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당신
어릴 적 기억 중 꽤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부모님은 어떤 이유로 크게 싸우셨고, 엄마는 집을 나갔다. 저녁이 되고 누나와 내가 배가 고프다고 하자 아빠는 우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 우리는 택시를 타고 중국집으로 갔다. 아마도 우산이 없었던지 아빠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중국집으로 안으로 뛰라고 했다. 그 순간이 2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선명하다. 비의 양, 구겨신은 신발 안으로 차오르는 물, 질퍽함, 머리를 스치는 중국집 문의 비즈발까지. 그때의 기억을 감정으로 치환하면 슬픔, 불안함, 두려움이 되겠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썸네일처럼 가족 혹은 성장과정의 많은 부분을 설명했다.
그러다가 1~2년 전 엄마, 누나와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이 이야기가 갑자기 등장했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장면, 감정을 얘기했는데 누나의 반응이 놀라웠다.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표정이었다. 누나는 부모님이 싸우고 엄마가 집을 나간 것까지는 기억하지만, 짜장면을 먹으러 갔던 기억은 없다는 것이다. 누나의 기억은 이랬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나서 너무 불안했는데 아빠도 갑자기 집을 나가더란다. 아빠도 너무 화가 나서 집을 나갔구나 라고 생각하며 창 밖을 보고 있는데 아빠가 검은색 봉지를 하나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게 보였다고 한다. 집으로 들어와서는 누나의 도시락 통에 사 가지고 온 김밥을 차곡차곡 담았다고 한다. 그다음 날이 누나가 소풍을 가는 날이었고, 아빠는 그 와중에 김밥을 사서 도시락을 싸줬다는 것이다. 누나는 그 순간이 너무 안심이 됐고 따뜻했다고 했다.
나는 누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왈칵 눈물이 날 뻔했다. 아빠의 따뜻함, 성숙함이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기억이 기억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에 안심이 되기도 해서였다. 전체를 볼 수 없었던 나는 내 기억의 썸네일로 모든 걸 설명하려고 했기에 안도할 수 없었던 거 같다. 하지만 누나의 이야기에서 내 단면 기억은 양면 기억이 되었고, 과거의 힘은 약해진 거 같았다.
내 기억은 과연 전부일까. 그리고 그 기억은 수많은 상황을 어떤 식으로 기억하게 만들까.