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법이 다른 여행

by 심풀 SimFull

우리 부모님은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시점에서부터 여행을 자주 다니던 여행고수다. 내가 어려서부터도 시간/돈의 여유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여행을 다녔다. 이때는 정말 여행책 하나에 의지해서 다녔던 시절이다. 책에서 나오는 관광지 위주로 다니며, 책의 정보를 가지고 최대한 셀프 가이드를 했다. 특히 숙소도 책에 나와있는 곳들을 표시해 두고, 현지에 도착하면 공항 공중전화로 방이 있는지 전화해 보면서 다녔다. 이 점을 최근 직장동료들에게 나눈 적이 있는데 너무나 놀라워했고, 나도 생각해 볼수록 신기했던 점이 많아서 기록해두려고 한다.


요즘의 여행을 생각해 보면, 검색이 쉬워진 만큼 정말 세세하게 계획을 할 수가 있다. 나도 신혼여행을 계획할 때 24시간 숙박이란 개념을 처음 알게 됐다. 체크인과 체크아웃 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체크인 이후 24시간이 체크아웃 시간이었던 것이다. 당시 신혼여행지에는 새벽에 도착하는 일정이고, 귀국 편은 며칠 후 새벽 1시에 있었다. 여행사에서는 새벽 1시 출발하는 날까지 숙박으로 쳐서 제안을 했는데, 24시간 숙박을 좀 더 생각해 보니 첫날 최대한 늦게 체크인을 하고 마지막날을 최대한 늦게 나가면 하루를 벌 수 있는 셈이었다. 체크인 얼마 전부터 짐을 맡길 수 있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계획이 가능한지를 블로그 후기라던가, 여행사에 물어보며 확인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휴식과 가성비를 챙기는 최적의 여행을 할 수 있었다.


lp1.jpg?format=1000w 우리 집 책장에 항상 있던 손때 묻은 여행 가이드북 <출처: imagine backpacking>


지금의 여행은 최적화라고 치면 부모님과의 여행은 '낭만'이랄까. 가이드북 이미지를 보고 간 호스텔이 너무 별로여서 다른 곳을 찾아간 적도 많고, 식당은 폐점이거나 쉴 때도 있었다. 계획형 사람들은 큰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겠지만 부모님은 문제 해결을 최우선으로 하셨다. 나도 이런 영향이었어서인지 P의 비율이 더 높다.


이렇게 다니다 보면 정말 신기한 일들이 생기곤 한다. 아직 초등학생일 때 부모님과 이집트를 거의 배낭여행으로 갔을 때이다. 부모님이 가이드북을 보며 대략 코스를 정해두면 나의 역할은 괜찮아 보이는 숙소를 찾는 것이었다. 숙소 중에 'Oasis' 단어가 들어가는 숙소가 나는 괜히 가고 싶었다. 이름만 오아시스지만 나름 사막의 중요한 키워드라서 그랬던 것 같다. 사실 어렸던 나는 오아시스에서 자봤다고 자랑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근데 막상 가보니 숙소가 너무 후졌다. 어려운 여행을 많이 해본 나지만, 여기는 나도 좀 버거웠다. 그렇게 나와서 다른 숙소를 찾아봤는데 길거리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어째서인지 한국말을 하는 현지 사람이 있었고, 한식당과 숙소를 운영하고 있던 것이다. 강렬한 인상이었던지 지금도 이름이 기억이 난다 '만도 아저씨'.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2009년 글 까지는 나오는 것 같은데 잘 계시면 좋겠다. 만도 아저씨의 삼계탕은 오래 걸렸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만도 아저씨의 소개로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우리 부모님은 가짜 학생증도 만들었다. 학생증으로 티켓을 사면 조금이라도 저렴하다는 이유였다. 조금 고민을 했지만 결국 부모님은 종이 쪼가리에 영어 이름과 Seoul National University를 써서 주니 밥 먹는 동안 플라스틱 카드가 나왔다. 어린 나는 신분증 위조로 괜히 잡혀가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부모님은 이때라도 서울대 학생이 돼 본다며 가볍게 여겼던 것 같다. 지금은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위의 커버사진은 이집트의 역사적인 호객 사기꾼 아저씨하고 찍었던 것이다. 물론 찍을 때에는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 아저씨는 나에게 선물이라며 터번도 씌워주고 이것저것 기념품을 주더니 한국 돈을 달라고 했다. 한국 돈이 없다고 하니 이집트 돈을 달라고 하는 식이었다.


생각해 볼수록 다이내믹한 여행 에피소드가 많았다. 이런 기억들은 인사이드아웃에서 말하는 Core Memory가 된 것 같다. 조금이라도 휘발되기 전에 많이 적어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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