다는 얼큰하고 투박한 매운맛이 내 입맛에 맞는다. 어느샌가 나는 경상도식 어탕국수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있었다. 어쩌면 아무리 평일이라도 손님 없는 식당에 들어선 내 잘못일지도 모르겠다.


  어탕국수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는 국내 묘목 유통의 70%를 차지한다는 묘목 시장 거리로 향한다. 나처럼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한 선배가 예전에 한 말이 생각난다. 봄이 되면 꼭 옥천 묘목 시장에 가보라고,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었다. 굳이 옥천까지 가서 구경할 일이 뭐가 있을까 싶었는데 옥천중에서도 이원이 선배가 말하던 바로 그곳이라는 사실을 이곳에 와서 알게 됐다.


  비록 봄은 아니지만 줄지어 늘어선 화원마다 국화 향이 그득하다. 색깔도 크기도 정말로 다양하다. 욕심 같아선 모든 종류별로 다 사 가고 싶지만 유독 눈에 들어오는 녀석들이 있다. 꽃 이름과 색깔 옆에 ‘월동 가능’이란 추가 문구가 붙어있는 것들이다. 국화도 월동이 된다고? 마당에 진작부터 내가 좋아하는 소국 종류를 심고 싶었지만 월동이 안 된다고 알고 있어서 엄두도 못 내고 있던 차였다.

  “사장님, 진짜로 이 국화가 월동이 되는 건가요?”

  “예, 그럼요! 국화 중에서도 월동이 되는 종류가 있지요!”


  젊은 주인장의 시원스러운 대답에 세종류의 국화를 산다. 아직은 판매자의 정보에 의존해 꽃을 사는 식물 키우기의 초보자인 나다. 사장님이 추천하는 국화를 일단 마당에 심어보고 한해를 잘 견뎌낸 놈들만을 추가로 사들일 생각이다. 꽃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남편이 마당을 보기 좋게 구획지어 놓았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한 종류의 꽃을 모아서 심어놓으면 한결 보기가 좋다. 우리 집 화단의 한쪽은 남천이 언제나 자리를 지키고, 그 옆에는 봄이면 백일홍 꽃씨가 싹을 틔운다. 무엇을 심을까, 고민하던 나머지 빈 곳은 국화꽃으로 가득 채우면 될 듯하다.


  결코 나와는 좋은 인연이 아니라고 믿었던 나의 엄마 역시 소국을 좋아했다. 이제 보니 초등학교 때 시를 한 편 써오라는 숙제를 해결하지 못해 끙끙대던 나에게 즉석에서 엄마가 지어준 시 역시 국화를 소재로 한 시다. ‘나는 되었네. 들에 피는 한 송이 들국화……. 나는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리라.’ 아직도 첫 부분과 끝부분이 기억나는 엄마의 그 시. 소담스럽게 피어나는 국화를 좋아하고, 문학을 좋아하는 내 기질은 어쩌면 엄마를 닮은 건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나름의 정리가 필요한, 고인이 된 엄마에 대해 이곳 이원에서 마음속에 한 줄의 긍정을 새겨넣는다.     


  서리 내리기까지 꽃을 피웠던 국화가 지금은 마당의 찬 기운 속에서 겨울을 견디는 중이다. 국화가 과연 싹을 틔울 수 있을까……. 삶이 때론 기다림이 아니던가, 적당한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인내의 시간……. 꽃이 피기를 기다리며 마음속에 작은 행복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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